[리뷰]전설을 보내고, 새로운 영웅의 시대를 맞이하다. 데빌메이크라이5
바이오하자드7, 몬스터헌터:월드, 바이오하자드RE2 등 내놓은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캡콤이 또 하나의 인기 프랜차이즈를 부활시켰다. PS2 초창기 시절 등장해 스타일리시 액션 게임의 대명사로 떠오른 데빌메이크라이 시리즈의 11년만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 데빌메이크라이5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 단테를 앞세워 악마들을 최대한 멋진 콤보 기술로 사냥하는 재미를 담은 이 시리즈는 첫 작품의 성공 이후 야심차게 선보인 2편이 밋밋한 게임성으로 혹평을 받으면서 그대로 잊혀지나 했으나, 심기일전 해서 선보인 3편과 4편이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사랑받는 시리즈로 자리잡았다.
다만, 주인공 단테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임이라는 점이 고질적인 약점이다. 새로운 주인공 네로를 선보였던 4편은 단테에 비해 존재감이 없다고 비난을 받았으며, 닌자 씨어리에 외주를 맡긴 외전 DMC 데빌메이크라이는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단테의 젊은 시절을 다뤘으나, 괜찮았던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던 단테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DMC데빌메이크라이의 실패로 인해 리부트 작전이 무산된 캡콤은 11년만에 정식 넘버링 후속작인 데빌메이크라이5로 돌아오면서 4편이 주인공이었던 네로와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단테, 그리고 수수께끼의 인물 V, 이렇게 3명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네로이지만, 스테이지마다 플레이 캐릭터가 달라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동안 단테가 짊어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네로가 정식으로 이어받는 계승의식을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단테는 이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사라지고 여전히 강력하긴 하지만 고생에 찌든 늙은이가 되어 버린 모습으로 등장하며, 네로는 여전히 미숙하지만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새롭게 등장한 수수께끼의 인물 V는 스토리의 중요한 열쇠이자, 새로운 액션 방식으로 추후 등장할 후속작에 새로운 방향성을 열어준 듯한 느낌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시리즈를 지탱해온 스파다 스토리를 마무리하면서, 네로가 새롭게 걸어갈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팬들에게 “아쉽지만 그동안 고생한 단테를 보내주고, 새로운 영웅의 이야기를 맞이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를 대신해 새로운 미래가 될 네로는 단테의 형제이자 숙적인 버질의 아들로, 정체모를 악당에게 팔이 잘린 상태로 등장한다. 4편에서는 스파다의 후손이기 때문에 가지게 된 악마의 팔이 주무기라서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는 단테에 비해 액션이 너무 단조롭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잘린 팔을 대신하는 로봇팔 데빌 브레이커로 액션의 다양성을 더했다.
데빌 브레이커는 단테의 권총 에보니 & 아이보리를 만든 유명한 무기 제작자 '넬 골드스타인'의 손녀딸인 니코가 개발한 네로 전용 무기로, 니코에게 강력한 몬스터를 죽이고 나온 재료를 가져다 주면 다양한 기능을 가진 새로운 데빌 브레이커를 만들어준다(캡콤 팬이라면 애증이 느껴질 그녀석의 무기도..). 아무래도 없어진 악마의 팔을 대신해서 임시방편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용하다 부서지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높은 곳을 올라가고, 적을 끌어당겨서 콤보를 좀 더 쉽게 이어갈 수 있는 등 쓸모가 많다. 특히, 다양한 기능을 가진 데빌 브레이커 덕분에 4편에 비해 액션이 훨씬 다채로워졌다.
믿음직한 니코와 함께 악마 사냥 사업을 잘 운영하고 있는 네로와 달리 단테는 수도와 전기가 끊길 정도로 생각없이 사는 늙은 아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동안 쌓은 내공이 어디가지는 않았기 때문에 등장 인물 중에서 가장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며, 무기를 바꿀 때마다 액션 스타일이 달라져서 가장 화끈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 얼굴에다 스토리 진행상 초반에 유리즌에게 죽도록 맞는 모습만 나오기 때문에 이전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안쓰러움만 느껴지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다양한 무기를 획득한 뒤 보여주는 화려한 쇼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워낙 무기가 많아 스킬을 모두 해금하려면 많은 오브가 필요하긴 하지만, 오브를 투자한 만큼 더욱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투자한 보람이 느껴진다.
수수께끼의 인물 V는 처음 등장하지만 스토리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캐릭터로, 3마리의 소환수를 소환해 싸우는 독특한 액션이 특징이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없었던 개념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함이 있지만, 소환수는 적들을 빈사 상태까지만 만들 수 있고, V가 직접 마무리를 하는 형태라 나름 손 맛이 있다. 스토리상 V가 다음작에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캡콤이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이 소환수 전투 방식을 다시 써먹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무려 11년만에 등장한 정식 넘버링 게임인 만큼, 그래픽의 완성도 측면에서 다소 걱정이 앞섰지만, 캡콤의 비장의 무기가 된 RE엔진 덕분에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기본적으로 오픈 필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게임보다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장인물의 증가로 액션이 굉장히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PS4 기본 버전에서는 약간의 프레임 드랍이 있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영향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며, PS4 프로와 고사양 PC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체 엔진 개발은 개발사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긴 하지만, 뛰어난 성능의 RE 엔진 덕분에 한동안 캡콤 게임은 기본 이상은 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액션과 길찾기 퍼즐로 게임이 이뤄져 있기는 하지만, 이전작인 4편이나, DMC 데빌메이크라이처럼 퍼즐이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가끔 숨겨진 오브나 시크릿 미션이 나오기는 하지만, 맵이 거의 일직선이기 때문에 길을 헤맬 일이 없으며, 퍼즐도 직관적이기 때문에 액션만 마음껏 즐기라는 배려가 느껴진다. 기술 해금을 위한 오브 노가다가 좀 심하고, 번역의 어설픔이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액션 자체에 대한 불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가의 용과 같이 시리즈나 너티독의 언차티드 시리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갓오브워 시리즈 등 오래된 시리즈들은 대부분 인기 있는 주인공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게 되고, 더 이상 새로운 스토리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해 새로운 주인공으로 교체하면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갓오브워처럼 아예 세계관을 바꾸는 파격적인 변신을 선택해 성공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데빌메이크라이는 11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그렇게 바라던 세대 교체를 성공한 느낌이다. 4편에서는 납득할 수 없었던 애송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 단테와 함께하면서 급성장하는 네로의 모습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오랜 기간 고생한 단테의 화려한 은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네로를 믿고 지옥으로 향하는 단테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음 작품에서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니코의 비중을 좀 더 높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