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PC를 바꾸더니 이제 스마트폰을 바꾼다
게이머라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게임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즐기고 싶어 한다.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처럼 엄청난 가격의 튜닝 PC에 개인 전용 장비까지 동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더 좋은 그래픽을 보다 큰 화면에서 빠르게 즐기고 싶기 마련이다.
이러한 속성 탓에 새로운 게임의 등장은 곧 PC 사양의 업그레이드 열풍으로 이어지곤 했다. 더욱이 게임 그래픽의 발전이 가속화된 2000년대 중반 이후 PC 하드웨어 시장은 대작 게임의 등장과 함께 교체 주기가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PC방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 한국 게임시장에서 이러한 모습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가장 처음 PC방에 컴퓨터 업그레이드 열풍을 불러일으킨 게임은 바로 리니지2였다.
국내 최초의 Full 3D 온라인게임이었던 뮤 온라인에 이어 본격적인 3D 온라인 게임으로 출시됐던 리니지2는 당시 FPS 게임의 개발에 사용되던 언리얼엔진2를 통해 개발된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기도 했고, 개발 과정 전체가 외신에 소개되는 등 당시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엄청난 이슈를 몰고온 게임이었다.
더욱이 당시 국내 게임 시장을 지배하던 한 축이었던 리니지의 후속작이라는 점과 PC게임에서나 볼 수 있던 3D 그래픽을 온라인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게이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 때문에 디아블로2,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이 주류였던 PC방은 리니지2의 등장으로 PC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특히, 당시 펜티엄3 와 128MB 램 등 낙후된 사양을 지닌 지방의 PC방 역시 리니지2의 등장과 함께 일부 PC를 업그레이드를 진행했을 정도로, PC방 업그레이드의 바람이 불었고, 이 과정에서 PC방 업체와 연결되어 하드웨어 보급이 진행되는 지금의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기도 했다.
테라를 시작으로, 블레이드&소울과 디아블로3가 정면 대결을 벌였던 2011~2012년도 빼놓을 수 없는 시기다. 2010년 블리즈컨에서 처음 공개된 디아블로3의 출시 일정이 다가오자 국내 게임업계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이 바로 블루홀의 테라였다.
3년간 320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개발비가 들어간 테라는 논 타깃팅 방식의 전투와 뛰어난 그래픽, 다양한 종족과 직업을 내세운 게임이었고, 이중에서도 '언차티드2'나 '기어즈 오브 워2' 등의 세계적 수준의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그래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테라의 등장으로 당시 PC방 시장은 스타크래프트2의 등장과 맞물리며,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를 준비했는데, 1년이 지난 2012년 블레이드&소울과 디아블로3의 등장은 이러한 업그레이드 바람에 그야말로 불을 지폈다.
사실상 콘솔 게임과도 다름없는 디아블로3와 커스터마이징에만 2박 3일 걸린다고 할 정도로 수려한 그래픽을 자랑했던 블레이드&소울의 등장은 대대적인 업그레이드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PC방을 넘어 개인 PC의 업그레이드 시기와 맞물리며, 당시 PC 부품 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대세를 이루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나 LOL 등 요즘 유행하는 게임들은 다른 이용자들과의 대결 위주이기 때문에 이러한 신규 게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PC 업그레이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바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한 모바일게임 시장은 퍼즐과 액션 그리고 수집형 RPG 등 빠르게 대세 장르가 바뀌며, 끊임없는 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최근 온라인의 전유물로 여겨진 MMORPG의 영역에까지 이르러 모바일게임은 지속적으로 퀄리티를 높여나갔다. 더욱이 최신 그래픽엔진인 언리얼엔진4로 개발되는 게임이 등장할 정도로 모바일게임 그래픽의 성장이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스마트폰의 사양도 크게 높아져 이제 게임을 위해 PC를 바꾸듯이, 신작 게임을 위해 스마트폰을 바꿔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넥슨의 신작 트라하다.
트라하는 언리얼 엔진4를 활용한 화려한 그래픽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무기를 바꿔서 싸울 수 있는 인피니티 클래스 시스템, 다양한 생활형 콘텐츠 등 기존 게임과 차별화된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게임이다.
트라하가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넥슨이라는 거대한 게임사의 작품이라는 것도 있지만, 스마트폰 사양에 타협하지 않는 최고의 게임성을 선보이겠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모바일 게임은 진입장벽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매출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사양을 최대한 낮춰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넥슨은 트라하를 선보이면서 최소 사양이 갤럭시S7, 아이폰6S 등에 이를 정도로 스마트폰 사양 때문에 고의로 트라하의 그래픽을 낮추지 않겠다는 전력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라고는 하나, 국내보다 스마트폰 사양이 낮은 편인 해외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이보다 낮은 사양까지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넥슨은 환경과 타협하지 않는 고품격 게임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해 신규 IP인 트라하가 기존 모바일게임 시장의 강자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압도적인 그래픽을 내세워 게임 시장에 큰 파문을 던져주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과 PC 게임 시장에서는 대형 게임의 등장이 PC 업그레이드라는 공식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잡았지만, 모바일 시장은 아직까지 시기 상조라는 느낌이 강한 것이 사실”이라며, “넥슨이 트라하를 통해 스마트폰의 사양에 상관하지 않은 최상위 모바일 그래픽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한 만큼 이러한 전략이 앞으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