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게임사들 진격에 국내시장 매출 10위권도 위험..'총체적 난관'
"그래도 얼마전까지는 국내 게임사들의 게임이 매출 10위권 안은 거의 차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매출 10위권 안도 위험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게임사들의 경쟁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이거 진짜 심각해요."
최근 미팅에서 국내 대형 게임사에 근무중인 한 사업 본부장이 한 말이다. 이 본부장은 지하철 광고를 거의 중국 게임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한 언론의 조사결과를 예로 들며, "국내 마켓 최상위권까지 점령당하면 한국 게임업계는 끝이라고 봐도 된다."고 혀를 찼다.
이처럼 중위권 위주로 시장을 장악했던 해외 게임사들이 국내 게임사들을 제치고 점차 국내 오픈마켓 매출 최상위권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구글 플레이 마켓 기준으로 50위권 내에 이미 해외 게임사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보루인 매출 1~10위권 내에도 해외 게임사들이 속속 진입하면서 국내 게임업계에 위기론이 가중되고 있는 것.
실제로 구글플레이 마켓을 보면 현재 10위권 내에 4개의 해외 게임이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랑그릿사' 외에도 절대강자 슈퍼셀의 '브롤스타즈', 배우 김혜자, 시미켄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은 유엘유게임즈의 '아르카', 게임성과 세련된 과금 시스템으로 무장한 '궁수의전설' 등이 10위권 내에 안착해있다.
순위만 보면 10위권 내에 국산 게임이 6개로 더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6개의 한국 게임중에 해외IP 게임인 '일곱개의 대죄'와 '킹오브파이터 올스타'가 있고, 이들 게임들은 각각 해외 IP사에 수익쉐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순이익이 더 낮은 것도 고려하면 국내시장 분위기는 더 안좋아진다.
또 10위권에 이어 20위권 내에도 '뮤 오리진2', '왕이되는자', '블리치', '강림' 등 해외 게임사들이 개발한 게임들이 진을 치고 있고, 아예 30위권부터는 국산 게임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해외 게임사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아예 국내 30~50위권은 '해외 게임사의 요람' 라는 자조섞인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면 이처럼 국내 게임 시장이 해외 게임사들 때문에 초토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중에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는 건 다년간 경험을 쌓은 해외 게임사들이 한국 시장에 맞춰 세밀하게 맞춤형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게임사들보다 더 서버관리나 운영도 잘하고, 마케팅도 전문화된데다 콘텐츠 마저 충실한 게임을 내면서 원천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
예전에는 그래픽이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 등장하는 해외 게임들은 그래픽 분야 마저 국내 게임사들과 대등할 정도로 세련되어지면서 해외 게임사들의 약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해외 게임들에 대응할 국산 게임들이 제 시점에 출시가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려다보니 최소 2년의 개발기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담금질을 거치다보니 쓸만한 한국 게임의 출시 빈도가 확 줄었다는 것.
실제로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모바일' 외에 근 1년간 내놓은 게임이 없으며, 넷마블도 올 해 내놓은 게임이 단 2개에 그쳤다. 엔씨소프트도 아직 '리니지2M'을 출시하지 못했고, 스마일게이트도 '에픽세븐' 외에 1년 가까이 신작에 대한 특별한 소식을 내지 못하고 있다.
즉, 10위권에 안착할만한 대형 게임사들의 대작 게임들이 계속 출시가 늦어지면서 해외 게임사들로부터 10위권 진입을 허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에 지친 게이머들이 국산 모바일 게임에 점차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겜심이 해외 게임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해외 게임사들의 선전 이유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업계에 '허리'가 극단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점이 장기적으로 국내 게임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양성을 겸비한 허리 라인을 강화하지 않으면 해외 게임사들에게 더욱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런 게임의 강자였던 데브시스터즈, 퍼즐 게임의 최강자인 선데이토즈, SNG에 강자인 파티게임즈, 모바일의 터줏대감 게임빌 같은 전통적인 강자가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30~40명 수준의 회사들이 시장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RPG가 아닌 특이 장르를 극한의 완성도를 갖춰 돌파하려는 해외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게임사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갈수록 해외 게임사들의 국내 시장 대응 전략이 치밀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는 3N을 비롯한 몇몇 개발사들 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현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대기업들도 허리 라인을 받치는 개발사들을 적극 지원하고 국가에서도 다양성을 갖춘 회사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