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추리와 크툴루 세계관의 끈적한 만남 ‘싱킹시티’
세상에 수많은 전설과 신화 중에서도 공포 문학의 거장 H.P.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사례로 손꼽힌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두 살 동생인 J.R.R 돌킨이 창조한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처럼 19세기에 탄생했지만, 총과 증기선이 등장하는 현대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간은 우주적 존재들에 의해 미치거나, 사망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이 펼쳐 지기 때문.
비록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 신화’의 모든 것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이 한 명의 작가 손에서 탄생한 세계에 매료된 후대 작가들에 의해 점점 살이 붙고, 확장된 ‘크툴루 신화’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한 공포를 다룬 ‘코스믹 호러’의 근본이 된 것은 물론, 수 많은 서브컬처 장르에 영향을 미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과 소설 그리고 각종 문학 장르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크툴루 신화지만, 정작 이를 주제로 한 게임의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주사위를 굴려 진행하는 TRPG의 경우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걸출한 명작이 있긴 하지만, PC, 콘솔 등의 게임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으며, 얼마전 발매된 ‘콜 오브 크툴루’는 정말 애매한 게임성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번에 소개할 ‘싱킹시티’는 이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 중에서도 색다른 스타일로 무장해 원작을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싱킹시티는 크툴루 세계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마을인 인스머스가 소거된 이후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오크몬트는 도시의 절반 가까이가 물에 잠기고 초자연적인 힘이 드리워진 마을로, 반인반어에 가까운 불쾌한 외형을 지닌 인스머스의 이주자들과 기묘한 힘에 이끌려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 덕에 마을 곳곳은 고래의 사체나 촉수나 신체의 일부를 달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동물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 대다수도 두통이나 정신병에 시달리는 등 사람과 사물 그리고 환경까지 정상적인 부분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때문에 싱킹시티는 크툴루 신화 특유의 불쾌하고, 꺼림칙한 분위기는 역대 어느 게임과 비교해도 제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원작 팬들에게는 만족감을, 원작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기괴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
게이머는 사립 탐정이 되어 도시와 그 곳의 주민들을 홀린 초자연적인 현상의 정체를 밝혀내는 다양한 퀘스트를 맡게 된다. 액션이나 어드벤처 성향이 강한 이전까지의 게임에 비해 싱킹시티는 추리물에 가까워 사건(임무)를 접수하고 단서를 추적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부분은 사건의 위치가 맵에 표시되지 않고, 게이머가 지도를 직접 보고 발로 뛰어가며,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등장하는 게임 중 상당수는 퀘스트 장소를 표시해 주거나, 단서를 명확하게 표현해 주는 반면, 싱킹시티는 이러한 기능이 없어 “~가와 ~가 사이” 혹은 “~가, ~가 교차로에 위치” 등의 애매한 단서만 가지고 직접 움직여야 한다.
더욱이 오픈월드 방식으로 구현된 만큼 지역도 상당히 넓어 메인 퀘스트와 부가 퀘스트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였다. 다만 '마음의 눈'으로 집을 볼 경우 약간 기울어진 ‘H’로 표시되기 때문에 미션을 진행하는 곳을 구분할 수 있었으며, 수 많은 몬스터가 출몰하지만, 그 만큼 쏠쏠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역병 지역’도 존재해 맵을 공략하는 재미를 더했다.
수사 방법도 쉽지는 않다. 게이머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이전에 벌어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단서를 추적할 수 있으며, 일정 단서가 모이면 ‘역행 인지’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여러가지 단서를 모은 게이머는 사건의 순서를 정리하는 ‘마인드 팰리스’를 통해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이때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인물이 사망하거나, 마을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하는 등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 있어 자유도를 높였다.
더욱이 마을 속 대부분의 집은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이 출몰하는데, 덫을 깔아 대미지를 주거나, 슈류탄 혹은 총기를 이용해 이들을 처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총알이나 무기의 재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무작정 전투를 하기 보다는 캐릭터를 앉게 하여 인기척을 죽이고, 몬스터를 피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게임의 그래픽은 조금 아쉬운 편이다.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크툴루 세계관 특유의 분위기는 잘 살렸지만, 문을 열거나 상자에 오르는 등의 물리적인 측에서 어색함을 감출 수 없으며, 전투의 경우 타격감이 거의 없어 내가 급소를 맞춘 것인지, 빗맞힌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처럼 싱킹시티는 몇몇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추리와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크툴루 신화를 제대로 버무린 작품이었다. 특히, 증거와 단서를 모아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마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느껴볼 듯한 추리의 즐거움과 괴물들을 상대하며, 비밀을 파헤치는 스토리의 재미도 함께 느껴볼 수 있어 매우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평소에 크툴루 신화를 좋아하거나, 어드벤처 장르 중에서도 추리 요소가 포함된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싱킹시티는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