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결승 문턱 넘지 못한 LCK, 남은 숙제는?
한국 LCK의 세계 무대 도전은 4강에서 결국 끝이 났다.
LCK의 희망을 걸고 출전한 SK텔레콤T1(이하 SKT)와 그리핀 그리고 담원 게이밍이 도전장을 낸 '2019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2019 롤드컵)의 여정이 지난 3일 막을 내렸다.
이번 2019 롤드컵은 한국 LCK에게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최된 롤드컵에서 LCK는 사상 최초 8강 전원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는 물론, LOL 국제 대회에서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우승 횟수 0'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 LCK 위기론이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하게 부각된 바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2019 시즌서 LCK는 비록 타 대회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리프트 라이벌즈'의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경기력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9 롤드컵 플레이인 스테이지와 그룹 스테이지에서 3개 팀 모두 조 1위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해 과거 전세계를 호령하던 LCK의 면모를 다시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 롤드컵 준우승팀인 유럽의 강호 프나틱과 우지(지안 쯔하오)를 앞세운 '로얄 네버 기브업'(RNG) 등 우승권 팀들이 한 곳에 모인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로 불리던 B조에 배치된 SKT는 빠른 피드백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연한 플레이로 조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 팬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전원 조 1위 진출이라는 결과가 무색하게 4강 대전이 끝난 현재 LCK 3개 팀은 각각 G2와 IG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승행이 좌절되어 2년 연속 한국 팀 없는 결승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 ‘졌잘싸’가 무엇인지 보여준 SKT, 페이커 시대의 다음을 생각할 때
이번 롤드컵 본선 토너먼트에서 가장 백미였던 경기는 SKT와 G2의 4강전이었다. 중국 팀들 간의 내전으로 시작된 ‘IG’와 ‘펀플러스 피닉스’의 4강 1경기가 얼굴만 마주치면 바로 한타가 벌어지는 난타전을 보여주었다면, SKT와 G2의 2경기는 현시대 LOL 메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운영전을 선보여 수 많은 팬들의 눈을 호강시켜 주었다.
이 경기에서 보여준 G2의 경기력은 LCK에서 선보인 '운영 메타'를 한단계 진화시킨 것이었다. 이번 롤드컵에서 G2는 드래곤, 타워 혹은 바론과 전령 등 이른바 오브젝트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오브젝트 대치전'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속하고, 과감한 운영과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식의 운영으로 상대팀들에게 곤욕을 치르게 만들었다.
실제로 4강 2경기에서도 LCK 운영의 정점에 선 SKT에게 맞선 G2는 바텀을 찌르면 탑을 공략하는 것을 넘어 전령을 사냥하고, 예측 못한 동선으로 나타나 챔피언을 잡아내는 등 기상천외한 패턴으로 SKT를 쉼없이 괴롭혔다. 특히, 2경기에서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한 대지 용을 과감히 포기하고, 곧바로 탑으로 이동해 레넥톤을 잡아내며 스노우볼을 굴리는 모습은 정확하고, 소름끼치는 G2의 순간 판단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모습 중 하나.
단일 시즌 역대 최강팀이라는 칭호를 G2를 맞아 ‘졌잘싸’(졌지만 잘 싸운) 경기력을 보여준 SKT지만, 롤드컵의 여정이 마무리된 이후 많은 숙제가 남은 모습이다. 이번 4강전에서 SKT는 벤픽에서 상대에게 주요 챔피언을 내주거나 견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서포터 에포트(이상호)가 2세트부터 급격히 흔들려, 마타(조세형)이 투입되는 등 특정 포지션이 약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 페이커(이상혁)와 함께 영광의 시대를 보냈지만 이제는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도 이번 롤드컵에서 SKT에게 남은 과제 중 하나다. 이번 롤드컵에서 페이커는 엄청난 플레이로 여전히 세계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킬관여율은 58%로 역대 롤드컵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사망하는 장면이 등장해 ‘페이커’ 답지 않은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주었던 것이 사실.
물론, 킬관여율이 성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스탯은 아니며, 2013년 데뷔 이후 무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페이커의 위상은 여전히 대단하다. 하지만 매년 경의로운 플레이로 세계를 전율시킨 ‘불사대마왕’은 세월이 야속하게 인간계로 내려오고 말았고, 페이커와 함께 영광의 시대를 같이한 SKT 역시 팀 최고의 에이스 이후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장기 플렌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온 모습이다.
- 가능성 보여준 담원, 다음 시즌 기대 증폭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둔 팀은 담원 게이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CK에 데뷔한 이래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준 담원 게이밍은 이번 롤드컵에서 초반에는 다소 흔들렸지만, 플레이인 스테이지 단계부터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조1위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지난해 디펜딩 챔피언인 IG를 만나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LCK를 넘어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담원‘이라는 팀을 완벽하게 각인시키기도 했던 것이 사실. 아울러 롤드컵에 나서 LCK 3팀 중 바텀 라인이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뉴클리어(신정현)과 베릴(조건희)가 제 역할을 충분하게 해줬다는 것도 이번 롤드컵에서 거둔 성과 중 하나다.
비록 롤드컵 첫 출전인 만큼 경기력이 들쑥날쑥한 점이 없잖아 있었고, 현 세계 최강팀으로 손꼽히는 G2를 만나 숨막히는 운영과 단 한치도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플레이에 아쉽게 8강에서 패배의 쓴맛을 봤지만, 담원의 장점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수확을 얻기도 했다.
특히, 탑과 미드 그리고 정글으로 이어지는 담원 게이밍의 상체 중심의 운영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세계 무대를 경험해본 바텀 라인이 보다 발전한다면, 2020 LCK 시즌에서 태풍의 눈으로 부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 폭풍전야의 그리핀, 의혹 해소가 먼저…
LCK 데뷔 후 그토록 염원하던 롤드컵 무대를 밟은 그리핀이지만, 경기 보다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더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롤드컵에서 그리핀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담원과 SKT를 집으로 돌려보낸 G2에 맞서 1위 결정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연속 승리를 거둔 것은 그리핀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이번 롤드컵에서 G2가 당한 두 번의 패배가 모두 그리핀이라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IG를 상대로 만난 8강 1차전서 그리핀은 소드(최성원)이 담당한 탑라인이 완전히 무너지며, 3:1로 패배하고 말았다. 더욱이 에포트가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자 곧바로 마타를 출전시킨 SKT와 반대로 탑라인의 부진이 극심함에도 롤드컵 진출과 2019년 서머 시즌 2위를 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도란(최현준)을 끝까지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비난을 받기 충분한 모습.
더욱이 경기력에 대한 관심보다 구단 운영에 대한 해명이 우선일 정도로 그리핀 구단 자체가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렸고, 이 사건을 조사 중인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중간 발표 역시 게이머들의 의혹을 해소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해 여전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롤드컵의 성과가 좋았다면 실력으로 대중에게 어필할 부분이 있었겠지만, 하필 가장 논란에 휩싸인 탑라인의 부진이 팀의 패배로 이어져 게이머들의 비난이 더욱더 커진 지금. 한국으로 돌아온 그리핀은 다음 시즌 선수단 구성보다 수 많은 의혹에 대한 해명이 먼저인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