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쟁이 없으면 퇴보한다. 버그 폭탄과 함께 돌아온 WWE 2K20
매년 이맘때면 스포츠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은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매년 숙제처럼 당연하게 찾아오는 후속작 구입 시즌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번 제목에 연도만 달라지는 녀석들을 보면서, 좀 더 사실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말에 기대감을 가지고 구입하지만, 만족스럽기보다는 실망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안이 없는 것을.
올해도 대안이 없기로 유명한 스포츠(?) 게임 WWE 2K20이 발매됐다. 그나마 경쟁작이라도 존재하는 축구, 농구, 야구와는 달리 WWE는 2K 시리즈 하나 뿐이다. 요즘처럼 한글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영문판 그대로 출시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한국 WWE 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나마, 작년에 발매된 WWE 2K19는 상당한 완성도로 등장하면서 팬들에게 간만에 만족스러운 신작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그동안 든든히 이 시리즈를 지켜온 유크스가 빠지고, 비주얼 콘셉츠 단독으로 개발을 맡으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 못지 않게 걱정도 컸다. 아니나 다를까 출시된 결과물을 보니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번 WWE 2K20의 가장 큰 변화는 여성 프로레슬러들의 활약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세계 챔피언 로만 레인즈 뿐만 아니라 RAW 브랜드 현 여성부 챔피언인 베키 린치가 표지 모델로 선정됐으며, 실제 선수들의 여정을 따라 즐기는 2K 쇼케이스: 더 위민스 에볼루션에서는 베키 린치, 샬럿 플레어, 사샤 뱅크스, 베일리가 어떻게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고, 마이 커리어 모드에서도 남녀 혼성팀의 성장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최근 WWE에서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위민스 레볼루션 캠페인의 영향이 게임에도 반영된 것이다.
전작에서 호평받았던 요소들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K 쇼케이스 뿐만 아니라, 로만 레인즈의 활약을 돌아보는 2K 타워: 로만의 군림, 온라인 플레이, WWE 유니버스도 건재하다. 또한, 180명 이상의 유명 선수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컷씬, 3,040개의 프로모 대사 추가, 슈퍼스타, 의류, 아레나 등을 직접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모드 등도 여전하다.
반격, 피니셔 등 몇가지 조작키를 강제로 변경하면서, 기존 조작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어색함을 준다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나, 땀 표현 등 그래픽도 조금 개선됐고, 게임 플레이도 작년과 비슷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호평받았던 전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다수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전작보다 발전된 모습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퇴보한 부분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 여성 프로레슬러의 비중을 높인 것은 현재 WWE의 트렌드를 반영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시리즈는 대대로 여성 모델링에 굉장히 취약한 편이다. 잘 만들지도 못하는 여성 프로레슬러들의 비중을 높이다 보니, 화면을 보는게 굉장히 괴롭다. 실제 경기로 들어가면 선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선수 선택화면에서 클로즈업된 여성 프로레슬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냥 실제 사진을 쓰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추가된 콘텐츠도 황당하다. 전작의 경우 현실적인 WWE 시뮬레이션에 집중하면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추가된 DLC인 범프 인 더 나이트에서는 좀비들로 변한 프로레슬러들이 등장해 대결을 펼친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할로윈을 겨냥한 듯한 DLC로 보이는데, 뼈 방망이, 거대 사탕, 죽음의 책 등 황당한 무기들이 등장해 경기를 4차원의 세계로 보내 버린다. 시합을 계속하면서 선수나 무기들을 획득하는 구조라서 수집하는 재미를 강조한 것 같은데, 안방에서 WWE의 열기를 대리체험하고 싶어 이 게임을 구입한 사람들이, WWE 느낌도 안나고, 관중도 없는 음침한 공간에서 시합을 하는게 즐거울 리가 없다. 이 황당한 오리지널 DLC는 앞으로 3번이나 더 나온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넘쳐나는 버그로 인해 정상적인 시합을 즐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합을 하다보면 선수가 로프에 끼고, 심판이 갑자기 얼어붙는 등 황당한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나마 콘솔 버전은 게임이라도 즐길 수 있지, PC 버전은 튕김 현상까지 심각해서 역대 최악의 WWE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비주얼 콘셉트에서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 패치를 내놓겠다고 하고 있지만, 팬들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분위기다. 역시 경쟁이 없으면 퇴보한다. 언제까지 WWE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이유로 배짱 장사를 할 것인지, WWE 팬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