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고 말았다. 좌절감을 안겨주는 동화, 오리와 도깨비불
게임을 구입할 때는 여러가지를 고려하기 마련이다. 검증된 개발사인지, 유명 시리즈의 후속작인지, 아니면 굉장히 유명한 개발자의 신작인지. 하지만, 가끔은 뭔가에 홀린 듯이 스크린샷 한 장에 취향 저격 당해서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는 경우가 있다.
몽환적인 느낌의 그래픽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오리와 눈먼숲 같은 게임이 바로 그런 게임이다. 이 게임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전임 시네마틱 아티스트 토마스 말러(Thomas Mahler)와 애니메이션랩의 전임 그래픽 엔지니어 젠나디 코롤(Gennadiy Korol)이 지난 2010년 설립한 문스튜디오가 2015년에 선보인 데뷔작으로, 신생 개발사 답지 않은 놀라운 완성도로 극찬을 받으며 전세계적으로 50개가 넘는 상을 휩쓴 바 있다.
기자 역시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스크린샷 한 장만 보고 반해버려서, 홀린 듯이 게임에 빠져든 기억이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말이 좋지는 않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평화가 오는 따사로운 그래픽과 달리 지옥같은 난이도로 인해 몇 번이나 패드를 집어던지고, 중도 포기해야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어린이들을 위한 다크소울이라는 별명까지 생겼겠는가!
이런 문스튜디오가 5년만에 오리와 눈먼숲의 후속작 오리와 도깨비불을 선보였다. 매력적인 그래픽과 사운드는 여전하고, 아쉽게 영문판으로 발매됐던 전작과 달리 한글판으로 출시됐다. 전작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긴 하지만, 5년만에 다시 만나는 오리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또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원래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
전작에서 죽어가는 니벨 숲은 구원한 오리는 전작의 마지막 보스였던 쿠로의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깃털로 다친 날개를 고치면서 다시 날수 있게 된 기쁨에 좀 더 먼 곳으로 날아간 둘은 갑작스런 폭풍우로 인해 위험한 숲으로 떨어지게 되고, 또 한번 위기에 빠진 숲을 구원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몽환적인 그래픽만큼이나 인상적인 감정선을 보였던 전작의 연출 능력은 이번작에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오리를 돌봤던 나루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기에 빠트린 적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쿠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오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초반부는 인생을 담은 4분이라는 극찬을 들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UP의 초반부를 연상시킨다.
사실, 첫인상만으로는 그래픽이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래픽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느껴질 정도의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전작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보다보면, 어제 본 친구들을 오늘 다시 보는 듯한 친숙함까지 느껴진다. 개발진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전작이 워낙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XBOX ONE X에서 4K와 HDR로 즐긴다면 좀 더 발전한 그래픽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S보유자라 이시점에 X를 다시 살수도 없고 -_-;)
다만, 그래픽과 달리 게임플레이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각종 스킬을 획득해서 갈 수 없었던 곳들을 돌파하는 메트로바니아식 구성은 전작과 동일하지만, 전작의 마지막에서 정령 사인을 반납한 오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무기를 지급하면서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전작에서는 사인 하나면 근접은 물론, 원거리까지 한방에 해결되기 때문에 액션이 좀 밋밋해서, 퍼즐의 비중이 좀 더 높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정령 칼날, 정령 화살, 정령 망치 등 다양한 형태의 무기를 취향에 따라 골라서 사용할 수 있으며, 도망치는 것 위주였던 전작과 달리 본격적인 보스전까지 등장하면서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특히, 보스전 전에 겪게 되는 추격신은 모든 지형이 다 파괴되는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조금만 삐끗해도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쫄깃함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다른 게임에 등장하는 거대 괴물도 아니고, 두꺼비, 거미, 새 정도인데, 왜 이리 무섭게 보이는지.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깃털만큼이나 작은 주인공의 입장에 몰입되기 때문인 것 같다(다시 한번 느끼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대형견 입마개는 선택이 아닌 필수!)
또한, 선형 구조여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였던 전작의 스킬 트리와 달리 다양한 능력을 가진 정령을 수집하고, 업그레이드해서 부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초반에는 정령 슬롯이 3개 뿐이지만, 플레이를 통해 슬롯을 늘리면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액션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전작에서 많은 이들을 좌절시켰던 퍼즐 난이도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개미집만큼이나 복잡한 맵을 돌다니면서 각종 스킬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갈 수 없었던 지역을 돌파하는 메트로바니아 식 구성이기 때문에, 나중에 알고 나면 허탈하지만, 막힐 당시에는 버그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막함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메트로바니아 장르의 특성상 문제 해결을 위한 힌트를 전혀 주지 않으며, 조금만 실수해도 함정에 빠져 바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같은 곳을 계속 반복하다가 보면 “왜 이걸 사서 이 고생을 하는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이번 작에는 상호작용할 수 있는 NPC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퀘스트를 주기 때문에, 전작보다 훨씬 더 좌절의 순간이 많이 찾아온다. 맵에서는 보이는데, 막상 가보면 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 속의 함정을 잘 피해서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호흡이라는 정령 스킬이 필수적이고, 암흑 지대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오리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섬광이라는 스킬이 필수적이지만, 다른 게임처럼 이걸 먼저 획득하도록 안내하는 친절함 따위는 이 게임에 절대 없다. 눈 앞에 보이는 목적지를 아슬아슬하게 안되도록 만들어둬서 자신의 조작 실력을 탓하게 만들고,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다보면 그제서야 해결책을 획득하게 되는 식이다. 심지어 가시 덤불 때문에 올라갈 수 없는 곳처럼 보이게 만들어뒀지만, 충격을 받을 때의 잠깐의 틈을 이용해 점프해서 올라가야 하는 곳들도 있다. 물론 나중에 스킬을 획득하면 아무런 피해없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들이지만, 관련 스킬의 존재를 모를 당시에는 개발자의 악랄함에 치를 떨게 된다. 아무리 장르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조금은 더 친절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소모포어 징크스라는 말이 있듯이 엄청난 작품의 후속작은 전작의 무게감에 짓눌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스튜디오는 전작 이후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 오리와 도깨비불을 전작을 능가하는 예술 작품으로 완성했다. 메트로바니아 장르 특유의 불친절함 때문에 여전히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 출시 초기인 만큼 프리징 현상 같은 약간의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몽환적인 그래픽과 감동적인 스토리, 짜임새 있는 퍼즐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까지, 메트로바니아 장르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2010년 문스튜디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발 빠르게 투자를 결정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도 XBOX를 대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리즈를 갖게 됐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개발자와 그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대형 회사. 게임 업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다. 플레이할 때는 몇 번이고 패드를 집어던지고 싶을 생각이 들 정도 짜증이 몰려왔지만, 감동적인 엔딩을 보고 여운에 잠긴 지금은, 5년 전에 인내심 부족으로 포기했던 오리와 눈먼숲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