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PS4로 돌아온 영웅전설 제로의 궤적. 비타의 흔적이 사라져간다
탄탄한 마니아층으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예약 판매 수량이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팔콤의 인기 게임인 영웅전설 궤적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제로의 궤적이 PS4로 등장했다.
처음 발매될 때는 PSP 버전만 나왔으나, 이후 그래픽을 업그레이드 해 PS비타로 출시하고, 이번에 PS4까지 진출했다. 작년에 출시돼 화제가 된 섬의 궤적 1&2 kai처럼 이전 세대 플랫폼으로 발매됐던 영웅전설을 PS4로 모두 집결시키는 작업이다.
워낙 유명한 게임인 만큼 마니아들에게는 상식이겠지만, 제로의 궤적은 시기적으로 궤적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하늘의 궤적과 최근 스토리가 완결된 섬의 궤적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는 제국과 공화국 사이에 위치한 크로스벨 자치주이며, 시민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경찰에 새롭게 배정된 특무지원과 4인방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그리고 있다. 궤적 시리즈가 같은 세계관을 기반으로 모든 시리즈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하늘의 궤적 3부작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에스텔과 요수아도 만나게 된다.
유격사들의 활약으로 인해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경찰의 위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주인공들의 활약을 다룬 작품인 만큼, 대부분의 플레이가 마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주민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작업의 연속이다. 다른 RPG와 마찬가지로 여러 몬스터를 잡으면서 레벨업을 하게 되지만, 몇몇 의뢰의 경우에는 전투가 하나도 없이 그냥 조사와 대화만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전투가 중심인 게임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웅전설 시리즈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극대화된 느낌이라, 시리즈 중에서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사실, 예전 PSP로 등장했던 게임을 PS4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팔콤 팬이 아니라면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긴 하다. 작년에 등장했던 섬의 궤적1 kai와 마찬가지로 휴대용 게임기에 맞춰서 나온 그래픽을 거실TV로 보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제로의 궤적은 원래 PS 비타보다 더 성능이 떨어지는 PSP로 나왔던 게임이다. 고작 4.3 인치였던 PSP 화면에 맞춰서 나온 게임을 늘려서 커다란 거실 TV에서 보는 것이니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물론, PS비타로 재출시하면서 한번 업그레이드됐고, 이번에 PS4로 발매하면서도 상당 부분 개선 작업을 진행해서, 이전 PSP 버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깔끔해진 것은 사실이다. PS 비타 버전이 아닌 PSP 버전을 옮겨온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지루한 게임 속도를 보완해주는 고속 스킵 모드와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던 일제 공격의 스킵 기능, PS4에 맞춘 화질 개선 및 인터페이스 개선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예전 버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투 스킵 기능 추가만으로도 변비가 해결된 듯한 기분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PSP 시절에는 일본어 버전만 발매됐고, PS 비타 버전은 한글화되긴 했지만, 다운로드로만 발매됐기 때문에, 팬들 입장에서 제대로 된 한글 패키지 판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4K 해상도를 논하고 있는 요즘 게임에 적응된 사람들에게는 구 시대의 유물이겠지만, 영웅전설 시리즈 팬 입장에서는 분명 소장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영웅전설 팬 입장과는 별개로, PSP에 이어 PS비타까지 꾸준히 구입한 사람 입장에서 이 게임을 보면 감정이 좀 복잡하다. 나름 PS비타를 지탱하는 인기 게임이었으니 말이다. 섬의 궤적 1&2에 이어 제로의 궤적, 곧 나올 벽의 궤적까지 PS4로 이식되기 때문에, 이제 PS비타로만 즐길 수 있는 영웅전설은 하늘의 궤적 시리즈만 남았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기기이긴 하지만, 이제는 살아있었다는 흔적까지 조금씩 지워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