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로벌 IP 부자들, 왜 중국과 손을 잡나
전세계 게임 시장이 IP 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명 IP를 가진 회사들과 게임사들의 만남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의 급부상과 함께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손으로 등극한 중국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IP들을 블랙홀처럼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어느 정도 이름을 들어본 IP라고 하면 대부분 중국 게임사들이 붙어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뮤, 미르의 전설 등 한국 게임 IP들이 중국 게임사들의 주요 타겟이었지만, 이제는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 게임을 넘어선 영역까지도 모두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텐센트가 IP 제휴에 관해서 굉장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포켓몬 컴퍼니와 손을 잡고 포켓몬 IP를 활용한 신작 AOS 포켓몬 유나이트를 선보인다고 발표했으며, 개발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도 디아블로의 모바일 버전은 넷이즈와 손을 잡았다. 넷플릭스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HBO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유주게임즈코리아를 통해 모바일 게임으로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과거 한국이 온라인 게임으로 전세계를 호령할 때만 하더라도 인기 IP를 가진 회사들이 한국 개발사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제는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 상황이다. 심지어 한국 마저도 자체 IP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중국 게임사와 협업하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IP 부자들이 앞다투어 중국과 손을 잡는 이유는 중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큰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전세계 모바일 게임 퍼블리싱 회사 순위를 살펴보면 텐센트와 넷이즈 등 중국 게임사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시장 규모가 2013년 117억 위안에서 2019년 1581억 위안으로 13배 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 전세계가 아니라 중국에서만 성공을 거둬도 세계적인 매출 성적을 기록하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 내 판호 정책의 변화로 인해 외산 게임 판호 발급이 제한되면서 글로벌 IP 부자들이 중국 게임사와 손을 잡아야 하는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외자 판호를 획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중국 내 출시를 위해서는 무조건 중국 개발사가 개발을 담당해서 내자 판호를 신청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단지 중국 판호 정책의 영향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중국 개발사들의 개발실력 상승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과거에는 수준 낮은 개발력으로 짝퉁, 양산형 게임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최근에 출시되는 IP 게임을 보면 “원작을 그대로 옮겼다” 혹은 “원작보다 낫다”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단적으로, 웹젠만 봐도 뮤 IP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했던 모바일 게임들이 전부 망했지만, 중국에서 개발한 뮤 오리진 1편과 2편,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뮤 아크엔젤까지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뮤 IP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모바일RPG 음양사도 넷이즈가 만들었지만, 일본 개발사가 만든 것으로 착각할 만큼 완벽하게 IP를 잘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매출 상위권을 오랜 기간 이름을 올렸으며, 가장 대표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IP라고 할 수 있는 원피스, 나루토 등도 중국 개발사가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해 호평 받은 바 있다.
콘솔 쪽에서 등장한 애니메이션 IP 게임들에 대한 원작 팬들의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중국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들은 좋은 평가에 매출까지 엄청나니, IP 부자들이 중국 개발사와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워낙 유명한 IP들이라 IP의 유명세에 덕을 봤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즈 오브 킹덤즈나 AFK 아레나, 소녀전선, 붕괴3rd 같은 비 IP 게임들을 보면 중국의 전체적인 개발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원작자와 협의도 없이 무단으로 가져다 쓰다가 논란이 됐었던 중국 게임사들이 이제는 정상적인 IP 제휴를 통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국내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이 많이 부담스럽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돌입한 지금에는 한국 게임사들의 글로벌 확장 정책에 중국 게임사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온라인 게임 시절 만들어둔 미르의 전설,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같은 탄탄한 자체 IP들 덕분에 한국 게임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중국이 계속 자체 IP 게임을 발전시켜다보면 더 이상 한국 IP들이 필요 없어지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지금이야 한한령 때문에 한국 게임들이 중국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한한령이 풀린다고 하더라도 중국 시장에서 한국 게임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게임업계에서는 여전히 중국 개발력이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한한령만 풀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미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온라인 게임 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