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형과 MMO의 장르 한계를 넘기 위한 고민. 그랑사가
세븐나이츠 개발진이 설립해 화제가 된 엔픽셀의 야심작 그랑사가 예상했던대로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출시전 사전예약 500만명을 돌파하며 게임업계를 놀라게 하더니, 지난 26일 출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인기작의 기준이라는 양대 마켓 인기 1위는 물론, 애플스토어 매출 4위, 구글플레이스토어 매출 6위까지 올랐다.
세븐나이츠 개발진이라는 명성 덕분에 설립 후 600억이 넘는 투자유치를 한 곳이니, 신생 개발사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그래도 첫 작품부터 이 같은 성과를 낸 것은 엄청난 일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캐릭터, 그리고 유명 연예인을 기용한 파격적인 광고 등 여러 가지가 같이 화제가 된 덕분이지만, 무엇보다 작년을 장악한 유명 IP 기반 MMORPG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개성적인 게임 플레이가 이 같은 성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엔픽셀로 새롭게 출발한 이들이 자신들의 이전 성과를 넘어서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수집형과 MMORPG의 장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지난해 말 출시된 넷마블의 세븐나이츠2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서 수집형MMORPG라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그랑사가는 같은 수집형MMORPG이긴 해도 세븐나이츠2와는 약간 다른 방식의 진화를 선택했다.
보통 수집형RPG의 경우 다양한 캐릭터를 수집하는 재미가 있지만, 갈수록 강한 캐릭터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초반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MMORPG는 단 한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수집형RPG만큼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장비를 수집하긴 하지만, 장비는 상위 장비가 나올 때까지 거쳐가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랑사가는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캐릭터를 6명으로 고정했다. 대신,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에 캐릭터성을 더해 그랑웨폰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랑웨폰은 카드 형태로 만들어져 캐릭터당 4개까지 장착할 수 있으며, 높은 등급, 특히 변신SSR 등급의 그랑웨폰은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존재로 변신해 강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6명의 캐릭터 중 3명의 캐릭터를 골라 전투를 하게 되지만, 평소에는 한명만 조작해서 역동적인 전투를 즐기다가, 보스전 등 강력한 적과 싸울 때는 3인이 모두 나와 협력 플레이를 즐기는 방식으로 두 장르의 강점만을 취했다.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인 만큼, 이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서는 협력 플레이가 기본이 될 수 밖에 없지만, 1인 전투 상황을 기본으로 선택하고, 협력 플레이를 중요 상황에서 경험하게 하면서, 다수의 캐릭터를 동시 조작해야 하는 협력 플레이에서는 보여주기 힘든 역동적인 컨트롤의 재미까지 추구한 것이다.
이런 형태는 주력 캐릭터 몇 명만 육성해서 스토리를 밀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성 시스템을 통해 모든 캐릭터가 고르게 필요한 상황을 만들면서, 결국 버려지는 캐릭터 없이 전부 애정을 가지고 육성하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처음부터 보던 캐릭터들이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주도하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자칫 카드 형태로 구현된 장비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그랑웨폰 역시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자아를 가진 캐릭터로 인식될 수 있도록, 인연도 개념을 넣었다. 그랑웨폰을 반복해서 사용하다보면 인연도 랭크가 올라 그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극초월, 한계돌파 등을 통해 그랑웨폰이 역시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구현했다. 특히 각 캐릭터마다 한명씩 존재하는 변신SSR 등급의 그랑웨폰은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성 가지고 있어, 그랑사가 매출 순위 상승에 지대한 공을 세우는 중이다.
지금은 오픈 초기인 만큼 메인 스토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강력한 캐릭터성을 보유한 그랑웨폰 관련으로도 새로운 스토리를 전개할 여지도 있으니, 그랑사가에 있어서 그랑웨폰은 이쁜 일러스트로 표현된 장비를 넘어서는 미래 가치를 보유한 게임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도전적인 시스템에 언리얼엔진4를 활용한 화려한 그래픽, 그리고 인상적인 컷신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왕도형 스토리가 더해지니, 게임 플레이를 하다보면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일본산 콘솔 게임을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미호요의 원신과 마찬가지로, 기존 모바일MMORPG의 전형적인 모습에 지친 이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지금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끌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신생 개발사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 놀라울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모바일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워낙 원색의 그래픽이 화려하고, 인터페이스가 복잡하다보니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기에는 전반적으로 눈에 굉장히 피로하다. 요즘 모바일MMORPG들은 모바일과 함께 PC버전 제공이 기본이 되어 있는데, 그랑사가는 특히 모바일 버전에 비해 PC버전의 플레이 만족도가 훨씬 높다.
게다가 주인공의 레벨과 장비, 거기에 아티팩트, 패시브에 해당하는 소울링크 등 육성 시스템이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 용어와 인테페이스가 익숙치 않다보니, 복잡한 육성 시스템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진다. 어차피 적응의 문제이긴 하나, MMORPG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좀 더 직관적인 형태로 변화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리세마라를 해서 변신SSR 등급을 뽑아도, 시작부터 쏟아지는 생소한 개념과 수많은 버튼들에 지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감을 잡기 힘들다.
또한, 인상적인 캐릭터, 깊이 있는 성장 구조 등 수집형의 강점을 극대화시킨 싱글 플레이 부분에 비해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하는 MMORPG 장르의 장점을 드러낼 만한 콘텐츠도 아쉽다. 필드 보스, 파티 던전, 길드 등 있을 만한 것은 다 있지만, 구색 맞추기 정도이지, MMORPG 특유의 협력과 경쟁의 재미를 느끼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부분 만큼이나, 아쉬운 점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서비스를 시작한지 겨우 3일된 게임이다. 엔픽셀 개발진들이 이용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그랑사가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결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