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3, 그것이 존재하는 자리는 어디인가

인류의 탄생이래 이처럼 '노는 일'에 대해 전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을까. 소니와 마이크로 소프트, 그리고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시장 쟁탈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이는 비단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세계 유수의 경제지는 물론 일간지며 주간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소니의 PS3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360, 그리고 닌텐도의 Wii와 관련한 기사를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화 전문지까지도 종종 이들 세 가지 가정용 게임기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PS3. 차세대 미디어인 BD 시스템을 기본으로 탑재한 PS3가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연간 수 십 조 달러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미디어 시장의 패권이 BD 시스템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이번 게임기 전쟁에 대한 각계의 관심은 기기의 승패 싸움보다는 BD 시스템의 성공 가능성 여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PS3에 대한 여론은 최악이다. 염가형/표준형 모델 간의 기능 차이, 진동 기능의 삭제 등등 갖은 악재를 안고 있는 PS3는 이미 전세계 게이머들의 '공공의적'이 되어 갖은 질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려 700달러를 넘나드는, 게임기로서는 터무니 없이 높은 기기의 가격.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기기 가격 상승의 주범은 바로 PS3가 가장 자랑으로 삼고 있는 BD 시스템과 CPU인 Cell 칩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을 겨냥하는 제품으로서, 가격이 높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업계의 초보도 아닌 소니가 '실수'로 이러한 선택을 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러한 약점을 감수하면서 까지 BD 시스템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 소니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대 PS의 성공이래 소니 그룹 내에서 PS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비대해져 왔다. 매출 금액 자체로만 본다면 그룹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게임이 차지하는 순이익면에서는 가히 소니 그룹의 주력 산업 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한 때는 그룹 전체의 순이익 중 PS2를 위시한 게임 산업의 총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넘겼던 적도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의 '주식회사 소니'가 게임산업에 '의지 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난 E3 2006에서 PS3의 발표가 있은 후 소니의 주식이 수직 하강했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나마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업의 총 이익이 한 두 가지 사업에서 집중적으로 산출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해당 사업에서 큰 실패를 겪을 경우 그 때문에 기업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현재 소니는 기껏 강적들을 물리치고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된 가정용 게임 사업 자체에 있어서도 마이크로 소프트라는 괴물급 라이벌이 등장한 때문에 계속해서 지금처럼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 더해, 가정용 게임 시장의 흐름 자체가 고 비용-고 리스크의(이에 대해 추후 이야기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악순환을 시작하고 있어 사업 기반 유지 자체가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처럼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직 기업의 강점이 남아있는 사이에 이를 이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 반도체, TV 심지어는 자랑해 마지않던 노트북과 휴대용 음악 재생기기에서 조차 타기업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소니가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사실상 단 한 장, 기정용 게임 산업에서의 절대적 강자라는 입지 밖에 없다.

시류의 흐름이 소니를 버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소니 스스로가 이전부터 착실히 준비해 왔던 것인지를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어쨌든 소니에게는 무척 다행한 일로, PS3와 BD 시스템의 런칭에 발맞추어 HD 디스플레이 붐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 흐름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앞으로 최소 5년간은 마이크로 소프트와 닌텐도라는 두 강적에 시달리며 불안한 걸음을 해야 한다.

소니가 PS3에 BD를 표준 탑재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2년 전 BD 시스템과 PS3에 대한 개요가 발표될 당시, 이미 소니는 당장 5년 후를 기약 할 수 없는 기업이었다. 쿠다라기 회장으로서는 좋든 싫든 새로운 미디어 표준을 세우는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주사위는 던져졌고, 소니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남은 것은 PS3의 성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 성과는 어떠한가?

이전에 두 차례나 밝혔지만, HD 급 TV인 브라비아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영화 타이틀의 가격을 낮추어 영화 산업을 끌어들인 것은 소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도 그만큼 멋진 수를 두고 있는가 하면, '글쎄?'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지난 E3 2006을 기점으로, 최근 구타라기 회장의 인터뷰에서는 'PS3를 PC로 생각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Cell 칩의 강력한 연산 능력과 BD 시스템이 자랑하는 1080P급 영상에 대한 어필이 주를 이루던 이전을 생각하면 다소 당혹스럽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PS3를 게임기 겸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난 BD 플레이어로 납득시킬 수는 있어도 PC로 납득 시키기는 어렵다. 최소한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 혹은 매킨토시용 오피스와 호환되는 문서 편집 프로그램과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호환되는 웹 브라우저, 그리고 USB 키보드 지원 여부를 발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일반 소비자'들은 PS3를 PC로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위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하여 PS3가 PC로 인정 받는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는다. 실제 PC 쪽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IT쪽에서는 당장 올 연말에 출시되는 인텔의 새로운 CPU인 '콘로'와 ATI 또는 nVIDIA의 신형 그래픽 카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탑재할 수 있는 메인 보드를 합한 가격이 표준형 PS3 보다 저렴하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구타라기 회장의 바람대로 PS3가 PC로 인정받아버린다면, 이번에는 마이크로 소프트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진 매머드급 PC 판매 체인, 델과 애플의 '태클' 까지 떠안아야 한다.

이 부분을 타파하려면, 소니는 PS3의 핵심 CPU인 '셀' 칩의 양산화를 위해 바이오 노트북이라든지, 핵심 서버군에 '셀' 칩을 탑재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셀' 칩의 범용화를 더욱 확고히 추진해야 한다. '셀' 칩 자체가 향 후 1, 2년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고성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제품이 많이 출시되면 될수록 PS3는 유리해진다. 어디까지나 소니 측에서 PS3를 PC화 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전략의 일부로 봐도 좋을 것이다.

다시 원론적으로 돌아와서, 어쩌면 소니 측에서는 옛날 PS2가 그랬던 것처럼 PS3 역시 발매 초기에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BD 플레이어'라는 장점을 살려 어떻게든 거실로 숨어들 수 있으리라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서, 게임기로서 네트워크 플레이를 핑계 삼아 광대역 통신망 케이블을 거실로 끌어낼 수 있다면 그 때부터는 거실의 인터넷 단말로서 거실을 점령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후에는 인터넷 방송이며 홈쇼핑, 쌍방향 TV 등등 다양한 콘텐츠를 런칭하여 현행 PC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의 대부분을 가로채는 것도 꿈꿀 수 있다. 어차피 일반 유저들이 사용하는 PC의 기능이 바로 저런 것들이니까.

이 달콤한 이야기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비즈니스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마이크로 소프트는 그 훌륭한 XBox LIVE 서비스 망을 가지고도 인터넷 방송이나 홈 쇼핑 등의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채산성, 즉 '돈'이기 때문이다.

PS3를 위한 각종 웹 콘텐츠들이 수익을 거두려면 PS3의 보급율이 PC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극히 높은 상태에서, PS3를 통한 네트워크 접속률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대다수의 미국 청년들이 옥션이나 아마존을 살피기 위해 PC 대신 PS3에 전원을 넣으려 하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현재의 추이를 살펴보자면 소비자들은 가족을 위해 거실에 PC를 들이기는커녕 고성능 노트북 등 개인을 위한 PC를 추가로 구입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냉정하게 현재의 상황을 말하자면, 소니가 PS3를 공중에서 무상으로 살포하지 않는 한 PS3가 한 집 걸러 한대씩 보급될 확률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구매력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게 될 확률이 절대적으로 더 높다. 소니가 바라는, 거실용 PC가 요구되는 세상은 당분간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PC로 활용되지 않더라도 BD 시스템의 보급툴이라는 것만으로도 PS3는 다시 한 번 소니를 일으켜 세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소니가 이러한 BD 시스템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앞서 언급한 불안요소는 PS3에 굉장히 위협적인 것 또한 틀림없다. 게다가 PS3는 게임기라는 태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Xbox360 진영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게임 서드파티를 구성하고 비싼 가격에라도 기꺼이 구매할 수 밖에 없는 대작 타이틀들을 기관총을 연사하듯 뿜어내야 할 것이다.

BD전략과 함께 강력한 게임에 대한 매리트를 줄 수 있는 전략이 함께 했을 때, 비로소 PS3는 '콘솔 게임의 제왕'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최낙윤(hjhan@kr.fujits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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