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바로 보기③]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청소년의 일과

오전 6시, 겨울이라 아직은 온 세상이 캄캄한 이 시간에 눈을 떴다. 알람을 듣지 못 해 10분은 늦잠을 잔 것 같다. 대충 세수만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채로 집을 나섰다. 아침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을 돕는다고 하던데 아침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공부 열심히 하고 일찍 들어와라”

어머니는 언제나 밤길 위험하니 일찍 들어오라고 하신다. 일찍 들어올 수 없다는 걸 아시면서 왜 맨날 저런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다. 뭐 다 나를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해도 뜨지 않아 세상이 온통 캄캄한데 학교를 향하는 버스에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녀석도 있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뭔가를 중얼거리는 녀석들도 있다. PMP, 휴대전화로 동강(동영상 강의)를 보는 녀석들도 제법 많다. 고2가 되고 난 후로 차 안에서 동강을 보는 아이들의 수가 더욱 늘어난 거 같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학교에 도착하고 오전 7시 30분부터 0교시 수업, 그러니까 흔히들 말하는 오전 보충수업이 시작된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도 많다. 수업 효율을 생각하면 도무지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남들 다 하는 데 혼자 뒤쳐질 순 없으니 잠을 쫓아가며 판서를 공책에 옮겨 적는다.

50분 수업 후에 주어지는 10분의 쉬는 시간. 수업시간 내내 졸던 녀석들이 일제히 살아나는 시간이다. 물론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뻔하다. 요즘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 이야기나 무한도전이 어쩌고 라스가 어쩌고 하는 예능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게임 이야기를 한다.

애들을 일일이 붙들고 물어본 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우리 반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은 게임을 하는 거 같다. 저기 0교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고 있는 저 녀석처럼 밤을 새서 게임을 하는 녀석도 있는 거 같지만 저런 녀석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특이한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밤을 새면서 게임을 하지? 졸리지도 않은걸까?

4교시, 아니 0교시까지 하면 5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찾아왔다. 평소 달리기 같은 건 힘들어서 하지 않지만 늘 이 시간이 되면 급식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일찍 가서 얼른 밥을 먹어야 그만큼 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아침도 못 먹어서 배고픈 나머지 밥을 흡입하다시피 먹었다. 덕분에 위염이 생겼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폭식하는 습관 때문이니 끼니를 거르지말고 천천히 씹어먹는 버릇을 들이란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의사선생님...

반복되는 수업 시간이 지나고 종례와 청소를 마치고 나니 오후 5시가 됐다. 종례를 마쳤으니 집에 가고 싶지만, 이 얘기는 정규 교과시간이 끝났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는 오후 보충수업과 야자(야간 자율학습)이 우리를 기다린다. 야자 끝나면 또 학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가끔 학원을 안 가는 날이면 놀자고 친구들을 모으는 녀석들이 꼭 있다. 웃기는 건 정작 놀려고 모이면 할 게 없다. 애초에 놀자고 한 녀석도 뭘 하고 놀 지 모른다는게 유머다. 농구나 축구가 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장소도 없고, 애초에 그럴만한 장소는 이미 대학생, 직장인들이 차지하고 앉아서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게임 말고는 마땅히 없다. 뭐 어차피 쉬는 시간에 게임 얘기 하는 친구들도 많으니, 게임을 해 두는 게 이 녀석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게임이 단순한 놀이를 넘어 청소년들의 ‘사교의 장’이 됐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처음에는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게 됐다.

여튼 오늘은 야자를 하고 학원을 가는 날이니 친구들과 노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야자를 마치고 학원을 다녀오니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집에 돌아오는 여기저기에 벌써 술 취해서 길에서 2차를 가야 한다느니 말아야 한다느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퇴근하는 누나를 만났다. 하굣길에 누나를 종종 만나고는 하는데 누나는 오늘 야근하고 술 한 잔 한 후에 집에 들어오는 길이란다. 평소 누나보다 먼저 집을 나가서 내가 늦게 들어오는 편인데 이렇게 길에서 누나를 만나니 너무 반갑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정리를 하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간다. 잠깐 한 숨 돌릴까 하고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에 접속한 친구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다같이 모였으니 슬슬 게임을 좀 해볼까 하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셔서는 “또 게임이니? 언제까지 게임만 할꺼야! 이게 다 중독이야 중독!!”이라고 혼을 내시고는 거실로 나가셨다. 저러지 않으셔도 어차피 셧다운제 때문에 자정이 되면 게임 못 하는데...

자정이 넘어 컴퓨터를 끄고 물이나 마시고 잘 생각으로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누나와 어머니가 티비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아까 집에 왔을 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으니 두 시간 넘게 보고 있는 거 같다. 아까 엄마의 잔소리에 기분이 상했던 터라 “엄마는 드라마 중독이야!” 라고 한 마디 하려고 하다가 그만뒀다. 예전에 이렇게 한 마디 했다가 “얘가 게임을 하더니 애가 이상해졌어!”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으니, 이런 말은 해봐야 내 손해다.

‘나도 옆에 앉아서 같이 볼까?’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졸리기도 하고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키 크려면 하루 7시간 이상은 자야 한다던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된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 청소년들의 하루 일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사실을 재구성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이라면 본문의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이런 한국 청소년들의 일과를 TV 프로그램에 소개하고 이에 대한 사실여부에 대한 논의를 펼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 청소년들의 일과는 쉴 틈없이 구성되어 있다. 청소년들에게 쉴 시간을 줘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이 나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 이러한 지적이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현실을 타파할만한 개선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교육 열풍에 휩쓸려 더욱 각박해진 것이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러한 이들에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공염불에 그칠 뿐 구체화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여가에 대한 각종 규제만이 늘어났을 뿐이다.

“애들이 놀 시간이 어디있어. 애들은 공부나 하면 돼”라는 이야기로 청소년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않고, 어른들의 입장을 이들에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행동은 학교폭력이라는 작금의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남 탓을 하는 것이 아닌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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