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게임규제 모습, 가요, 만화 규제와 너무나 닮았다

1975년. 한국 대중가요계는 '가요정화운동'이라는 폭풍에 직면한 바 있다. '가요정화운동'은 1975년에 건전한 가요를 국민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의도로 시행된 정책이다. 의도는 훌륭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 정책은 지금와서는 과거에 정부가 시행했던 정책 중 가장 우스꽝스러운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건전한 가요를 보급한다는 미명하에 너무나 억지스러운 기준을 가요에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라며 금지됐으며, '불 꺼진 창'은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갔는 데 창 옆에 그림자가 있으니 불륜이라는 이유로, '한잔의 추억'은 가사에 포함된 '마시자'라는 내용이 폭음을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또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아침이슬'은 붉게 타오른다는 내용이 북한체제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딱지를 뒤집어 쓰기도 했다.

한때 저질문화의 대명사로 꼽히던 만화시장도 비슷한 고통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정부 측에서는 5월이면 만화책을 쌓아놓고 불로 태우는 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아동도서정화계획'을 통해 만화방에 대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당시 문화공보부 산하의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창설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제정한 법을 통해 만화를 규제했다. 만화책의 재질과 판형, 편수와 심지어는 몇 페이지로 구성되야 하는지까지 말이다. 때문에 당시의 만화책은 4X6배판의 갱지로, 편수는 상, 중, 하의 3권에 각권마다 130쪽 이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만화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극에 달한 것은 1972년부터다. 1972년에 초등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기자,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만화를 지목했다. 그리고 만화계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69명의 만화가가 고발조치 됐으며, 20개가 넘는 만화출판사의 등록이 취소됐다. 만화방에서는 2만 권의 만화가 압수됐으며, 70여 명의 만화방 주인이 즉심에 회부됐다.

80년대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이어졌다. 자의적인 심의 기준에 따라 분류된 '불량만화'를 출판한 이들 14명이 구속되고, 수십명의 만화가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이러한 규제의 결과 대중들에게는 만화의 통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인식은 19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1997년에는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미성년자 보호법에 의거해 고발되기도 했다.

이런 규제의 결과, 한국의 만화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와서야 웹툰으로 인해 만화 시장의 숨통이 조금 트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에 만화를 포함시키지는 않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기나긴 규제로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만화시장 자체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만화를 즐기고 있다. 다만 그 자리에 한국 만화가 없을 뿐이다. 웹툰이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출판만화 시장에서 한국 만화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기나긴 규제로 인해 한국만화가 차지할 수 있었던 자리를 외산 만화가 차지해버린 셈이다.

셧다운제를 위시해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또 다른 규제법안은 이러한 가요, 만화규제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아니. 닮았다기 보다는 거의 판박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원인을 문화 콘텐츠 탓으로 여기는 것이나, 한 번 문제라 낙인 찍은 콘텐츠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기 보다는 그를 완전히 억제하는 움직임 등이 그렇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따라 붙어도 이를 묵살하는 것은 기본이고 말이다.

게임이 한류 콘텐츠 중 외화벌이를 가장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를 규제하는 이들은 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여론과는 무관하게, 업계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는 뚝심 아닌 뚝심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번에 발의된 2종의 게임규제안의 내용을 접한 한 네티즌은 이러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몇년 후에 이러한 다큐멘터리를 볼 지도 모르겠다. "긴급분석 - 한국 게임산업은 왜 망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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