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딴지곰 겜덕연구소] 게임 역사상 최악의 사건?! 콘솔계의 지각변동 '아타리쇼크'
(해당 기사는 지난 2021년 1월 13일 네이버 포스트 게임동아 꿀딴지곰 겜덕연구소를 통해서 먼저 소개된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꿀딴지곰 겜덕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기자입니다. 이번에도 지식인에서 고전게임 전문 답변가로 활동하고 계신 꿀딴지곰님을 모셨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게임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아타리 쇼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업계 최악의 사건, 아타리쇼크]
조기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은 전세계 콘솔 게임 역사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던, 아타리쇼크에 대한 얘기로 꾸며보려 합니다. 게임 좀 안다는 분들이라면 웬만하면 안다고 할만큼 화제를 모았던 사건이자 현재까지도 수많은 콘솔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 아니겠습니까.
너무 유명해서 다루는 게 맞나.. 싶은 사건이기도 하거든요.
꿀딴지곰 : 언젠가 한 번은 다뤄야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조기자님이야 아주 잘 아시겠지만, 아타리쇼크를 어렴풋이 알지만 자세히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거든요. 그리고 만약 아타리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한 번은 게임업계가 겪을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질좋은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이머들과 이를 관리해야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에겐 뼈저린 교훈이 되었던 사건이기도 하고요.
조기자 :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이 아타리쇼크를 떠올리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최근에 북미 지역에 발표된 '퐁' 때문입니다.
아타리에서 북미 지역에 내놓은 '퐁' 게임기인데요, 탁상 위에 올려서 플레이하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이 퐁 게임기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다가.. 아타리에 대해 떠올린 김에 이렇게 포스팅 주제로도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꿀딴지곰 : 오.. 이 퐁이라면 저희같은 레트로 게이머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인 게임기가 될 것 같은데요? 전 이런 게임기가 나왔는지도 몰랐습니다.
조기자 : 네. 사실 퐁이라는 게 게임 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게임기 중 하나죠. 예전에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플레이엑스포' 게임쇼에서 아주 큰 업소용 퐁을 즐긴 적이 있었는데요, 그것의 작은 디지털 버전이 새로 나왔더군요.
꿀딴지곰 : 그리고 저희 연배의 게이머들은 이런 '퐁' 게임기를 어렸을때 직접 즐겼어서 추억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탁상용 퐁 게임기가 출시된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한국 정식 출시는 되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군요.. (애초에 수요가 너무 한정적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본론 : 아타리쇼크에 대해 살펴보자!]
꿀딴지곰 :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4년 4월, 미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발굴이 진행됐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주도한 발굴 작업이었는데요, 이 작업은 소식을 듣고 온 수많은 관중들과 함께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뉴멕시코의 한 황량한 광야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유적도, 역사적인 전투도 없던 곳이었지만 발굴단의 장비가 계속 땅을 파내려 가자 시멘트 덩어리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광경을 지켜본 관중들은 마치 역사 속 유물을 발굴해 낸 듯이 환호했습니다.
시멘트 밑에 있던 것은 다름아닌, 바로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게임팩이었죠. 게이머들에게는 '도시전설' 정도로만 취급되던 '아타리쇼크' 시절 벌어진 'ET' 게임팩 매장설(設)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꿀딴지곰 : 수십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하나의 산업이 송두리째 없어지며,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되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몇 번이나 진행되어 왔습니다. 흔히 경제 위기라고 말하는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인데요, 이런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과열된 투자와 잘못된 경제 시스템으로 벌어진 일이 대다수 인 것이 사실이죠.
게임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1983년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위기' 이른바 '아타리쇼크'로 불리는 사건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타리쇼크'는 당시 '39억 달러'에 이르던 미국 콘솔 시장의 규모를 불과 2년 만에 '1억 달러'로 추락시킨 것을 비롯해 수 많은 기업들이 '줄도산'을 면치 못하는 등 게임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시절로 꼽히는 사건이거든요.
수천 개의 게임팩을 땅에 묻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최악의 시절로 기억되는 '아타리쇼크'. 그렇다면 이 게임산업의 대공황은 과연 어떻게 미국 콘솔시장을 휩쓸게 되었을까요.
꿀딴지곰 : 1980년대 북미 게임시장은 특히, 콘솔 기기 시장은 그야말로 황금기라고 불릴만큼 역대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소니의 PS,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닌텐도의 스위치 등 통용되는 콘솔기기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지만, 당시 북미 게임시장은 '게임을 고르는 것 보다 게임기를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수 많은 기기들이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꿀딴지곰 : '아타리 2600, '아타리 5200', '벨리 아스트로케이드', '콜레코비전', '콜레코제미니'(아타리 2600의 호환 게임기), '아르카디아 2001', '페어차일드 채널F' 등 각 회사별로 10여 종이 넘는 콘솔기기들이 거실을 차지하려 격돌했고, 이 과정 속에서 매출의 규모는 날로 커져 게임은 영화산업에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죠.
꿀딴지곰 : 이런 춘추전국시대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회사가 바로 '아타리'였는데요, 미국 전역에 동전이 모자라게 만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퐁'을 개발한 전설적인 인물이자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는 놀런 부슈널(Nolan Bushnell)이 세운 회사였죠.
꿀딴지곰 : 이 게임사 '아타리'는 게임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개발자들을 통해 게임을 공급받고 자신들이 출시하는 지금의 서드파티 형식의 게임 판매 방식을 통해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게임을 프로그램에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시킨 인물이기도 한 놀런 부슈널은 새로운 사업분야인 콘솔 게임기 개발에 착수하게 되지만 이내 자금난에 허덕이고 마는데요,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선 놀런 부슈널 앞에 나타난 회사는 게임시장의 성장에 눈독을 들이던 영화사 '워너브라더스'였습니다.
꿀딴지곰 : 이 과정 속에서 놀런 부슈널은 워너브라더스로부터 약 2천 8백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투자 받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마침내 1977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탑재한 게임기 '아타리 2600'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이 2천 8백만 달러는 당시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 2~3편을 제작할 정도의 거대한 금액이었습니다. 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는 벤허의 제작비가 1천 5백만 달러라는 걸 생각해보면 장난이 아닌 수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죠.
이 아타리 2600은 날개돋친듯 팔려나가게 되어, 워너브라더스는 불과 2년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게 됩니다. 굉장한 충격이었죠. 게임의 파괴력을 알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이게 독으로 작용한 것일까요, 게임시장의 맛을 본 워너브라더스 경영진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자 더욱 더 게임 산업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꿀딴지곰 : 당시에 게임기는 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소프트 개발에 차질을 겪고 있던 놀런 부슈널에게 접근한 워너브라더스는 '아타리'의 완전 인수를 추진하여 결국 자신들의 자회사로 두게 되는데요,
197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부흥기와 함께 '아타리'는 매년 최고 매출을 경신해 나갔고, 한 때 워너브라더스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을 게임부문에서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매출은 곧 비극으로 바뀌고 마는데요, 워너브라더스의 경영진은 1980년대에 들어 게임사업의 수익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칭 '전문가'들을 경영진으로 투입시켰는데, 문제는 이 전문가들이 게임에 완전한 '문외한'이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꿀딴지곰 : 금융, 건설,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이 경영진들에게 게임은 그저 돈이나 버는 사업 중 하나에 불과했고, 자신들이 출시하는 게임에 대해 플레이는 커녕 어떤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게임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더욱이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자들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해 개발자들에게 복장 규정을 적용하고, 정시 출퇴근을 강요하는 등 일반 기업과 똑같은 회사원으로 취급했으며,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도록 하는 등 그야말로 푸대접을 일삼았습니다.
한마디로 게임 개발을 적당한 하급 노동자 정도로 치부해버린 것이죠. 크리에이터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꿀딴지곰 : 아니나 다를까, 급기야 많은 개발자들이 '아타리'의 정책에 반발하며 이탈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 중에는 창립자인 놀런 부슈널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사를 나온 이들은 직접 자신들의 회사를 창립하기에 이르러 1980년대 미국에는 신생 게임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설립된 회사 중 한 곳이 바로 엑티비전입니다.
경직된 회사 분위기, 핵심 인력의 이탈 등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아타리'는 점점 수준 낮은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는 게임사로 변질되기 시작하게 됩니다. 더욱이 '아타리 2600'의 성공을 지켜본 후발주자들이 잇따라 새로운 콘솔 게임기를 선보이며 거센 공세를 시작했으며, 우수한 게임 타이틀 역시 다른 콘솔기기에도 함께 보급되면서 '아타리'는 점차 매출 감소를 겪기에 이르죠.
이에 아타리의 새로운 경영진들은 새로운 전략을 세우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고 되도록 많은 게임을 아타리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종류를 늘리면 무조건 사람들이 사주고,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꿀딴지곰 : 하지만 유명 개발자도, 이를 검증할 만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게임들의 수준이 높을 리가 없었고 개발하기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게임은 그야말로 뻔한 게임들 투성이였습니다.
게임이라는 산업의 이해 없이 단순히 수치와 자본의 논리로만 수익을 얻으려 했던 경영진들의 어처구니 없는 기획이었는데, 여러 매체에서 다룬 '역대급' 최악의 게임들 대부분이 바로 이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설상가상 콘솔 게임이 돈이 된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분야의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게임부를 신설해 게임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콘솔 게임 개발사는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기기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XX건설, 스타벅X, 페리카X, KT&X 등의 회사들이 게임개발에 뛰어든 셈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아타리'에서부터 시작된 물량전은 다른 게임사들에게도 확대되어 일단 게임만 만들면 무조건 출시되기에 이르게 되고 이렇게 시장에 등장하는 게임의 질은 계속 하락하기만 했죠.
꿀딴지곰 :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다름아닌 게이머들이었습니다. 표지나 게임소개를 보고 만만치 않은 가격을 치르고 게임을 구매했건만, 다른 게임들과 비슷한 심지어 버그투성이인 게임을 접한 게이머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죠.
더욱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포르노 게임이 등장하는 등 도를 넘은 부도덕함에 질린 게이머들은 점차 게임사들을 불신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몇 번은 호구가 되어주었지만, 점차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죠.
꿀딴지곰 : 그러던 1982년,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의 'E.T'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이에 주목한 워너브라더스의 경영진은 황급히 천문학적 규모로 E.T의 판권을 사들인 후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 '아타리'의 이름을 단 게임을 출시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지시가 불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5주 앞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것이죠.
5주 만에 블록버스터 급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황당한 지시를 받은 '아타리'의 개발진은 최선을 다해 게임을 개발했지만, 날림으로 개발한 게임에 그래픽적 감수성이나 재미 요소가 녹아있을 리 없었고, 온갖 버그와 저질 콘텐츠로 가득한 '게임 E.T'는 곧 대규모 반품 사태를 불러오게 됩니다.
엄청나게 판매되었다가 미친듯이 욕을 먹고 다시 반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EFt-La3UUu0
꿀딴지곰 : 수요에 대한 분석 없이 영화의 명성을 빌어 성공을 확신하던 경영진의 오판 덕에 게임팩을 이미 수백 만장 이상 찍어낸 최악의 상황.
판매는 고사하고 대규모 반품 사태 덕에 악성 재고를 떠안게 된 아타리의 경영진은 이 수 십 만장의 '게임 E.T'를 뉴 멕시코에 있는 자신들 소유의 땅에 몰래 묻어버리기에 이르게 되죠.
더욱이 엄청난 손해를 겪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많은 저질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재고로 남은 게임들을 덤핑 할인하여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게임사들 모두 이 할인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꿀딴지곰 : 수익만 쫓는 게임사들, 게이머들의 실망만 안겨주는 무분별한 저질 게임의 난립, 그리고 전문성의 부족과 기업 윤리의 실종.
당시 북미의 콘솔 게임 시장은 온갖 문제로 가득차 곪을 대로 곪아 있었고 게이머들은 이들 게임을 완전히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량은 넘치는데 수요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게임사들은 연이어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매출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죠.
또한, 콘솔 게임의 붐이 일던 당시 참여한 여러 업종의 투자사들은 수익이 감소되는 것을 보자마자 자본을 황급히 회수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더 많은 게임사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며 '줄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게임업계의 대공황, '아타리쇼크'가 시작된 것입니다.
꿀딴지곰 : '아타리쇼크' 이후 39억 달러 수준까지 육박하던 시장이 불과 1억 달러로 추락할 만큼 미국의 콘솔 게임업계는 그야말로 '전멸'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폭풍에 살아남은 몇몇 게임사들이 있긴 했는데요, 애플2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게임을 출시하기에 이르렀으며 해외의 유명 게임들을 수입해 공급하는 퍼블리셔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사실상 콘솔 게임 개발사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내수 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관대함 그리고 막강한 구매력까지 북미의 게임시장은 해외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존재였으며, 북미 콘솔 개발사가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자 이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게 됩니다.
꿀딴지곰 : 이 무주공산(無主空山)에 가장 처음 발을 디딘 회사가 바로 패미컴(북미명 NES)를 앞세운 닌텐도였는데요, 닌텐도는 이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게임들을 선보이며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어 북미 시장에 진출한 세가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미국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석권하게 됩니다.
이런 닌텐도와 세가의 양강 구도는 2000년대 들어 마이크로소프트가 Xbox를 내놓기 전까지 이어졌으며, 85년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사실상 일본 게임사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닌자', '전국시대', '기모노' 등 일본 문화코드를 듬뿍 담은 게임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미국의 청소년 혹은 성인 게이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으니, 북미 콘솔 시장에서 벌어진 '아타리쇼크'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 게임사들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꿀딴지곰 : 이처럼 '아타리쇼크'는 전문성을 잃어버린 경영진의 그릇된 방향성, 저질 게임의 난립, 도덕적 해이, 윤리의식의 부족 그리고 수익만 쫓은 게발사들의 부도덕함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되며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게임업계에 크나큰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거기에 교훈을 얻은 콘솔 플랫폼 사업자들의 행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죠.
조기자 : 사실 아타리 쇼크와 다소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사건이 국내에서도 있긴 합니다. 국내에서도 경영진의 압박에 게임이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출시되었던 게임이 있잖습니까. 너무나 유명했던 사건 말이죠.
꿀딴지곰 : 흐... 설마.. 그 '마그나 카르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조기자 : 바로 아시는군요; 저는 아타리 쇼크나 마그나 카르타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매출이 급해서 게임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출시됐다는 점,
- 개발기간이 극히 모자랐다는 점
- 출시 후 시장을 초토화시켰다는 점,
- 이후 반면교사로 작용했다는 점 등입니다.
꿀딴지곰 : 네.. 맞습니다. 근근이 먹고 살던 국내 콘솔 게임업계, 정확히 패키지 게임업계는 마그나 카르타의 영향으로 초토화되고 말았죠.
'버그나 깔았다', '만들다 말았다' 등등 갖가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초도물량 8만 장을 예상한 대작 '마그나 카르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하긴 뭐 이정도 규모의 게임에 개발 기간 1년이라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는 것이었죠. 상장하면서 매출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지만, 본질은 역시나 게임 아니겠습니까. 상품을 망가뜨리면 결국 문제가 된다는, 큰 교훈을 남긴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꿀딴지곰 : 사실 전문가들이든 게이머분들이든, 요즘 이 '아타리쇼크'를 현재 국내 게임산업에 빗대어 우려를 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죠.
비슷한 온라인게임, 동일한 방식의 모바일게임 등에 실망감을 느낀 분들 중에 특히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도 경쟁이 치열할만큼 치열해졌고, 너무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게임들이 많은데다 저퀄리티 게임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때문에 이처럼 게임산업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며 게임업계 전체에 경종을 울린 '아타리쇼크'를 기억하여, 과거의 일들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 이런 참사가 게임산업에 발생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
조기자 : 휴.. 교수님. 좋은 말씀 이십니다. 국내 게임업계가 요즘 너무 확률형 아이템과 함께 해외 진출이 어려운, 갈라파고스 형태의 발전이 감지되고 있는데.. 절대 좋은 현상은 아니거든요. 이제부터라도 창의적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게임성을 가진 게임들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꿀딴지곰 : 재청입니다!!!
조기자 : 흐 그러면 오늘은 좀 짧은 감이 있지만 이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꿀딴지곰 : 네 조기자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조기자 : 네에 교수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뵙지요. 이렇게 이번 시간에는 '게임업계 최악의 사건 아타리쇼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는데요, 혹시나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조기자 (igelau@donga.com)나 어릴적 추억의 고전게임 이름이 궁금할때 꿀딴지곰 지식인 질문하기http://kin.naver.com/profile/valmoonk 로 문의주시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꿀딴지곰 소개 :
레트로 게임의 세계란 '알면 알수록 넓고 깊다'며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레트로 게임 전문가. 10년째 지식인에서 사람들의 잊어버린 게임에 대한 추억을 찾아주고 있는 전문 앤서러이자 굉장한 수준의 레트로 게임 헌터이기도 하다.
조기자 소개 :
먼산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나니 레트로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는 게임기자. MSX부터 시작해 과거 추억을 가진 게임물이라면 닥치는대로 분석하고 관심을 가지며, 레트로 게임의 저변 확대를 위해 레트로 장터나 네오팀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다양한 레트로 게임 개조를 취미삼아 진행중이며 버추어파이터 쪽에서는 igelau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