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물고 게임위 외면하는 메타버스 업계
차세대 산업으로 주목받는 메타버스가 여전히 나아길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중이다.
‘제페토’를 서비스 중인 네이버제트를 필두로 넷마블, 컴투스 등 다수의 회사들이 메타버스 산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메타버스 플랫폼 및 서비스 개발 지원 예산이 2022년 240억 원, 2023년 600억 원으로 늘어날 정도로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관련 법안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부처간 의견 충돌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가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키워야 하는 미래 산업이라는 점은 다들 동의하고 있지만, 메타버스 내 게임 서비스의 심의 문제, 메타버스 내 경제활동을 통한 수익의 현금화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메타버스 업체들이 서비스 내 게임 콘텐츠에 대한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은 게임산업진흥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증인으로 참석한 네이버제트 측은 “‘제페토 내 콘텐츠는 게임과 다르다. 향후 정부의 지침이 정해지면 충실히 따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넵튠 자회사인 컬러버스의 ‘퍼피레드’ 등 대부분의 메타버스 서비스가 미니 게임을 주력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지만, 게임 심의를 받지 않기 위해 ‘게임’이 아닌 ‘3D 소셜 네트워크’로 서비스 등록을 하고 있다.
정부 역시 문체부에서는 메타버스 내 게임도 무조건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기부와 정통부에서는 게임산업진흥법이 아니라 메타버스 특별법을 만들어서 관리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의견 통일을 못하고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 업계가 이를 악물고 게임위를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게임산업진흥법의 테두리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해 목표로 하는 궁극적인 메타버스 세계에 도달하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의한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사람, 사물이 상호작용하며, 경제, 사회,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를 말한다.
이를 게임 입장에서 해석하면, 기존 게임 서비스의 경우에는 개발사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고 소비만 하는 형태였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사업자가 만들어둔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이용자가 콘텐츠 소비도 하고, 생산도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인 ‘로블록스’의 경우에는 게임 이용자가 직접 미니 게임을 만들고, 다른 이용자들이 이를 즐길 수 있는 형태이며, 국내 대표적인 메타버스인 ‘제페토’ 역시 게임 내 아바타, 액세서리 등을 이용자가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게임산업진흥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될 때마다 소비 연령 등급을 확정하기 위해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는 개발사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존 게임 서비스와 달리 다수의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심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물론 이는 구글, 애플, 에픽게임즈 등처럼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실제로 ‘로블록스’의 경우에는 마켓에 게임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구글, 애플의 자체등급분류로 국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메타버스의 경우 이용자들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수익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내에서 게임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판매해서 수익을 올린 뒤 현금화를 하게 되면, 게임산업진흥법 제32조1항7조에 위배된다. 이 조항에는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 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등)을 환전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로블록스’ 해외 서비스에서는 이용자가 게임 콘텐츠를 판매해서 게임 화폐인 ‘로벅스’를 획득한 뒤 이를 현금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 서비스에서는 현금으로 ‘로벅스’를 충전하는 기능만 제공하고, 환전하는 기능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수익 활동을 배제되어 있으니 메타버스가 아니라 과거 유행했던 UCC(User Creative Contents) 서비스에 더 가깝다.
문제는 메타버스가 아닌 UCC는 지속적인 생산 유도가 어렵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가 계속 생산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난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지만, 이 것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없다면 금방 한계가 오게 된다. 과거 UCC의 열기가 빠르게 식은 것도 창작자들의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용자->수익을 올리기 위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양질의 콘텐츠에 반해 더 늘어나는 이용자”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메타버스 업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메타버스 업계가 게임산업진흥법 적용을 필사적으로 회피하려는 이유는 심의 문제도 있지만, 이 사행성 문제가 서비스 존폐까지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엄격한 규제가 개인창작자의 창작의지를 저해시킬 가능성도 높다.
메타버스가 게임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니, 게임물과 게임물이 아닌 것으로 분리해서 법안을 적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실제로 문체부와 과기부가 메타버스와 게임물 간의 구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만든 합동 테스크포스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역시 메타버스 업계에서 바라는 방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많은 이용자들을 모으고 적극적인 소비 활동을 유도하려면 게임만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에서 주목받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로블록스’를 필두로,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 대부분 게임을 주력으로 내세운 서비스들이며,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제페토’ 역시 게임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추가하면서 빠르게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재 게임산업진흥법에서는 ‘게임물’을 “컴퓨터프로그램 등 정보처리 기술이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이에 부수하여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또는 그 영상물의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된 기기 및 장치”라고 정의하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여가를 즐기는 행위는 모두 게임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구분이 쉽지 않다.
이를 억지로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일반 커뮤니티 활동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사용되는 아바타의 의상, 악세서리 등을 판매해서 수익을 올린 뒤 이를 현금화하면, 이를 게임산업진흥법에 위배되는 환전행위로 봐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해질 수 밖에 없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문체부와 과기부가 메타버스와 게임물 간의 구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합동 테스크포스에서 2022년까지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어야 했으나, 아직까지도 뚜렷한 합의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서면서 메타 등 메타버스 관련 업체들의 실적이 대폭 하락하고 있어 메타버스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안개속에 머물러 있는 메타버스 정책이 어떤 식으로 결론나게 될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