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클래식 JRPG의 낭만을 현대 기술로. 스타오션 세컨드 스토리R
요즘 과거 인기 있었던 RPG에 최신 기술을 더한 리메이크 작을 자주 선보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는 스퀘어에닉스가 또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인지도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스타오션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스타오션 세컨드 스토리R이다.
스타오션 시리즈는 그 당시 흔치 않았던 SF 배경의 게임으로, 우주 비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한 시대의 지구인이, 갑자기 낯선 미개 행성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다룬 시리즈다. 혼돈 그 자체였던 4편과 5편, 최근에 발매돼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쓴 6편까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요즘 게이머들은 잘 모르는 게임이 되어 버렸지만, PS2로 발매됐던 3편까지는 속도감 있는 전투 시스템을 앞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스타오션 세컨드 스토리는 1편의 주인공이었던 로닉스 J. 케니의 아들 클로드 C. 케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았던 게임이다. 스타워즈와 더불어 SF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트렉처럼 여기서도 낯선 문명에 최대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기본 원칙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소지하고 있는 미래 무기만 안쓸 뿐이지,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개입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투박한 PS1 시절의 그래픽을 지금 다시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는 일이고, 이것을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처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스퀘어에닉스가 선택한 방법은 요즘 많은 재미를 보고 있는 2D 도트 캐릭터와 3D 배경을 결합한 HD-2D 기법이다. 잘 못 만들면 상당히 어색해볼 수도 있는 조합이지만, 이미 옥토패스 트래블러 등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스퀘어에닉스이기 때문인지, 스타오션 세컨드 스토리R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는 월드맵, 각 지역의 중심이 되는 거대한 성 등 배경들은 수준 높은 3D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캐릭터들은 PS1 시절의 감성을 그대로 담은 도트로 등장하며, 대화 장면에서는 수준 높은 캐릭터 일러스트가 같이 등장하기 때문에, 눈도 편하고, 추억도 같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PS5 버전은 큰 TV에서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도트가 매우 크게 보이긴 한다. 클로드의 갈색 점퍼가 살색으로 보여서, 바지 위에 검은 팬티를 입고, 상체는 벗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화면이 작은 스위치 버전은 좀 더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일 것 같다.
게임 플레이는 예전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원작을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추억이 느껴질테고,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약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게임들은 게임만 플레이해도 자연스럽게 게임의 모든 정보가 습득되도록 탄탄한 튜토리얼 시스템이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지만, 이 게임은 파고들 요소가 많아야 돈이 아깝지 않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었던 시절에 등장했던 게임답게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공격버튼만 눌려줘도 적들이 살살 녹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법 개념의 문장술,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IC(아이템 크리에이션), 머시너리(기계공학) 등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며, 캐릭터 성장도 전투를 하면 쌓이는 스킬 포인트와 배틀 포인트를 여러 항목에 직접 투자해서 올려야 한다.
레벨이 어느 정도 높아지더라도, 어이없게 뒤를 잡힌 상태에서 상태 이상이 걸려 한방에 전멸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순간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전투를 넘기다가, 갑자기 등장한 적이 말도 안되는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것을 넘기면 다시 순조롭게 전투가 진행되는 등 롤러코스터 같은 난이도 변화가 정신을 못차리게 만든다.
즉,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적을 가지고 놀 수 있지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왜 죽는지도 모르고 계속 죽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개발자가 숨겨놓은 요소를 찾아내서 더 쉽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낭만이었던 시절의 게임답게, 게임 초반에 거의 마지막까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를 획득하는 요소도 있고, 어떤 동료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다른 동료를 영입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엔딩 이후에도 숨겨진 던전 등 추가 플레이 요소들이 가득하고,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다른 진엔딩도 등장하기 때문에, 무조건 공략집을 봐야만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경험했는가에 따라 게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여러 번 즐길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고 볼 수 있고, 요즘 게이머들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한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전투 자체는 최근 게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단순히 공격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AI로 움직이는 동료들의 상태도 살펴야 하며, 급할 때는 수시로 턴을 멈추고 조작 캐릭터를 동료로 변경해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전투 중 맞지 않으면 전투 보너스 게이지가 쌓이지만, 회피 타이밍을 놓치면 전투 보너스 게이지가 초기화되는 요소도 있다. 계속 내리막길만 걷고 있는 이 시리즈가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전투 시스템의 매력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정체불명의 기계에 손을 덴 주인공 클로드가 알 수 없는 행성에 떨어진 뒤 여주인공 레나를 만나게 되고, 그 행성에 갑자기 나타나게 된 괴물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모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형적인 캐릭터에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가 이어지기 때문에,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부담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후반부 스토리 전개가 다소 급하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데, 각종 서브 퀘스트와 도서관이 있는 서적 등 배경을 설명해주는 모든 요소들을 다 확인해야 스토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이 시리즈는 단 한번도 스토리로 높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여담이지만, 지난해 발매된 스타오션6를 플레이해본다면, 스타오션6가 전성기 때의 모습과 가까워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과거의 팬들을 노리고 만든 게임인 만큼,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그동안 실망스러웠던 기억을 잊고, 예전 전성기를 다시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게임이다. 과거 JRPG의 추억이 없는 이들이라면 한없이 불친절한 시스템 때문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지만, 지금 아저씨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추억의 게임이 어떤 스타일이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일본어를 모르니 남들이 설명해준 글을 보면서 O 버튼만 연타하면서 플레이했던 아저씨들과 달리 한글 자막을 보면서 편안하게 스토리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 공략 사이트 참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