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이버 딸 육아 중입니다”, 프메풍 육성 시뮬레이션 ‘화산의 딸’
지난 12일, 스토브 인디에 ‘화산의 딸(Volcano Princess)’이 공식 한국어 지원 버전으로 출시됐다. ‘화산의 딸’은 중국 인디게임사 ‘양단런 공작실’이 개발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이용자는 은퇴한 기사의 시점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전체적인 시스템은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동일 장르의 게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만하다. ‘일정’을 통해 딸의 스케줄을 관리한 뒤, 일이 끝났을 때 상승하는 능력치에 따라 딸의 미래가 결정되는 식이다.
다만 ‘화산의 딸’은 여기에 방대한 양의 이벤트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 이용자가 딸에게 ‘어떤’ 아빠로 보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 등으로 차별성을 뒀다.
게임 내에서 ‘일정’으로 하루(인 게임 시간상 일주일)를 끝내기 전까진 ‘야생마 호수’, ‘중앙광장’, ‘망각의 숲’ 등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특색 있는 공략 캐릭터들과의 대화나 데이트 같은 콘텐츠도 여기서 같이 진행된다.
게임 내 엔딩은 성장한 능력치에 따른 ‘직업 엔딩’과 누구와 결혼했는지를 보는 ‘감정 엔딩’ 2가지가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딸을 이어주기 위해선 열심히 말을 걸어야 한다. 참고로, 호감도가 높기만 하면 딸과 여성 캐릭터가 결혼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혼이 가능한 공략 캐릭터는 총 16명으로, 호감도가 올라갈 때마다 한 번씩, 최대 3번 호감도 이벤트를 발생시킨다. 단순 계산으로도 48번의 굵직한 캐릭터 이벤트를 만나볼 수 있는데, 결혼 엔딩이 없는 일반적인 NPC도 종종 일상 이벤트를 제공해 끊임없이 누군가와 교류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딸이 특정 행위를 할 때마다 근처에 있는 공략 캐릭터들이 코멘트를 하나씩 남겨준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딸이 호숫가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있으면, 근처에 있는 캐릭터가 “그림을 잘 그린다”, “다음에는 나를 모델로 삼아줘”와 같은 말을 한마디씩 던진다. 긴 스크립트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교류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줘 게임에 몰입하게 됐다.
또, 공략 캐릭터에만 집중해 이용자를 소홀히 하지 않고, 딸과 이용자의 대화 시스템을 따로 마련해 둔 것도 심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이용자는 하루에 한 번 ‘속마음 대화’를 통해 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나, 최근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 가끔 부인에 대한 대화도 나온다. 딸의 성격이나 가치관 및 세부 설정, 이용자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라, 게임의 섬세함을 느끼기 좋았다.
이 ‘속마음 대화’를 통해서는 딸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평가’도 올라가게 되는데, ‘친구 같은 아빠’, ‘든든한 아빠’ 등 콘셉트를 잡아 플레이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지만, 엔딩에서 딸에게 플레이어는 어떤 아빠였는지, 되고자 했던 아빠상과 어울리게 살았는지 평가해 준다.
일러스트 퀄리티도 상당한 편이다 보니, 일각에서는 “딸의 직업은 모르겠고, 일단 스크립트나 모으고 다녀야 할 것 같다”며, 캐릭터 이벤트 수집과 대화 위주로 플레이를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그렇다고 딸의 교육을 완전히 방치하면서 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공략 캐릭터의 이벤트 발생 조건이 특정 능력치가 일정 등급 이상이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게임 내 축제인 ‘화산제’ 등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내기도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딸의 최종 엔딩(직업)의 등급도 낮게 나온다.
‘일정’에 교육을 넣을수록 딸의 능력치가 쑥쑥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열심히 교육을 받으면 해당 분야의 선생님의 호감도가 오르는 것도 보이니 교육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선생님과의 호감도가 높으면 종종 장학금을 받기도 해, 후반으로 갈수록 능력치 성장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자유시간도 필요 없으니 교육 시간만 2배로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나쁜 아빠의 마음가짐도 슬그머니 올라왔다.
이렇게 많은 콘텐츠와 이벤트, 스크립트가 존재하다 보니 게임의 플레이타임도 어마무시하다. 스크립트를 읽으면서 게임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1회차에 6~10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플레이 타임이 나온다. 필자는 스크립트를 빨리 읽는 편에다, 후반에는 특정 조건만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플레이했음에도 7시간이나 걸렸다.
스토리 상, 엔딩 수집을 자극하는 시스템 상 다회차가 필수로 요구되는 것과 다름없는데,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용자와 게임의 시스템을 하나하나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용자와의 호불호는 상당히 갈리지 않을까 싶다.
물론 게임 내 ‘계승’ 시스템으로 업적 달성 시 얻을 수 있는 재화를 통해 기본 능력치나 캐릭터 호감도를 올리고 시작하는 게 가능하지만, 재화를 넉넉하게 주는 편은 아니라 초반에는 크게 유의미한 차이를 느끼긴 힘들 것 같다는 감상이다.
요약하자면 ‘화산의 딸’은 ‘육성’의 재미와 캐릭터들과 교류하는 ‘공략’의 재미, 이용자도 함께하는 ‘교류’의 재미를 모두 간직한 게임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이용자라면 충분히 기대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한 회차의 플레이 타임이 길기 때문에, 호흡이 긴 게임을 어려워하는 이용자는 한 번 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