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김무광 개발자와 가람과 바람팀을 추억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1세대 개발자라고 할 수 있는 뉴타입랜드 김무광 대표님이 지난 2월 18일에 파주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전에 게임 개발을 그만두고, 레이싱 시뮬레이터 장비 전문 제작 회사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이제 씰 온라인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씰 IP를 탄생시킨 가람과 바람팀이라면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국산 PC패키지 게임의 대명사라고 하면 보통 창세기전 시리즈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김무광 개발자님이 이끌던 가람과 바람팀이 만든 ‘레이디안’, ‘씰’, ‘나르실리온’ 3부작은 팬들 사이에서 숨겨진 명작으로 꼽히는 게임입니다.
특히 씰은 당시 당시 국산 패키지 게임 개발사들을 힘들게 했던 와레즈 사이트에 큰 피해를 봤지만, 팬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씰 온라인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르실리온은 탄탄한 메인 스토리와 함께 다양한 서브 퀘스트로 호평을 받으면서,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게임 공략을 진행하면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서브 퀘스트를 찾아 헤매느라 엄청나게 고생한 기억이 있네요.
게임동아 나르실리온 공략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9680522&memberNo=11878375&navigationType=push
나우누리 게임 제작 동호회에서 출발한 가람과 바람팀은 1998년에 밉스 소프트웨어에서 출시한 8용신전설 개발에 참여하면서 공식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무광 개발자님의 인터뷰에 따르면 8용신전설을 제작하기 위해서 당시 군복무 중이던 박성우 만화가님을 면회가서 판권을 따왔다고 하네요. 당시 생각만큼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박성우 만화가님이 일러스트는 물론 감수까지 깊게 관여했기 때문에, 원작에서 보지 못한 완결 시나리오까지 반영된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8용신전설 출시 이후 밉스 소프트웨어와의 불화로 갈라서게 된 가람과 바람팀은 당시 유통사였던 카마디지털엔터테인먼트로 합류하게 되고, 그곳에서 3부작의 시작이 된 레이디안을 개발하게 됩니다.
1999년에 발매된 레이디안은 당시 주류였던 턴제 전투가 아니라 실시간 액션 RPG 장르이고, 멀티 엔딩까지 넣은 다소 실험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가람과 바람팀이 인지도가 없던 시절에 출시된 게임이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나가는 비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이후 개발되는 씰, 그리고 나르실리온으로 이어지는 세계관의 첫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엘런은 나르실리온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레이나와 엘의 딸이기 때문에, 첫 작품이지만 시간 흐름으로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레이디안을 개발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가람과 바람팀은 2000년에 전설의 게임 씰을 출시하게 됩니다. 독특한 색감으로 호평받았던 레이디안의 그래픽을 더욱 발전시켰고, 파이널판타지의 ATB(액티브 타임 배틀) 턴제 전투를 발전시킨 속도감 있는 턴제 전투, 다양한 서브 퀘스트 등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시나리오를 쓴 분도 이제는 유명 SF 소설가가 되신 김보영 작가님입니다.
다만, 출시 시기가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산 패키지 게임을 대표하던 인기 게임이었던 창세기전3와 손노리의 대작 게임으로 주목받던 악튜러스가 발매된 시기였다보니, 인지도 부족으로 완전히 묻힌 것이죠. 뒤늦게 입소문을 타긴 했지만, 아쉽게도 당시 PC 패키지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와레즈에서 인기 게임이 됐습니다. 정품 구입을 원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지만, 유통사였던 카마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적은 물량만 유통했기 때문에, 구입하고 싶어도 구입할 수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카마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에서 가람과 바람팀의 동의 없이 잡지 번들로 제공하면서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게임이 됐습니다. 당시 이 문제로 가람과 바람팀은 카마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서 그리곤 엔터테인먼트로 가게 됩니다.
그리곤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롭게 둥지를 튼 가람과 바람팀은 2002년에 3부작의 마지막이자 정점을 찍은 명작 ‘나르실리온’을 발매하게 됩니다. 보통 게임이 발매되면 회사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는데, 이 게임은 가람과 바람 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씰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그만큼 가람과 바람팀의 명성이 오른 것이죠.
이전 두 작품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나르실리온은 가람과 바람팀의 명성에 걸맞는 게임성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내 패키지 게임의 황혼기를 빛낸 게임이 됐습니다. 당시 한국 시장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스타크래프트의 58주 판매 1위를 깬 주인공이 나르실리온입니다.
RPG 장르에 흔치 않았던 4인 파티 형태의 실시간 액션을 구현하고, 씰 시나리오에서 실력을 보였던 김보영 작가가 쓴 완성도 높은 메인 스토리, 조건을 만족시켜야 볼 수 있었던 수 많은 서브 퀘스트 등 많은 부분에서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르실리온 역시 가람과 바람 팀이 만족할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2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3부작 중 많이 팔린 게임이 되긴 했지만, 씰 경험으로 많은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와레즈의 희생양이 된 것이죠. 그리고 씰 때의 경험 때문에 절대 번들 유통은 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으나,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쥬얼 시디를 발매하고 팬들에게 사과한 아픈 기억을 남겼습니다.
가람과 바람팀은 ‘나르실리온’ 이후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문제의 게임 ‘천랑열전’을 개발하게 됩니다.
씰과 나르실리온으로 실력을 증명한 가람과 바람팀이 8용신전설로 인연을 맺은 박성우 만화가의 대표작인 천랑열전을 게임화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유통을 맡았던 엠드림도 한정판 수준의 패키지 구성으로 흥행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다만, 그동안 만들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에, 3D 카툰 렌더링 등 새로운 도전과 촉박했던 개발 기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정식 출시된 게임이 버그로 진행이 안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후 패치가 나오기는 했지만, 버그를 넘어 게임 모든 부분에서 문제를 노출하면서 소프트맥스와 ‘마그나 카르타’ 일명 ‘버그나 깔았다’와 함께 ‘버그열전’이라고 불리면서 국산 패키지 게임의 종말을 가져온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요즘이야 문제가 발생하면 출시를 연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유통사의 권한이 강했기 때문에 출시 시기를 늦추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천랑열전의 실패 이후 가람과 바람팀은 당시 게임 시장을 강타한 온라인 시대에 맞춰서 씰 온라인을 개발하게 됩니다. 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SD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MMORPG로 만들어진 씰 온라인은 천랑열전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카툰렌더링을 발전시킨 그래픽과 아기자기한 캐릭터, 개그 요소들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그리곤 엔터테인먼트는 겜블던, 칸헬 등을 개발하고 상장까지 추진했으나, 우회상장 실패로 인한 자금 부족으로 2009년에 폐업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그리곤 엔터테인먼트를 먹여 살리던 씰 온라인은 2007년에 당시 퍼블리셔였던 써니YNK(현 플레이위드)로 인수돼 현재까지 간판 게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 씰 온라인 정도면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정작 이 게임을 개발한 가람과 바람 팀은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개발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씰 온라인 출시 이후 단돈 10만원의 인센티브만 지급하는 등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이탈한 것이죠.
국산 패키지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가람과 바람팀은 이후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김무광 개발자님은 조이온에서 거상2 개발 총괄을 하다가, 베타 테스트 이후 개발 중단이 발표되면서, 레이싱 장비 전문 회사 알크래프트에 합류하고, 이후 독립해서 뉴타입랜드로 레이싱 장비 시장을 개척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오랜 기간 고생만 하시다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돌아가셨지만,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김무광 개발자님과 가람과 바람팀을 기억하는 이들이 한명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