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心 담아 만드니 다르네! 전문가가 되살린 고전 IP
올해 초 오랜만에 돌아온 ‘페르시아의 왕자 잃어버린 왕관’이 호평받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페르시아의 왕자’ 신작이 예고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작 ‘로그:페르시아의 왕자’의 개발을 맡은 곳은 IP홀더인 유비소프트가 아니라, 데드셀로 유명한 이블 엠파이어다. 오는 5월 15일 스팀 얼리액세스 출시를 앞둔 이 게임은 기존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의 특징인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벽을 이용한 플랫포머 액션 등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요즘 유비소프트 신작들이 대부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게임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해당 IP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 개발사의 손을 통해 부활한 고전 IP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디아블로2’ 팬이 설립해서 만든 ‘패스오브엑자일’이 블리자드에서 만든 ‘디아블로’ 신작보다 더 ‘디아블로2’ 느낌이 더 잘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해당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 개발사가 팬心을 담아 개발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GOTY(올해의 게임) 시상식을 모조리 휩쓴 ‘발더스게이트3’다. ‘발더스게이트3’는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게임 어워드',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GJA), '더 게임 어워드'(TGA), '다이스 어워드'(D.I.C.E),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 등 이른바 5대 시상식에서 모두 '최고의 게임'(Game of The Year / GOTY)을 수상한 최초의 게임으로 등극했다.
D&D(던전앤드래곤) 게임의 전설로 불렸던 ‘발더스게이트’ 시리즈가 23년만에 부활한 것이니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 ‘발더스게이트’의 명성뿐만 아니라, 개발을 맡은 라리안스튜디오의 능력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많다.
라리안소프트는 이전에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 등을 통해, 클래식 턴제 RPG의 매력을 극대화한 결과물을 선보여 호평받은 이 장르의 최고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이전에는 킥스타터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회사였지만, 얼리액세스로 선보인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에서 클래식 RPG 장르 팬들의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으면서 최고의 클래식RPG 전문 개발사로 거듭났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은 나온지 오래된 게임이지만, ‘발더스게이트3’를 재미있게 플레이해봤다면 꼭 해봐야 할 게임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감나빗’이라는 유행어로 잘 알려진 XCOM 시리즈도 ‘발더스게이트3’ 만큼이나 대표적인 사례다.
1994년에 발매된 원작은 워낙 오래된 게임이기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외계인이 나온 전략 시뮬레이션의 모법답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이다.
원래 시리즈는 슈팅 게임으로 장르 변신을 꾀하다가 폭망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이후 IP를 인수한 2K에서 문명으로 유명한 전략 시뮬레이션 전문 개발사 파이락시스에게 개발을 맡기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개발을 맡은 파이락시스의 리드 디자이너 제이크 솔로몬이 엑스컴 시리즈의 광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2K가 되살린 XCOM 시리즈는 1편의 성공에 힘입어 엑스컴2, 그리고 외전인 키메라 스쿼드까지 나오면서 2K의 대표적인 흥행작으로 자리잡았으며, 제이크 솔로몬 등 주요 개발진의 파이락시스 퇴사로 인해 XCOM3가 불발될 확률이 높아지면서 팬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이외에 XCOM 정식 IP는 아니지만, 러시아 ALTAR GAMES에서 만든 UFO 시리즈와 골드호크 인터랙티브의 제노너츠 시리즈도 고전 XCOM 팬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홈월드3’ 역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THQ가 망한 이후 전략 시뮬레이션과 상관없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IP 판권을 구입하면서 이대로 시리즈가 없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당시 1편과 2편 개발에 참여했던 댄 아이리쉬 등 주요 개발진이 설립한 블랙버드 인터랙티브와 계약을 체결하고 시리즈 부활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재 RTS 장르가 전체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나, 신비로운 우주를 배경으로 X축, Y축, Z축까지 신경써야 하는 입체적인 함대 전투를 구현한 게임은 홈월드가 유일하며, 외주 개발이지만, 사실상 최고 전문가들에게 개발을 맡긴 상황이 됐기 때문에, 시리즈가 완벽히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라리안스튜디오가 IP홀더인 해즈브로의 지나친 간섭에 지쳐서 다시는 ‘발더스게이트’ 시리즈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해당 IP 권한을 가지지 못한 전문 개발사와의 협업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불안한 동거일 수 밖에 없다.
IP 권한을 가진 퍼블리셔가 직접 팬심을 담아 신작을 만드는 것이 가장 최고이긴 하지만, 해당 게임을 직접 만든 전문가들이 모두 떠난 집단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IP홀더들이 적당히 양보하면서 해당 IP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전문 개발사와 협업하는 모습이 계속 유지되는 것을 기대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