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과는 못하는 게임? 수학 로그라이크 ‘슈퍼 알지브롤’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살아가는데 지장 없다!’라는 인생관으로 수학과 담을 쌓은 지 몇십 년이 흘렸다. 실제로 실생활에서는 깊은 수학적 고찰을 하지 않아도 풀리는 일이 많았고, 큰 문제없는 삶이 이어졌다. 두 자릿수 사칙연산이 순간 헷갈리기 전까진 말이다.
수학과의 교류가 너무 없었던 탓인지, 최근 들어 암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3초면 답이 나오던 것이 6초는 계산해야 했고, 숫자가 커지면 버벅거리다 그냥 계산기를 켰다. 한창 공부를 할 때는 숫자 대여섯 개를 한 번에 암산할 수 있었는데, 통탄할 일이다.
이에 반성하는 의미로 오랜만에 수학 문제를 좀 풀어 보기로 결심했다. 너무 재미없으면 힘드니, ‘게임’을 섞어서 말이다.
그렇게 플레이하게 된 것이 펑크케이크 딜리셔스가 개발한 수학 로그라이크 ‘슈퍼 알지브롤(Super Algebrawl)’이다. ‘수학’이란 수식어를 붙인 만큼, 모든 전투가 ‘수학 문제 풀이’로 진행된다.
‘슈퍼 알지브롤’에서는 적과 아군 구분 없이 모든 유닛이 고유의 숫자를 가지고 있다. 이 숫자는 ‘공격력’이자 ‘생명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우리의 목표는 ‘왕’ 유닛이 대미지를 입지 않도록 지키면서 모든 적의 숫자를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 유닛에게 적 유닛을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리면, 적의 숫자(생명력)가 내 유닛의 수만큼 차감된다. 대미지를 입혀 자신의 숫자가 0이 된 유닛은 그대로 사망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갈 때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만약 내 유닛의 숫자(대미지)가 적의 숫자(생명력)보다 크면, 내 유닛은 즉시 타락해 적의 유닛으로 변해버린다. 예를 들어, 내 ‘숫자 15’ 유닛이 ‘숫자 5’ 적을 공격한다면, 내 편이었던 유닛이 즉시 ‘숫자 10’ 적으로 돌변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적의 숫자를 딱 ‘0’이 되도록 공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돕는 것이 게임의 핵심인 ‘스펠’이다. ‘스펠’은 ‘더하기’, ‘곱하기’, ‘제곱’, ‘나누기’와 같은 기호부터 ‘특정 적 35 대미지’, ‘모든 적에게 5 대미지’, ‘내 유닛 복제’ 등 여러 종류의 효과를 지닌 주문서다.
이용자는 ‘스펠’을 통해 내 유닛의 숫자를 더하고, 복제하고, 곱해서 큰 수의 적을 처리할 수 있고, 직접적인 주문서 대미지는 ‘타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적들을 한 번에 소멸시키는 것도 된다.
유닛의 고유 ‘특성’도 게임의 재미와 난도를 한층 올려준다. ‘슈퍼 알지브롤’은 보상 스테이지에 도달하면 새로운 ‘유닛’ 혹은 ‘스펠’ 중 하나 골라서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특성’이 없는 기본 유닛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다람쥐’나 ‘토끼’ 같은 특별한 특성을 가진 유닛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람쥐’의 경우 사망할 시 랜덤한 ‘스펠’을 하나 제공하고, ‘토끼’의 경우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응용해서 ‘다람쥐’를 적에게 먼저 보내 ‘스펠’을 얻어낸 뒤, ‘토끼’를 큰 수로 만들어 복제하는 등 전략적인 전투도 할 수 있다. 두 유닛 외에도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다양한 능력을 가진 유닛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만큼 게임도 어려워진다...)
게임의 난도는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쉬운 편은 아니다. 첫 지역은 중학생 기준으로도 쉽게 클리어할 수 있겠지만, 첫 지역을 클리어하면 해금되는 ‘늪지대’, ‘바다’ 등의 지역은 새로운 기믹이 가진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심도 깊은 창의성과 전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몬스터는 늪지대의 ‘슬라임’으로, 해당 몬스터는 한 번에 죽이지 않으면 끝없이 ‘분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24 슬라임을 12 유닛으로 공격하면 12 슬라임이 2개 생겨나고, 해당 슬라임을 7로 공격하면 다시 5 슬라임 2개가 생겨나는 방식이다.
이렇다 보니 슬라임을 한 번에 잡거나, 분열한 슬라임까지 고려해 계산식을 짜야하고, 슬라임과 더불어 ‘처음으로 공격받은 수를 그대로 자신의 숫자로 편입시키는’ 밀웜까지 동시에 등장하면 참 골치 아프다.
이뿐만이랴, ‘바다’ 지역에서는 자신보다 큰 수의 공격을 받지 않는 ‘유령’, 적 유닛이 죽을 때마다 생명력을 5 회복하는 ‘해골 전사’ 등의 적들도 등장해 만만하게 봤다가 그대로 수학 지옥에 빠지곤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후반부에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푼 적도 있었다. ‘게임이 아니라 공부하는 거예요!’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요약하자면, ‘슈퍼 알지브롤’은 수학 문제와 게임의 장점만 절묘하게 섞은 작품이다. 난도가 좀 있지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쾌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일반적인 수학 계산식에는 없는 ‘스펠’, ‘유닛 특성’ 등을 통해 ‘슈퍼 알지브롤은 엄연한 게임이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겨주기 때문이다.
화학 원소 기호는 못 외어도 수백 개가 넘는 포켓몬들의 이름은 모두 외울 수 있는 것처럼, 수학 문제는 못 풀어도(풀기 싫어도) 게임인 ‘슈퍼 알지브롤’은 플레이하게 되는 중독적인 매력.
아직 한글화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숫자 위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 플레이에 지장은 없으니, 수학과 친해지고 싶은 이용자라면 한 번쯤 플레이해 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