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전 격투 게임에 미래는 있는가

지난 2022년 6월 28일에 야심 차게 PC와 콘솔 게임으로 출시됐던 대전 격투 게임 '던전앤파이터 듀얼'은 안타깝게도 채 3년이 안되어 운영이 멈춘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던전앤파이터 듀얼
던전앤파이터 듀얼

원작 '던전앤파이터'의 IP(지식 재산)를 활용하여 만든 이 게임은 원작의 팬덤과 '길티기어'를 제작한 아크시스템웍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서비스 초반의 반짝 반응을 끝으로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2XKO
2XKO

라이엇 게임즈에서 발표한 격투 게임 2XKO(투엑스케이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 10월 16일에 '프로젝트 L'이란 이름의 격투 게임으로 발표됐던 이 게임은 지난 2026년 1월 20일에 정식 출시되었으나, 수익성 및 이용자 수 부족으로 2026년 12월을 끝으로 신규 콘텐츠의 '적극적인 개발'을 종료한다는 공지가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덤을 가진 IP의 격투 게임들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격투 게임계에 이어진 충격은 컸다.

여전히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길티기어' 등의 대전 격투 게임들이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기대를 모았던 신규 IP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대전 격투 게임' 장르 개발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론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높은 진입 장벽과 자신이 오롯이 평가받는 장르의 특성

대전 격투 게임은 자타가 인정하는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다. 전체 게임 장르를 통틀어 비교해 봐도,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 중 하나라고 단언할만하다.

복잡한 커맨드 입력은 기본이고, 남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높은 심리전을 요한다. 각 캐릭터 별 기술을 파악해서 대처법을 알아야 하고, 내 캐릭터가 가진 공격 기술의 특징을 익혀서 상대방의 체력을 매 기회마다 최대로 깎아내야 한다.

트레이닝 모드에서 충분히 연습을 거쳐야 하는 대전 격투 게임. 사진은 '스트리트 파이터 6 드라이브 러시'
트레이닝 모드에서 충분히 연습을 거쳐야 하는 대전 격투 게임. 사진은 '스트리트 파이터 6 드라이브 러시'

이렇게 각 기술 별 콤보를 익혀 최대 대미지를 주고 또 각종 거리 조절을 완숙하게 익혀야 겨우 초보 티를 벗을 수 있다. 그러려면 무작정 대전만 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연습 모드에서 꾸준히 수련을 거쳐서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빠르면 3개월, 늦으면 1년도 넘게 걸린다.

그 3개월에서 1년은 소위 '고인물' 들에게 두들겨 맞는 시간이다. 그 고통을 악으로 깡으로 버틴 후 어느 정도 '중수' 위치에 올라가면, 겨우 심리전을 겨루는 단계로 넘어간다. 그때부터도 괴롭다. 한 판 한 판 버거운 고수들만 남기 때문이다. 그들과 겨루면서 단련의 시간을 거쳐 최고수로 거듭나는 그 과정은 흡사 무협지에 나오는 일대기를 축소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아키라는 이긴 후 '10년은 이르다' 라고 말한다. 이용자들에게 하는 말과 같다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아키라는 이긴 후 '10년은 이르다' 라고 말한다. 이용자들에게 하는 말과 같다

게다가 최근의 대전 격투 게임들은 대부분 시리즈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부터 이어져온 DNA가 녹아 있다. 각 기술마다 오랫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쳤기에 초보 이용자가 이전 시리즈부터 주욱 해온 사람들을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무림으로 따지면 각 세가들이 비전을 미리 배우고 익힌 상태인데, 거기에 대항하려면 맨땅에 헤딩하듯 노오오오력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은 말 그대로 장벽에 가깝다. 역경을 딛고 한 명 한 명 이겨나가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 달성감을 얻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장르 특성상 남 탓으로 핑계를 돌리기도 어렵다. 오롯이 자신이 약해서 진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용자들이 많은 지금, 대전 격투 게임은 태생부터 흥행을 이어나가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의 또 다른 한계, 개발이 어렵다

앞서 '던전앤파이터 듀얼'과 '2XKO'의 사례를 보면, 격투 게임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초대형 IP를 썼는데도 거꾸러진 모습을 보면 자명하다. 만약 두 IP로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들었다면 훨씬 인기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시중에 존재하는 웬만한 장르의 게임들은 다 성공 공식이 있는 경우가 많다. MMORPG(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들은 그 나름대로의 육성 공식과 클래스별 기술, 서버 등 이미 수많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콘셉트만 바꿔도 중간은 넘는다.

시뮬레이션 게임들도, 비주얼 노벨 게임들도, 메트로배니아 액션 게임들도 '정해진 기본'을 갖추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던전앤파이터 듀얼의 한 장면
던전앤파이터 듀얼의 한 장면

하지만 대전 격투 게임은 그렇지 않다. 두 캐릭터가 서로 마주 선 다음에 어떤 공방을 하게 되는지가 핵심인데, 기존의 격투 게임들과 차별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을 레퍼런스로 삼기가 어렵다.

겨우 독자적인 대전 콘셉트를 잡은 후에도 기술 하나하나 대충 만들 수 없다. 특정 기술이 너무 강하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고, 바로 이용자 이탈로 넘어간다. 또 전체 밸런스를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 별 상성까지도 맞춰야 한다. 혹여나 특정 캐릭터끼리 극상성이 발현될 경우 또 이용자 이탈이 시작된다.

너무 강해서 많은 지적을 받았던 세르게이 드라구노프
너무 강해서 많은 지적을 받았던 세르게이 드라구노프

겨우 밸런스를 맞춰서 출시했더라도 DLC로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것도 어렵다. 기존의 캐릭터들과의 승률과 상성을 따져야 하기에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하고, 업데이트 후 매번 심판대에 서듯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국내든 해외든 격투 게임 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쏟아부어 사람을 충원해도 '잘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큰 문제다.

또 대전 격투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기 주장도 세다. 이용자들끼리의 파벌도 심하고, 개발사에 요구하는 조건도 뚜렷하다. 이용자들도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로운 셈이다.

때문에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는 잘 팔리지도 않고 잘 만들기도 어려운 대전 격투 게임에 대해 '굳이 이 장르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e스포츠 활성화가 생존을 건 '마지막 희망'

한 때 대전 격투 게임은 오락실 문화를 이끄는 선두 주자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 조악한 적 인공지능만을 상대하던 사람들에게 사람끼리의 대전으로 창조적인 플레이가 나오는 대전 격투 게임은 꿈과 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상대방을 넘어선다는 우월감이 최고의 도파민이던 시절이었기에 전국 초등학교 중학교 앞 오락실은 대전 격투 게임을 즐기려는 이들로 넘쳐났다.

지난 에보재팬 2026 때의 모습
지난 에보재팬 2026 때의 모습

하지만 30~40년이 지난 지금, 오락실이 사라지고 난 현재 대전 격투 게임 이용자들은 신입들의 투입이 원천 차단됐다. 최근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들의 평균 나이는 41세, 글로벌 대전 격투 게임 대회 '에보'에서도 30대 초반 선수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시간은 대전 격투 게임의 편이 아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한 박사가 "직업의 멸종이지."라고 말한 것처럼, '장르의 멸종'을 겪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신 격투 게임들의 분위기도 썩 좋지 않다. '철권' 시리즈로 유명한 반다이남코는 파격적인 그래픽과 대규모 온라인 비주얼 로비 등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캐릭터 밸런스 조절 등의 실패로 현재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사우디 중동 자금의 수혈을 받은 SNK도 신작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2027년에 세가에서도 '버추어 파이터'를 기존의 인기 시리즈 'OO와 같이'의 액션 및 스토리 시스템을 추가하여 내놓는다고 했으나 이 역시 기대감이 높지 않다. 현재는 '스트리트 파이터 6'에만 긍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맞을때 큰 불쾌감은 없으면서도 극한의 상쾌감을 추가한 스트리트 파이터 6
맞을때 큰 불쾌감은 없으면서도 극한의 상쾌감을 추가한 스트리트 파이터 6

그러면 대전 격투 게임은 정말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일만 남은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끼리 의견이 나뉜다. 일부 전문가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지만, 몇몇 조사 결과나 전문가들은 e스포츠 활성화 등을 통해 장르가 연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고 있다.

마켓리포트월드에서는 지난 2026년 9월 1일에 대전 격투 게임이 높은 학습 곡선으로 캐주얼 게이머의 45%가 게임을 30일 이내에 포기한다는 결과 조사를 내놨다. 반면에 크로스 플랫폼 게임 생태계 확장과 함께 e스포츠 분야로 효과적으로 접근한다면 긍정적이라는 결과도 함께 내놨다.

특히 롤백 넷코드 등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과 매년 1,500개 이상의 글로벌 토너먼트가 진행 중이라는 부분에 긍정적인 분석을 더했다. 연간 1억 5천만 시간 이상의 e스포츠 시청 시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창출을 모색하면 개발사 입장에서도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의미다.

스트리트 파이터 5 국가대표 선수들. 좌측부터 연제길 선수, 김관우 선수, 강성훈 감독
스트리트 파이터 5 국가대표 선수들. 좌측부터 연제길 선수, 김관우 선수, 강성훈 감독

최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대전 격투 게임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장르적 특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장원 동명대 게임학과 교수는 "대전 격투 게임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건 맞다. 다만 '보는 즐거움' 쪽으로는 매우 직관적이어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라며 "SNK나 반다이남코 등 주요 격투 게임 개발사가 전 세계 e스포츠 대회 상금을 올리고 독려하는 것도 대전 격투 게임의 마지막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또 "e스포츠를 즐기는 팬들도 중장년층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격투 게임 개발사들이 진입 장벽을 낮추고 e스포츠를 보다 체계적으로 활성화한다면 '장르의 멸종'을 상당 부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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