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시뮬레이션의 새로운 이름
3D 대항해시대라고?!
국내 유통사가 이 게임의 홍보 차원에서 사용한 이 문구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항해시대'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16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3D 시뮬레이
거상이 되어볼까나??
본 게임의 무역 시스템을 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현실적으로 짜여져 있는 덕에 대충 했다간 적자 면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 게임을 시작하면서 거상이 되어보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느 정도 고생할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만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무역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무역 시스템과 본 게임의 무역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품의
가격뿐 아니라 물품의 재고까지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따른다는 것과 무역을 하는 사람이 플레이어 외에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 정도인데 거상이
되기 위해선 먼저 이 차이점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차이가 본 게임의 무역 시스템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선 기본적으로 무역을 할 시 돈만 있다면 물품은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었고, ( 시리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 플레이어 외에는 물품의 가격에 영향을 주는 무역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고 팔고 할 두 개의 항구만 잘
잡아주면 쉽게 흑자를 볼 수 있었다. 이른 바 황금 루트도 꽤나 많이 존재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본 게임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항구에
재고가 없다면 물품을 살 수가 없다. 예를 들어 A라는 항구에서 고기를 하루에 5개씩 생산해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20일이 지난 후 A
항구에는 고기 100개가 재고로써 쌓여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게 핵심이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와는 달리 본 게임에선 이렇게 항구에
쌓여있는 재고량만큼만 물품을 구입할 수가 있다. 물품의 수량까지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였다. 근데 이게 뭐가
문제냐고?? 여기에 앞서 말한 '다른 무역자'란 존재를 끼워넣어 보면 알 수 있다. 어디 한 번 가정을 해볼까?? 고기를 사기 위해 A
항구에 왔는데 벌써 다른 무역자가 고기를 싹쓸이해 가 버린 후라면? 또 고기를 사긴 했는데, 막상 고기를 비싸게 팔 수 있는 B 항구에
와보니 이미 다른 무역자가 와서 고기를 왕창 팔고 간 뒤라 적자를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B 항구에 고기 재고가 쌓여있는 상태라면? 당연히
이런 건 플레이어가 컴퓨터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이
본 게임에선 아주 빈번하게 벌어진다. 근데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어려움을 잘 해결했다 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A 항구에서 고기 100개를 성공적으로 구입했더라도, B 항구에 누구보다도 먼저 도착했더라도 B 항구에 고기 100개를 죄다 팔았다간 오히려
적자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B 항구에 고기를 1개씩 팔 때마다 B 항구에는 고기 재고가 1개씩 쌓이게 되는 셈이고, 고기
재고가 쌓일 때마다 항구의 고기 매입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계속해서 떨어지게 된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정도다. 각 항구에 고기를 분산 판매하는 것이 첫 번째, 흑자를 볼 수 있는 양만큼만 고기를 사고 나머지는 B
항구에 판매 시 이익을 볼 수 있는 다른 물품들로 채우는 것이 두 번째, 직접 고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 세 번째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선단의 규모도 커질테고, 선단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한번에 거래할 수 있는 물품의 양도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역을
통해 흑자를 보려면 이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는 없지만 사실 세 가지 방법 모두 딱 보기에도 귀찮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게임 내에 구현되어 있는 자동 무역(거래) 시스템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귀찮을 일이 없다. 어떤 항구를 오가며, 어떤 물품을
거래할 것인지를 세세하게 잘 지정만 해준다면 플레이어가 손대지 않아도 지들끼리 알아서 자동으로 물품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본 게임의 정말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이고 자세한 이 무역 시스템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허나 본 게임도 역시나 현실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복잡함이란 문제점을 떠안고 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지면 안되서 모두 적질 못했지만 사실 게임 내에서 무역을 할
때 따져봐야 할 건 위에 적은 것보다 훨씬 많다. 각 항구의 일일 물품 소비량, 물품 구입과 판매에 따른 항구와 플레이어간의 관계 변화 등
적자면 한도 끝도 없다. 직접 물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도 말이 쉽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직접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물품 생산
시설뿐 아니라 일꾼들이 거주할 거주지까지도 건설해줘야만 하고, 물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도 제때제때 계속 공급해줘야만 한다. 이 때,
원자재를 너무 비싼 값에 들여왔다간 물품 생산 단가가 높아져 거래시 적자를 보게 되기 때문에 물품 생산 시설을 건설할 땐 주위에 원자재를
싸게 살 수 있는 항구가 있는지, 또 생산한 물품을 비싸게 내다 팔 수 있는 항구가 근처에 있는지까지도 모두 감안해야만 한다. 자동
무역(거래) 시스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항구에서, 어떤 물품을, 얼마의 가격에, 얼마나 구입해서, 어떤 항구에, 얼마의 가격에,
얼마나 판매할 것인지를 전부 다 정해줘야만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 일이 더 귀찮게 느껴질 정도다. 너무나도 잘 만들어져
있는 무역 시스템인 만큼 이런 복잡함을 가지고 문제삼고 싶진 않다. 하지만 게임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머리에 쥐가 나는 게이머라면 본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이 현실적인 무역 시스템이 본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재미이기 때문이다.
어디다 팔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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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신경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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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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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적도 괜찮지~
위에서 말한 현실적인 무역 시스템이 본 게임의 백미이긴 하지만, 해전 시스템도 만만찮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으니 거상이 내키지 않는다면
해적을 꿈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본 게임에서 해전을 벌일 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공격 방식은 백병전과 함포전 두 가지 정도인데,
백병전은 말 그대로 적 배에 승선해서 선원의 머리수로 승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본 게임의 해전 시스템도 무역
시스템 못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한 이유는 함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용 가능한 포탄의 종류를 적함의 돛을 찢어 이동속도를 떨어뜨리는
체인 포탄, 적함의 선원들만을 살상하는 산탄 포탄, 적함 자체에 데미지를 주는 거대 포탄 이렇게 3가지 종류로 나뉘어 놓은 덕에 플레이어가
이 포탄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전술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적함의 선원수가 플레이어 함선의 선원수보다 많다면
당연히 적함은 백병전으로 승부를 보려 할 것이다. 이럴 때 플레이어가 어떤 포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달려드는 적함을
피해가면서 체인 포탄을 사용해 적함을 고립시킨 후, 여유롭게 거대포탄을 쏴 적함을 날려 버리는 방법도 있고, 그냥 백병전으로 붙어준 후,
다른 함선으로 하여금 산탄 포탄을 적함에 쏘게 해 이중으로 적함의 선원수를 살상하는 방법도 있다. 고작 포탄의 종류만 나눠놨을 뿐인데도 이런
식으로 활용하기에 따라 수많은 전술이 탄생한다. 거기다 해전 자체도 실시간으로 진행되다보니 박진감도 넘친다. 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해적이 되기로 했다면 부자가 될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정말 쉴새 없이 해적질을 해대도 얼마 이익이 남질 않아 함대 유지비 뽑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나마 항구를 공격하면 한번에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지만,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아군의 피해도 커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상이 다시 함대를 재정비하는데 나가 버린다. 그러니 해적이 되기로 정했어도 웬만하면 무역과 해적질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함대가 멋지면 뭐하는가. 돈 없는 해적은 초라하기만 할 뿐이다. -_-;
박진감 넘치는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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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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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아지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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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험가는 될 수 없다..
안타깝게도 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상 아니면 해적, 이 두 가지 뿐이다. 거기에 모험가는 없다. 수수께끼를 풀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식의 모험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지역 자체가 카리브해로만 제한되어 있다보니 모험을 한다는
느낌도 별로 안 살고, 막상 보물을 찾아도 그 보물들의 가치가 영 신통치가 않다. 애써 찾았더니 고작 돈 몇 만원, 럼주 가득 얻을 뿐이라면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아쉬움이 남는 한글화
한글화가 이루어졌다는 건 분명 크나 큰 메리트지만 아쉽게도 그다지 완벽하진 않다. 문맥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꽤나 많고, 걔 중에는 게임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오역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게임 내에서 물품을 거래하는 곳도 시장(교역소라고 번역했어야 맞다), 항구 우물 주변에
있는 장터도 시장(여기가 진짜 시장이다)이라고 번역해 놓아서 처음에 시장으로 가라는데 대체 어느 시장을 말하는 건지 몰라 한참을 헤맸었다.
시뮬레이션은 RPG 못지 않게 번역량이 많은 장르 중 하나니까 이 정도가지고 크게 문제 삼고 싶진 않지만, 한글화를 하는 이유는 엄연히
누구나 쉽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게임 진행을 어렵게 하는 오역이 존재한다는 건 그런 한글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닐까. 부디 다음 번엔 좀 더 나은 한글화 수준을 보여줬음 한다.
괜찮은 게임
그래픽과 사운드 모두 나무랄 데 없고, 게임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다. 거기다 한글화까지 되어 있고 말이다. 하지만 본 게임은 전형적인
시뮬레이션 장르에 속한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처럼 시뮬레이션에 RPG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그런 게임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본
게임에 시뮬레이션 장르 이상의 무언가, 곧 멋진 스토리나 재미난 이벤트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이머는 플레이 불가다. 스토리도 별 거
없고, 이벤트도 몇몇개 빼고는 죄다 거기서 거기다. 또한 본 게임에서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와 같은 모험을 즐길 수 있을거라 기대하는
게이머 역시 플레이 불가다. 앞서 말했듯 본 게임에 모험이란 요소는 없다고 보는게 낫다. 본 게임을 말 그대로의 시뮬레이션 장르로써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게이머라면, 어느 정도의 복잡함은 오히려 재미로 받아들이는 게이머라면 당장 달려가서 본 게임 사들고 와라. 본 게임은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해 나온 게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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