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이고 싶었다...
뱀파이어가 주인공?
PC게임에서 뱀파이어는 롤플레잉 장르의 단골소재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뱀파이어는 막강한 체력과 방어력을 앞세워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는 역할이 대부분 이다. 하지만 이런 뱀파이어의 신세를 불쌍히(?) 여기었는지 이 게임에서 뱀파이어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연으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뱀파이어이며 뱀파이어라는 직책(?)에 걸맞게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기본 스토리
때는 12세기,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때, 용맹하고 독실한 신심이 넘치는 기사 크리스토프 로말드가 이 원정길에 참가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굳게 믿는 신의 이름으로 이교도들을 학살하는데, 그러면서 자신 안에서 피를 갈구하는 묘한 성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의 이교도들과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데, 운 좋게 한적한 수도원에서 상처도 치료하고 당시 유럽을 휩쓸던 페스트도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피를 갈구하는 성향이
뱀파이어들의 클랜 눈에 띄었고 크리스토프는 한 여자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려서 뱀파이어가 되고 뱀파이어들의 클랜원이 된다. 애초에 그가 자신의
신에 대해 가졌던 믿음이 이토록 미약했던가, 크리스토프는 자책하지만 이미 흡혈귀가 되어버린 자신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그러나 이제부터
크리스토프가 해야 할 일은 무고한 사람의 목을 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인간성의 구현을 위해서 다른 뱀파이어
클랜과의 전투를 치른다. 그리고, 그 기나긴 전투는 현재에까지 이른다. (상당히 상투적이며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지만 묘한 재미가 느껴지는
스토리다.)
진지함이 보이는 게임
이 게임에서 가장 주요한 모티브는 '비극의 영웅'이며 부차적으로 사랑, 배신, 탐욕, 정치에 관한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느꼈겠지만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 덕에 이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상당히 진지한 편이다. 그간 너무 가벼운 이야기와 상투적인 스토리에 지친
게이머들에게 이 게임은 또다른 활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 물론 어찌보면 이 게임의 스토리도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게임이야기는 아니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래픽과 사운드
결론적으로, 여타 게임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게임그래픽을 자랑한다. 때문에 높은 사양과 3D카드를 필요로 하고 풀 3D로 표현되는
그래픽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나 장면이 바뀔 때마다 펼쳐지는
중세풍의 배경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멀리 보이는 벽화도 훌륭하며 광원처리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또한
스테인글라스 바닥을 통해 캐릭터의 모습이 비춰지고 불빛에 따라 그림자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사운드 역시 음산한 배경음악과 실감 나는 사운드로 현실감 나는 게임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게임의 사운드 설정은 자신의 시스템에
따라 최적화할 수 있도록 선택사양이 다양하게 제공된다.
멀티플레이
뱀파이어도 물론 멀티플레이를 지원한다. 한가지 특이한점은, TRPG에서 흔히 '마스터'라고 하는 스토리텔러모드가 지원된다는 것인데, 이는
멀티게임을 즐기는 중간에 TRPG의 맛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스토리텔러로 지정된 사람은 전투의 방식이라든가, 플레이중인
캐릭터들에 대한 NPC의 반응 정도, 장소의 이동 등을 전부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스토리텔러 모드에서는 레벨 에디터를 써서
맵을 만들 수도 있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할 수도 있으며, '뱀파이어'의 싱글플레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시도는 최근에 나오는 게임치고는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멀티플레이도 지원한다.
액션성이 너무 떨어진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서 뱀파이어는 액션성이 약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빠르고 강력한 액션을 위주로 한 게임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게임의 액션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게 임은
분명 대단히 잘 만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신에서 보여지는 느려터진 액션이라든가 칼을 들어 적을 가격했을 때 타격이 되는 건지 아닌지
구분을 할 수 없는 애매한 칼질은 타 액션롤플레잉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마우스의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게임의 능숙한 운용을
위해 숙지해야 하는 버거운 네 명의 캐릭터가 지닌 복잡한 비술은 곧 높은 난이도로 이어져 게임의 꽤나 서정적인 스토리와 배경을 즐기기도 전에
지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끝으로
진지한 스토리와 화려한 그래픽, 거기에 적절한 사운드가 들어 있는 뱀파이어:가장무도회, 그렇지만 떨어지는 액션성으로 이 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허나 지금까지의 롤플레잉에 싫증이 난 게이머나 뭔가 진지한 플레이를 하고 싶은 게이머에게 이 게임은
후회없는 선택이 되어 줄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