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의 세계 그 자체

건전평범장미소년 multichan@hotmail.com

신세기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20세기에 출현하였고, 이제는 21세기란 개념도 익숙해 진 지금에 와서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란 이름은 모든 매체에 걸쳐 혁신과 새로움, 충격을 의미하는 고유 명사로 그 위치를 잃지 않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히 인기가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말 그대로 현대 문명의 '계시록'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충격적인 요소와 논의점들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전세계의 팬들은 그들 못지 않게 애정을 담은 제작진이 만들어낸 수많은 매체에서 또다른 에반게리온의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유독 에반게리온의 다양한 매력을 한껏 표현해줄 소프트가 나오지 못 한 채, 전투면 전투, 인간관계면 인간관계, 육성이면 육성, 한가지씩만을 강조한, 어찌 보면 맛보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양산되어 왔다. 그 결과 에바는 게임에서만큼은 재미가 없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이하 에바2)는 그동안 맛보기에만 만족해 왔던 유저들의 배고픔을 채워주겠다는 듯, 풍성한 재료와 독창적인 요리법을 무기로 다시 유저들 앞에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
에바2를 진행하다보면 같은 제작사인 알파시스템이 제작해서 플레이 스테이션1용으로 발매했던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와 유사한 진행방식임을 알 수 있다. 건퍼레이드 마치가 회화나 행동으로 전투가 변화하는 것처럼 에바2 역시 일상생활에서 회화나 행동 등을 통한 인간관계의 변화를 통해 전투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에바2에서 그것을 좌우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A.T이다. 이 게임에서 A.T는 그 사람의 기분으로 정의가 되고 있는데, 대화와 행동을 통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기분이 좋아지면 A.T가 상승하고, 반대로 기분이 나빠진다면 A.T는 하락한다. 이 변화한 A.T는 전투 파트에서 에바와의 싱크로율이 되어서 전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묘한 A.T가 게임 진행 중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EVANGELIONS인가?
이 게임의 제목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영어에 EVANGELIONS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2를 뒤집은 것이 S모양이니 비슷해 보여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S가 맞다. 이 게임은 일방적으로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에서 한가지 길만을 가도록 하는 게임이 아닌, 플레이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래서 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진행이 되므로, 원작인 애니나 일반적인 게임처럼 한가지 뿐인 결말이 아니라,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매번 다른 세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세계들은 에반게리온의 설정과 삐걱대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마치 평행 세계를 여행하는 조물주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제목에 복수형인 'S'가 붙어서 나왔다고 한다. 이 게임은 단지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게임이 아닌 에반게리온 시뮬레이터 그 자체이므로 저 제목은 멋지게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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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은 시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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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EVANGELIO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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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은 당신의 머릿속 - 안노AI
이 게임을 움직이는 가장 밑바탕에는 안노AI라는 것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에반게리온에 대한 안노 감독의 머릿 속의 모든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AI는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인과관계를 구성해서 자신도 모르는 언젠가 그것에 대한 결과가 이벤트 등에 반영되어 나타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AI는 각 캐릭터들의 행동과 반응에 대한 것까지 결정하고 있다. 어떤 NPC 캐릭터가 목이 마른 상태가 되면 알아서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스스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배가 고프면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성격에 대한 것조차 너무도 확실하게 나와서 덜렁이 누나부터 음침한 사령관까지 각 캐릭터의 특징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리얼한 가상현실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GTA시리즈와는 또 다른 가상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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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를 마시는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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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캐릭터의 A.T에 따라 여러 가지가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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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살아가고 왜 싸우니? - 일상 생활과 전투에 대해
이 게임에 있어서 일상 생활과 전투의 비중을 가르자면 7:3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상 생활이지만 이야기 해줄 건 딱 한마디 "마음대로 하세요"이다. 제 3 도쿄시를 구하기 위한 임무에 충실할 수도 있고,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등장하는 여자들을 찾아 다니며 호감을 살 수도 있다. 또, 이것도 저것도 귀찮다면 집에서 펭펭과 TV를 보면서 놀 수도 있는 것이다. 제약하는 것은 단지 몸의 생리현상과 캐릭터 별로 갈 수 없는 장소뿐이다. 이 게임을 좌우하는 것이 A.T와 인간관계다 보니 결국 게임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인간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저 제약 상태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회화부터 애정표현까지 쓸 수 있는 모든 표현을 해서 A.T를 올리고 인간관계를 좋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유도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적다. 어떤 선택에 대사가 여러 개가 할당되어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이 대사가 왜 여기서 나오지? 라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 부분이 있는데, 문제될 것은 없지만 매끄럽지 못해서 못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투는 직접전투와 간접전투 2가지로 갈라진다. 직접전투는 맵 상에서 실시간으로 이동하면서 전투를 하는 방식이다. 전력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목표지점에 가장 가까운 전원빌딩을 찾아서 플러그를 끼워줘야 하고 공격에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해서 무장빌딩과 UN군, 그리고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사도를 무찔러야 한다. 필드가 너무도 단순해서 저게 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대신 전투 장면은 타격감이 제대로 살아 있어, 마치 실황을 보는 듯하다. 간접전투는 맵 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사도와의 전투를 브리핑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한 가지 결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니고, 역시 A.T에 의해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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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기본은 사정거리에 넣고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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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상태. 이제는 아무도 못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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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있는 저 보고서들을 보고 누가 일할 마음이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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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식사를 한다. 맛은 어떨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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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대로 고르세요 - 각 모드의 간단한 소개
에바2에는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모드가 존재하고 있다. 모든 스토리를 진행해 나감에 따라 에반게리온 세계의 주요인물 모두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비슷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 - 스토리 관련 모드편-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강제적으로 '사도, 내습'편이 진행된다. 이 스토리는 신지가 제 3 도쿄시에 와서 에바를 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회화가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전투 모드의 필드에서 에바를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 뭘 알겠는가? 시키는대로 잡으려다 보면 운좋으면 그냥도 잡히고 보통은 맞다가 폭주해서 얼떨결에 잡고, 최악의 경우에는 폭주도 못하고 참으로 빨리도 Fly me to the moon의 멜로디에 맞춰 멍하니 스태프 롤을 보게 되는, 그런 상황이 현실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도, 내습편은 가장 일반적인 에반게리온의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하는(절대 '진행해가는'이 아니다.). 원작 팬을 위한 배려이자 튜토리얼, 그리고 가장 메인이 되는 스토리인 것이다.
'사도, 내습'편을 클리어 하면 그때부터 추가되는 모드들을 고를 수 있다. 한번에 다 나오는 것은 아니고 진행해 나가는 것에 따라 차차 추가되는 방식이다.
'아스카, 오다' 와 '레이, 마음의 저편에' 편은 사도, 내습의 아스카, 레이 버젼이다. 큰 차이는 없지만 캐릭터가 다르게 되어 관점 역시 묘하게 바뀌어 있다. '여자의 싸움'과 '인류보완계획'은 관리자의 입장으로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여자의 싸움'에서는 카츠라기 미사토가 되어서 말 안 듣는 14살짜리 꼬맹이들을 달래서 에바에 태우기도 하고, 그네들과 사도들이 부숴놓은 제 3 도쿄시를 수리하기 위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서류를 처리해야 하기도 한다. 이 스토리는 그나마 명령권을 손에 쥐고 있기라도 하지만, '인류보완계획' 편은 이카리 겐도 사령관이 되어서 꼬맹이들에 제 3 도쿄시의 미래를 맡기지만 사도와 싸운다는 핑계로 파괴해가는(이쯤 되면 누가 적인지도 모호해진다)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어야만 한다. 최후의 사자는 제3 도쿄시가 이미 파괴되었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데, 신지 스토리 중 가장 큰 비중의 두 화가 연속으로 펼쳐진다. '토우지, 다시'와 '엔젤 버스터'는 각각 앞의 3명에 비해 비중은 적지만, 역시 파일럿인 토우지와 카오루, 이들이 에바 파일럿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V.S 제레'편은 카지가 제레의 비밀을 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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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설득성공, 그는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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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도가 높다고 아무 때나 애정표현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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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넌 정체가 뭐냐 - 시바무라틱 밸런스-
열심히 게임을 해나가다 보면 모드 선택에 나오는 시바무라틱 밸런스. 이름부터가 뭔가 수상쩍다. 잘 알겠지만 저 제목은 이 게임의 프로듀서인 시바무라 유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사도, 내습과 똑같다. 그러나 난이도가 아주 높아졌다. 본 게임의 난이도도 만만치는 않지만 만족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 테니,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로 생각하자. 오죽하면 "시X무리다 밸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을까... 더 끔찍한 것은 원래 게임의 난이도를 이것에 맞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제 3 도쿄시에 사도와 네르프가 없었다면? - 어나더 월드-
원작파괴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이 어나더 월드라고 할 수 있다. 에반게리온의 세계의 절반, 아니 2/3를 이루는 사도와 네르프가 통째로 들어내지고 나머지만으로 진행되는 스토리이다. 물론 각자의 설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또 하나, 엔딩이 없다. 하고 싶을 때 까지 그냥 이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재미없다고? 인생 재미로만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끔은 조용히 흘러가는 인생도 즐겨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이 게임의 목적이다 - 보완되는 마음-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는 바로 보완되는 마음이다. 이것은 각 캐릭터 별로 한가지씩 존재하는데 진행방식은 동일하나 중간중간에 각 캐릭터들의 과거의 모습, 즉 왜 상처를 담고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모드이다. 그리고 지금의 생활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가 또한 직,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게임은 이 보완되는 마음 모드로 인해 완벽한 에반게리온 시뮬레이터로서의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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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프 내에 수박밭을 가꾸는 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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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못하게 되어 네르프에 취직한 아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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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펭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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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못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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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의 아쉬움
이 게임의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바로 무한에 가까운 스토리 진행에 비해 엔딩의 수가 적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엔딩의 수는 총8가지, 그중 4가지 엔딩이 발동을 위한 초기단계화면이 동일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렇다보니 체감 엔딩 수는 5~6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형식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엔딩이 적다는 것은 기껏 잘 만들은 음식에 마무리 양념을 하지 않고 내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파격적인 엔딩이 있기는 하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엔딩인데,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이는, 어찌보면 에바의 틀을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으나,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본 엔딩이 하나정도는 더 나와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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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허무한 자폭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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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언제나 Fly me to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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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을 느끼고 싶은 당신에게 권합니다.
이 게임을 처음 해보았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만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게임을 통해 생각으로 만이 아닌 화면을 통해 즐길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팬으로서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엔딩을 바로 볼 수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꾸준히 플레이 해가면서 그 감동을 오랫동안 지닐 수 있다면,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일개 게임이 아닌, 에반게리온의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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