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팬보이 간섭, 게임 개발사 전전긍긍

최근 '앨렌 웨이크'라는 Xbox360, PC용 어드벤처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합의하에 PC용 플랫폼 제작을 취소하는 일이 생겼다. 양사는 플랫폼의 수익성을 극대화 시키고 개발의 부담을 줄여 더 좋은 퀄리티로 게임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이 같은 선택을 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하루 만에 '앨렌 웨이크 PC용 패키지 출시 청원' 사이트가 생겨났고, 몇 일만에 1만3천여명이 흔히 말하는 '발끈'했다는 의견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이유와 PC용 출시 취소 철회 등을 요구했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동의를 구하고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이렇게 극단적인 팬보이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 및 커뮤니티 문화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그 동안 음지, 또는 작은 규모로 활동하던 마니아 게이머층이 전면적으로 나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고 개발사에게 직접 의사 전달하는 사례가 늘면서 팬보이들의 활동을 무시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쉽게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퍼블리셔와의 우호 관계부터, 개발적인 이슈, 그리고 이 극단적인 마니아층인 팬보이의 말만 듣고서 게임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러나 이 확실한 게이머 층을 버리고 게임을 출시하는 것도 개발사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 팬보이, 극단적인 마니아층의 또 다른 이름>

먼저 팬보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해외에서 팬보이라는 명칭은 어떤 게임이나 하드웨어에 맹목적인 찬사를 보내는 팬 층을 뜻할 때 사용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애플 제품에 목을 매는 사람이나 닌텐도 게임이라면 무조건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커뮤니티나 게임 관련 사이트, 그리고 해당 게임 공식 사이트에 극단적인 의견을 올려놓으며 자신들의 의견을 개발자가 듣길 바란다. 만약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과는 이유를 불문하고 치열한 논쟁을 펼치고, 개발사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거침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2009년 상반기 벨브社가 '레프트4데드2'를 출시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도 팬보이의 극성은 여전했다. 이들은 벨브社가 '레프트4데드'의 캠페인 추가 및 개선 약속을 어겼으며, 상술에 눈이 멀어 별로 차이점도 없는 게임을 신작으로 출시한다고 맹비난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게임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보이콧 사이트도 생겨났으며 참가자만 3만 명을 넘겼다.

인기 게임 '모던 워페어2'도 몸살을 앓긴 마찬가지였다. 멀티플레이 중 자벨린을 들고 자폭해 적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버그가 나왔을 때 '모던 워페어2' 개발사 e메일이 폭주해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유튜브부터 많은 사이트에 관련 글 및 영상이 올라와 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개발사는 후다닥 관련 버그를 사용한 계정들을 블록하고, 이틀 만에 버그를 수정했지만 팬보이들의 극성은 한동안 유지됐다.

최근 한글 자막판으로 출시된 '바이오 쇼크2'도 팬보이 극단적 사랑을 피할 수 없었다. 전작인 '바이오 쇼크'는 Xbox360 독점에서 멀티 플랫폼으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바이오 쇼크2'는 양기종 중 어떤 쪽이 더 좋다는 양극화된 논쟁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개발자 역시 이들에 대해 '터무니 없는 충성'이라고 평가하며 논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게시판은 시끄럽다.

< 팬보이,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는 버릴 수 없는 타겟?>

하지만 많은 개발사들은 팬보이들의 입지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리즈 게임일수록 그들의 구매력이 상당수 차지하고, 블로그나 커뮤니티 내에서 든든한 홍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PS3 독점 타이틀 '헤비레인 : 더 오리가미 킬러'는 출시 전부터 두터운 팬보이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어드벤처 게임으로 잘 알려진 퀀틱드림의 신작인 이 게임은 출시 전부터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글이 기재되면서 언론의 관심까지 샀다. 해외 및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이 게임을 극찬하는 팬보이들의 글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팬보이들의 성원은 스포츠 게임 시리즈 일수록 더욱 두텁다. '위닝 일레븐' 시리즈나 '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 'MLB 더 쇼' '피파' 등의 스포츠 게임들은 5~10년 넘게 형성된 팬보이층의 보호를 받고 있다. 행여나 이 게임들을 공격하는 글이나, 경쟁 게임들과 비교하는 글이 나오면 어김 없이 그들이 출현해서 한바탕 논쟁을 펼친다. 물론 이후 확실한 구매 고객으로써의 역할도 수행해 낸다.

비단 스포츠 게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란투리스모'나 '진삼국무쌍' '파이날 판타지' '스트리트 파이터' 등 많은 게임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팬보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를 이어오고 있다. 물론 이들이 성공하는 것이 꼭 팬보이층의 열성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팬보이층이 확실한 구매, 그리고 홍보 역할이 게임의 인기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 팬보이의 입맛 맞추면 게임의 다양성 잃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으로 인해 게임의 다양성이나 예술성을 헤친다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다. 자신들의 입맛에 게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기준에 위배되는 게임들을 보이콧 하는 사례들은 게임 시장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헤일로' 시리즈 게임이 대단하다고 해서 뒤에 나올 많은 FPS 게임들의 평가 기준이 '헤일로' 시리즈가 되면 안된다는 것. 팬보이들은 '헤일로' 시리즈가 대단한 게임이고, 이후에 나온 게임들을 평가할 때 '헤일로'보다 대단한지, 아니면 '헤일로'보다 별로인지를 평가하고 글을 남긴다. 이런 무의미한 평가 기준이 팬보이에 의해 형성되고, 개발자들은 판매를 위해 '헤일로' 시리즈를 기준으로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또한 극단적인 평가 때문에 수많은 명작들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게 될 것이다. PS3, Xbox360용 독점 게임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멀티플랫폼으로 나온 게임에 대해서도 헐뜯기는 이어진다. 이 같은 일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은 여러 플랫폼으로 나온 명작을 놓치게 되고, 별거 아닌 감정 싸움에 타 플랫폼을 싫어하게 돼 버린다. 이는 단순히 팬보이 층뿐만 아니라 관련 글을 접하는 일반 라이트 층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 지나친 관심보다는 출시를 위한 응원이 필요할 때>

물론 팬보이의 관심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팬보이층의 형성은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좋은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도 도가 지나치면 스토커가 되는 것처럼 팬보이의 사랑도 도가 지나치면 개발자들의 의욕을 꺾는 계기로 변해버린다. 타 플랫폼도 인정하고 경쟁 게임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성숙한 게이머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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