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게임계의 챔피언이 돌아왔다. 파이트 나이트 챔피언
Xbox360 초창기 게임 중 하나인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3는 출시와 함께 복싱 게임사에 한 획을 그으며, 게이머들이 반드시 즐겨봐야 할 필수 타이틀로 자리 잡았다. 실사를 보는 듯한 뛰어난 그래픽과 상체를 이용한 다양한 움직임, 게다가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실존 복서 라이선스까지.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3는 기존에 등장했던 복싱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복합적인 재미를 갖춘 게임이었다.
이후 출시된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4는 전작보다 더욱 세밀해진 그래픽, 더 풍부해진 라이선스를 갖추고 등장했다. 스웨이 시스템이 추가되고 스텝 시스템이 강화되서 '회피'라는 요소가 가미되면서 이전에 비해 더욱 스피디한 게임 운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4의 인기 요소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타격감이 가벼워졌다는 것과 경기 운영 외의 콘텐츠가 발전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표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4의 출시 이후, 약 2년의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파이트 나이트 시리즈가 최근 출시됐다. 시리즈 전통대로 넘버링을 이용해 '파이트 나이트 라운드 5'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파이트 나이트 챔피언'(이하 파나챔)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번 작품은 전작의 아쉬움을 모두 개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름 그대로 복싱 게임계의 챔피언이 될 기세로 말이다.
< 더욱 발전한 그래픽과 타격감>
파나 시리즈의 인기 요인을 꼽는다면 실제 선수를 방불케하는 뛰어난 그래픽을 빼 놓을 수 없다. 전작인 파나4 출시 당시, 마이크 타이슨이 '게임 속 선수들을 실제 선수로 착각할 정도였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파나 시리즈의 그래픽은 이미 정평이 난 상황이다.
파나4의 그래픽이 이미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일까? 얼핏 보면 파나챔의 그래픽은 파나4에 비해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선수 모델링이나 텍스쳐의 품질처럼 게임 그래픽을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요소들이 전작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얼핏 발전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풍경이나 선수를 묘사하는 능력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는 더욱 사실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는 과장된 모습으로 묘사되던 선수들의 부어오른 얼굴, 벌어진 상처와 같은 표현들은 이번 작품에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찢어진 상처 표현은 발군이다. 전작의 경우는 상처의 위치만 다를 뿐, 상처의 벌어진 정도가 대부분 비슷하게 표현됐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상처의 길이와 폭 등이 모두 다르게 묘사되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표현도 실제와 흡사한 모습으로 그려져 감탄을 자아낸다.
타격감 역시 강조됐다. 카운터 상황을 제외하고는 '솜방망이로 강하게 때리는 느낌이다'라는 평이 나왔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과장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타격감을 선사한다.특히 주먹이 명중했을 시에 보여지는 상대 선수의 다양한 리액션은 '주먹으로 상대를 친다'는 원초적인 쾌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 풀 스펙트럼 펀치 시스템으로 다양한 궤도의 펀치를 날려보자>
파나 시리즈는 이전부터 게임 패드의 우측 아날로그 스틱을 밀거나 돌려서 주먹을 내밀고 휘두르는 조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실제로 주먹을 내미는 듯한 느낌을 게이머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며, 원하는 콤비네이션을 정확히 사용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 역시 사실이다.
파나챔의 조작법은 파나 시리즈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훅이나 어퍼컷을 사용하기 위해서 우측 아날로그 스틱으로 원을 그리듯이 돌려야했던 이전과는 달리, 풀 스펙트럼 펀치 시스템이라는 이름 하에 한쪽 방향으로 아날로그 스틱을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조금 더 간단해진 입력 체계를 지원하고 있다.
풀 스펙트럼 펀치 시스템의 채택으로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즐기며 보다 다양한 컴비네이션을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됐다. 잽, 스트레이트, 왼손 바디 훅 연타 후에 위빙으로 적의 주먹을 피하고 카운터로 어퍼컷을 명중시키는 복잡한 움직임도 전작보다 더욱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주먹을 날리는 궤도도 보다 다양해져서, 이 조작법에 익숙해진다면 어깨 높이보다 낮은 궤도의 훅과 높은 궤도의 훅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이 선수의 자세에 의한 무게중심 이동에 따른 공격력의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한 차이는 상대를 K.O. 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 복싱 영화를 보는 느낌의 스토리 모드 채택>
플레이 그 자체가 아닌 게임 콘텐츠 측면에서 파나챔은 파나4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전작에 비해 다른 점이라면 선수를 육성하는 레거시 모드 말고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스토리에 따라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챔피언 모드가 추가된 정도이다.
하지만 챔피언 모드는 단 하나의 게임 모드가 게임의 전체적인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파나 시리즈의 고질적인 아쉬움으로 꼽히던 '스토리의 부재'를 한 번에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촉망 받던 아마추어 미들급 복서가 상대 프로모터의 계략에 휘말려 수감 생활을 하게 되고, 출소 이후에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려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파나챔의 스토리 라인은 꽤나 전형적인 편이긴 하지만, '내가 왜 챔피언에 올라야만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있다.
스토리 라인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의 음성도 성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게이머들이 이 작품에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한다. 안타깝게도 한글 자막은 커녕 영어 자막도 지원하지 않아서 영어에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라면 내용을 100%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게임의 분위기만 봐도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도록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 게임을 즐기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
또한 스토리 진행에 따라 반칙이 없는 경기를 하거나, 복부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트려야 하거나, 부러진 오른팔 대신 왼팔만을 사용해서 승리를 해야 하는 등 다양한 승리 조건을 부여해, 게이머가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상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연구해야 하는 반복 요소도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선수를 육성해 랭킹을 올리고 타이틀을 획득, 방어하는 파나 시리즈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레거시 모드는 이번 작품에서도 견고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온라인 대전 역시 기존보다 훨씬 쾌적해진 온라인 환경을 제공한다.
파나챔은 복싱이라는 종목 자체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게이머들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바로 해당 종목에 관심이 없으면, 그 종목을 다루고 있는 스포츠 게임에도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스포츠 게임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도 보이는 게임이다. 어찌보면 이 작품이 복싱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구현하고 있기에 생기는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두 주먹으로 상대와 맞붙어 타격전을 펼친 후에, 링 위에 두 발로 서 있는 사나이는 과연 게이머 자신일지 아니면 상대방일지. 파나챔을 통해 복싱의 원초적인 재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