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게임의 바람직한 예시. 데드먼드의 이상한 모험
시대를 막론하고 평화로운 세계와 이것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 그리고 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야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피아 구분이 뚜렷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가 쉽기 때문에 사랑 받기는 마찬가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쓰곤 한다. 예를 들어 게임이라던가.
이번에 소개할 '데드먼드의 이상한 모험'(이하 이상한 모험)이 바로 저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체이용가 게임이다. 왕자로서 평화로운 성에서 제왕 수업을 받던 주인공 에드먼드, 갑자기 몰려온 스켈레톤 군단에 의해 성이 정복당하고 스켈레톤의 수장 모그림에게 저주를 받아 몸이 스켈레톤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에드먼드 아니, 몸은 죽었으니까 데드먼드는 옆에서 조언해주는 건국왕 할아버지의 영혼과 함께 모그림으로부터 성을 되찾고 스켈레톤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뼈만 남을 기세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 이미 뼈밖에 없지만. 너무 익숙해 친숙하기까지 한 줄거리 속에서 게이머는 데드먼드와 일심동체가 되어 게임을 즐긴다. 동화책과 만화책을 섞은 듯한 스토리 진행 영상 덕분에 아동 게이머에겐 반가움을, 청소년 이상 게이머에겐 추억을 주는 느낌마저 든다.

이상한 모험의 가장 큰 특징은 PS3용 동작인식 컨트롤러 PlayStation Move(이하 무브)가 필수인 게임이란 점이다. 무브 모션 컨트롤러 하나 혹은 두 개를 사용한 게이머의 모습을 인식하여 게임의 주인공 데드먼드가 검, 활, 수리검 공격 및 정해진 특수 행동으로 따라한다. 전투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동이 자동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흡사 건슈팅과 비슷한 플레이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게임의 제작사는 무브 발매 당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발매한 무브용 게임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으로 유명한 '스포츠 챔피언'을 제작하여 놀라운 모션 인식 기술을 선보인 바. 이상한 모험 역시 무브의 모션 인식 성능을 훌륭하게 활용하여 수준 높은 모션 재현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등장한 무브 전용, 무브 지원 게임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모션 인식을 잘 한다고 반드시 재밌는 게임, 좋은 게임이란 법이 없단 사실을. 따라서 무브의 활용도만으로 게임을 평가해선 안 된다. 무브의 성능 활용은 어디까지나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전제조건일 뿐이다.

죽은 에드먼드가 산 게이머를 잡는다
무브의 성능 활용을 빼면 이상한 모험에서 기술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부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PS3 성능을 잘 활용했다고 말하기 힘든 그래픽, 듣기는 좋은데 머릿속에 남지 않는 사운드, 새로울 것 없는 게임 시스템 속에서 플레이마저 게이머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강한 임팩트가 부족하다. 그러나 따로 평가할 때 모자란 부분만 보이던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자면 들고 있는 무브 컨트롤러를 내려놓기가 아쉽다. 플레이 할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힘들어지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게이머와 데드먼드의 일체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상한 모험에서 데드먼드가 사용하는 무기는 근접용 검과 방패, 원거리용 화살, 위력이 약하지만 투척이 빠른 수리검 이렇게 세 가지(그밖에 무기를 강화하는 부적 능력과 게임 중반에 최대 세 개까지 소지 가능한 광역 무기 다이너마이트가 있긴 하다). 이 세 가지 공격을 실제 무기를 쓰는 몸짓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서 이상한 모험은 한 공격만 고집하지 않도록 게이머를 유도한다. 그래서 수시로 컨트롤러 사용법을 바꾸며 세 가지 공격을 상황에 맞춰 사용하다보니 게임 조작이 쉽게 질리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이 직접 적 해골을 검으로 때리고 화살로 맞추고 수리검으로 견제하는 조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여타 액션게임보다 몰입하기가 쉽다. 화끈한 액션 연출, 거창한 전개가 없어도 게임에 몰입할 수 있단 좋은 예. 모션 인식 컨트롤러의 장점을 잘 살린 결과다. 회복 아이템 사용 방법인 우유 마시기를 하다보면 이따금 진짜 우유가 생각나기도.

또 하나, 다양한 기믹 활용이 게임의 재미를 높였다. 공격 종류는 세 가지 밖에 없지만, 이 세 가지 공격의 다양한 활용법이 게임 안에서 등장하고 무브의 효과적인 활용으로 자잘한 장치들을 조작하다보니 몸으로 느끼는 액션 비중이 많다. 같은 행동을 여러 번 하더라도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션 종류가 적다고 느낄 틈이 없으며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 게이머는 이미 이상한 모험에 빠져든다. 특히 보스와의 전투에서 펼쳐지는 상황 연출과 기믹 활용이 눈에 띈다. 결국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게임을 더 즐기다가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모션 컨트롤러 게임 특성상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힘들어지는 딜레마 역시 따라오므로 이 부분이 이상한 모험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라면 매력인 셈. 이처럼 모션 인식 능력, 모션 활용 패턴, 모션 몰입 유도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이상한 모험은 다른 무브용 게임의 좋은 본보기로 자리 잡을 자격을 얻었다.

캐주얼이 죽었음다
일반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전체이용가 게임은 캐주얼 지향이 일반적이다. 상대적으로 게임 이해도가 낮은 아동 게이머들을 위해 쉬운 난이도 속에서 순간적인 재미를 주요 콘텐츠로 삼지만, 이상한 모험은 이례적으로 각종 도전과제, 수집, 성장 요소를 넣으면서 게임을 깊게 파고들 여지를 만들었다. 일부 챕터는 분기 시스템까지 등장해 같은 스테이지의 반복 플레이까지 준비했다. 온라인 코옵 플레이의 경우 스토리모드에서 등장하지 않은 서바이벌, 디펜스 모드를 즐길 수 있고 게임에서 얻은 경험치로 새로운 무기를 얻는 시스템이라 온라인 게임으로 멀티 플레이에 익숙할 우리나라 아동들에게 이상한 모험을 계속 플레이할 동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상한 모험의 난이도가 게이머 앞을 가로 막는다. 가장 낮은 난이도는 아동용에 적합하지만, 그 이상의 난이도는 게임 이해도가 높아야 플레이가 수월하다. 그래서 기사 난이도로 스토리 모드를 클리어 해 데드먼드에게 살점 붙여주는 것 하나 쉽지 않다. 도전과제의 조건들이라고 난이도가 낮지 않고 수집 요소는 이동이 제한적인 게임의 특성상 암기와 순발력이 필수다. 청소년 게이머라면 몰라도 아동 게이머들에겐 매우 버거운 제한이다. 그리고 유독 중반 이후에 이따금 나오는 외다리 나무 건너기가 균형을 맞추기 힘들어 매우 어렵고 실패하면 바로 재시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게이머의 인내심을 자극한다. 다른 패턴의 모션 인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비교되어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무브 아직 안 죽었다
2010년 무브가 등장하고 1년이 지났다. 공개 당시 훌륭한 모션 인식 기술을 선보여 PS3 진영에 새로운 활력소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다른 게임기의 모션 인식 게임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곤 말하기가 힘들다. 기대치에 못 미친 성적을 설명할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그저 무브용 게임이 재미없어서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정식 발매한 38개의 무브용 게임 중 게이머들이 추천하는 게임이 몇 가지나 있나. 오죽하면 무브 용으로 개발하지 않았던 어드벤처 게임인 헤비 레인이 아직까지 무브용 추천 게임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무브의 빈약한 라인업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다행히 이상한 모험은 앞으로 무브용 추천 게임 리스트에 올라가기에 충분한 퀄리티를 자랑하며 무브의 도약에 힘을 보태주기에 충분하다. 비약해서 이상한 모험 수준의 무브용 게임이 한 달에 한 작품씩 나왔으면 지금보다 훨씬 큰 호응과 주목을 받았을 거라 자신한다. 스포츠 챔피언을 제작한 경력을 감안하면 이상한 모험의 제작진은 무브용 게임의 개발사들 중에서 가장 무브의 이해도와 활용도가 뛰어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이 제작진들이 만들어나갈 새로운 무브용 게임이 기대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 시작이 미흡했던 만큼 이제부터라도 이상한 모험 수준의 무브용 게임이 자주 나와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어야 한다. 무브는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기엔 너무 아까운 기기다. 이 때 스포츠 챔피언이 무브의 첫 단추를 책임진 것처럼 이상한 모험이 채운 두 번째 단추가 끼웠다고 평가 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단추 한두 개 끼우고 끝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