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로 등장한 첫번째 테일즈, 순백의 이야기

테일즈 오브 순백의 이야기(이하 순백)는 NDS로 발매한 남코(현 반다이 남코 게임즈)의 대표 RPG 테일즈 오브 시리즈 중 하나인 테일즈 오브 이노센스의 리메이크 작품이다(일본 제목은 테일즈 오브 이노센스 R). PS VITA로 발매한 첫 테일즈 오브 시리즈가 리메이크 작품이라 실망하는 게이머도 있겠으나 시스템 및 시나리오 변경, 신 캐릭터와 음성 이벤트 추가, 기기 변경에 따른 그래픽과 사운드 변화 등 다양한 요소가 바뀐 사실상 완전판이기 때문에 먼저 테일즈 오브 이노센스를 즐긴 게이머도 새롭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더욱이 테일즈 오브 이노센스가 정식 발매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반대로 순백을 환영할 국내 게이머가 더 많을 것이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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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VITA용으로 탈바꿈했다 하여 게임 자체가 혁신적으로 바뀌진 않았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만남을 시작으로 모험을 떠나 여러 사람들을 거쳐 이야기의 실타래를 따라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순백의 게임 진행 구조는 옛날부터 많은 게임에서 선보인 일종의 왕도에 가깝다. 또 테일즈 오브 시리즈의 간판인 리니어 모션 배틀 시스템(이하 LMBS), 캐릭터끼리 다양한 대화 이벤트를 보여주는 그루비 챗(이하 스킷), 전투 평가 점수인 그레이드 등 테일즈 오브 시리즈라면 당연히 나올 법한 시스템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전통을 유지하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게이머들이 순백에 쉽게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할 이 특징들이 섞이면서 순기능보단 악영향이 더 커져버렸다.

꼭 PS VITA로 돌아와야 했을까?

단적으로 말해 순백에서는 PS VITA용 게임 다운 요소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PS VITA의 다양한 기능을 전부 활용해야 PS VITA 게임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한 두 기능만이라도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쓰는 게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순백에서는 그조차 보이질 않는다. PS VITA용 게임들의 가장 보편적인 조작 방법인 터치 스크린조차 세이브 파일 목록, 일부 스킬, 스킷 활성에서나 쓰는 등 사용 빈도나 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PS VITA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한 기기 성능을 충분히 선보였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NDS용 게임의 리메이크 작품이란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순백의 3D 그래픽에 면죄부를 주기가 힘들다. 그나마 고해상도의 2D 애니메이션과 무난한 사운드가 PS VITA용 게임인 순백의 체면을 세워준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장점인 2D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역시 전체적인 게임 퀄리티를 올려주기에는 게임 내 비중이나 중요도가 부족하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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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VITA용 게임이라는 전제를 빼고서도 순백의 문제들은 여럿 남아있다. 우선 게임 플레이 내내 게이머를 기만하는 각종 장치들이 너무 많다. 꼭 더 나아가거나 에어리어를 넘어가야 알 수 있는 막다른 갈림길, 게이머가 패턴에 익숙해질 때쯤 한 번씩 예외를 만들어 한 번 더 수고하게 만드는 던전의 구조와 퍼즐들, 뭔가 하려고하면 꼭 방해나 시련이 뒤따르는 스토리들이 게임 플레이의 동기 부여 대신 짜증만 불러일으켜서 재미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많이 부정적으로 보자면 게임의 제작진이 작정하고 게이머를 농락하거나 골탕 먹이기 위해 벼른 악감정처럼 보인다. 이렇게 정성껏 게이머의 심리를 약 올릴 정성으로 PS VITA 기능을 활용한 퍼즐 하나 만들었다면 지긋지긋한 반복 작업이 전부인 퍼즐과 던전 탐험이 훨씬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덕분에 보스전이나 이동 경로가 긴 미로의 중간에 위치한 회복 효과가 있는 세이브 포인트가 고마울 지경.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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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스토리가 주요 키워드인지라 전생의 인연에 공감하지 못 하는 게이머라면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에 질리기 바쁠 것이고,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쓰는 게이머라면 아이템 소지 개수를 15개로 제한하여 밸런스를 맞추려 한 제작진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거의 고정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던전 탐험과 보스전의 반복까지 겪다보면 순백이 정말 21세기 최신 기기용으로 발매한 최신 게임인지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제작진이 재미를 위해 개입하거나 의도적으로 만든 장치들이 대부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면서 게이머가 게임에 집중하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게임 제작진의 판단 미스다.

게임의 재미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

반대로 게이머가 직접 조율하는 부분에선 테일즈 오브 시리즈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재미가 잔뜩 있다. 자유도가 높은 LMBS가 가장 좋은 예인데 기본 공격에서 특기, 오의, 비오의로 이어지는 콤보와 하나같이 개성적인 전투스타일을 자랑하는 아군과의 협력, 다양한 테크닉과 전략 및 전술을 통해 각양각색의 전투들이 펼쳐진다. 게이머가 조작 캐릭터와 전술을 마음껏 바꿔가며 전투를 이끄는 것처럼 적 캐릭터 역시 단순한 졸병부터 상태이상 유발, 돌진이나 띄우기로 진영 붕괴, 강력한 술법으로 광역 공격 등으로 다양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전투가 지루해지지 않는다. 만약 스토리 진행 전투만으로 성이 안 찬다면 아이템 사용이 불가능한 전투 전문 콘텐츠인 투기장이 기다리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다채로운 전투가 벌어지며 승리 보상 또한 두둑하니 순백의 전투에 맛들였다면 천국이 따로 없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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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투의 재미는 레이브와 스타일 시스템 덕분이다. 공격할 때마다 게이지가 상승하는(반대로 공격당하면 하락한다) 레이브 시스템은 파티 전체에 게이머가 정한 혜택을 부여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좀 더 적극적인 전투를 유도하여 전투 템포를 빠르게 해주었다. 조작 캐릭터의 다양한 어빌리티를 제공하는 스타일 시스템은 공격, 방어, 보조 등 전투 성격에 따라 여러 특수 능력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순백의 자유도 높은 전투와 만나면서 전투의 다양성과 재미의 폭을 더 넓혔다. 특정 어빌리티를 같이 습득할 때 생기는 보너스 능력치가 있기 때문에 전략적인 어빌리티 선택 또한 중요. 결과적으로 스타일의 응용에 따라 같은 캐릭터라도 천차만별의 성능과 운용 방법이 탄생한다. 하나의 캐릭터만으로도 이렇게 경우의 수가 늘어나니 게이머가 전투를 통해 얻을 재미의 가능성은 무한대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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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외 콘텐츠 역시 게이머가 취사선택이 가능한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당장 순백 자체가 엔딩을 본 후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2회차 전용 콘텐츠를 다수 준비하고 있으며 이 2회차부터는 이전 회차에서 모은 그레이드 점수로 보상을 선택할 수 있어 매 회차마다 색다른 플레이를 보장한다. 굳이 다중 회차 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게임 내내 나타나는 서브 퀘스트들이 자잘한 재미와 보상을 준다. 아군들끼리 벌이는 소일상과 잡담처럼 게임 내 설정에 관심이 많은 게이머라면 쏟아지는 스킷과 호감도를 정독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심이 없는 사람은 무시해도 게임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취향에 맞는 사람에게는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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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명성에 어울리는 선도가 필요할 때

순백의 엔딩 스탭롤에 대놓고 차기 리메이크작 예고를 덧붙이면서 후속 PS VITA용 테일즈 오브 시리즈가 확정된 상황. 순백을 보고 있자면 이 예고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일 수 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 구조를 답습하여 재미를 잃어버린 순백과 게이머의 조율을 통해 최고의 재미를 이끌어낸 순백이 공존하고 있으니 차기작이 어느 방향으로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순백처럼 장점과 단점이 두드러질 수도 있으나 이거야 말로 변화가 없는 자충수일 뿐이다. 이 난국을 타파하여 테일즈 오브 시리즈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순백에서 보여준 장점과 가능성을 살리는 동시에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 차기작이 나오길 기다려 본다. 혹시 아는가? PS VITA의 선두주자로 자리 매김 할 테일즈 오브 시리즈가 나타날지. 제작진에게 그럴 능력이 충분하단 건 순백의 장점들이 증명하고 있다.

테일즈오브순백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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