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 선택을 찾는다면 진 삼국무쌍 6 엠파이어스
소싯적 PC 게임이 막 부흥하던 시절의 청소년들, 지금의 20대 이상 게이머들에게 삼국지 게임이라면 코에이에서 발매한 역사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 밖에 없었고 이거면 충분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는 못 외워도 시작용 암호는 달달 외우는 청소년들을 양산하고 알파벳 하나 읽을 줄 모르는 초등학생이 수작업으로 세이브 데이터 조작하게 만드는 그 마력이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으며 피 끓는 청춘에게 역사 시뮬레이션의 모범과 삼국지의 재미를 뼛속 깊이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영원할 것만 같던 국내에서의 삼국지 시리즈 위상이 지금은 말도 아니다. 시리즈 정식 발매를 책임지던 코에이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후 2012년에 발매한 정식 넘버링 작품 삼국지12는 국내 게이머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들어오지 못 했다. 이제 역사 시뮬레이션 삼국지가 대한민국에 있었는지 모르는 청소년 게이머들마저 보이는 와중에 삼국지 시리즈의 자리를 전략 시뮬레이션과는 거리가 먼 일기당천 천하무쌍의 액션 게임 진 삼국무쌍 시리즈가 대신하고 있으니 시대가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역사 시뮬레이션을 제작한 코에이 테크모의 피는 어디 안 가서 진 삼국무쌍 시리즈도 3편부터 역사 시뮬레이션 포맷을 가져와 Empires(이하 엠파이어스)란 외전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한다. 삼국지 시리즈와 비교하기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름대로 본편과 차별화를 성공해 지금에 와선 진 삼국무쌍 시리즈의 확장판 맹장전 시리즈처럼 진 삼국무쌍 시리즈의 간판 파생작으로 자리 잡았다. 엠파이어스의 특징은 압도적인 전투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승부하던 본편의 특징이 옅다는 것. 이벤트라곤 어떤 캐릭터든 대입 시킬 수 있는 범용 이벤트뿐이고 캐릭터 특징은 간간히 나오는 대사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병참선 확보와 진지 쟁탈전을 벌이는 전투 특성상 일기당천의 묘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대신 큰 그림 속에서 게이머의 운영 능력과 판단력을 시험하고(전황에 따른 조작 무장의 변경 등) 삼국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을 꾸려나가는 재미가 있다. 정책으로 발생하는 여러 효과들이 게임에 영향을 주고 병참선의 유지와 변형에 따라 전투의 공세가 순식간에 뒤바뀌므로 게이머의 선택이 곧 게임의 스토리요 엠파이어스의 일대기. 부국강병부터 중상모략까지 천하통일로 향하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외길 진행이 대부분인 본편의 모자람을 매우기 딱 좋다. 캐릭터의 외형, 기술, 능력치를 게이머가 직접 설정한 에디트 무장도 엠파이어스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한다.
2012년 2월에 정식 발매한 PS VITA용 진 삼국무쌍 NEXT가 저 엠파이어스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줘서 진 삼국무쌍 6 엠파이어스(이하 진삼6 엠파)는 따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기어코 나왔다. 엠파이어스의 명맥을 이어간 건 환영할 일이나 솔직히 말해서 발매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신 무장 서서를 추가해 시리즈로선 드문 단독 표지까지 맡기는 강수를 두었다만 이미 엠파이어스류 게임이 나온 뒤고, 앞서 적은대로 엠파이어스가 신 무장을 내세우기에 적합한 포맷도 아니거니와 2012년 11월 2일, 진삼6 엠파가 나오기도 전에 정식 넘버링 진 삼국무쌍 7 공식 발표가 나오는 바람에 존재감이 죽었다. 시리즈의 혁신과 10년 동력을 선보인 진 삼국무쌍 6과 이를 기반으로 한 맹장전, NEXT에 비하면 너무나 안타까운 취급이다. 본편의 혁신만큼이나 진삼6 엠파 역시 엠파이어스의 혁신을 이뤄냈건만.
정해진 특수 효과들만 가지고 떡고물이나 챙겨야 했던 과거의 엠파이어스는 이제 옛말이다. 진삼6 엠파에 와선 삼국지 시리즈의 그것과 흡사하게 게임의 볼륨이 늘어났다. 나라의 살림을 직접 챙기는 것부터 외교로 상대 진영과 견제 및 협력, 군사력 강화로 국력 증진, 상점에서 무장 개인의 능력 향상까지 게이머의 손이 닿는 영역이 대폭 늘었다. 엠파이어스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진즉 이래야 했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면 여전히 삼국지 시리즈보다 많이 모자라다. 그러나 금, 식량, 정보 세 가지의 자원을 가지고 무장의 여섯 가지 명성 무용, 지략, 규율, 재산, 악역을 쌓아가면서 삼국지 시리즈의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매력을 재현했단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가령 무장의 주요 명성이 인애일 경우 타 무장보다 지원자 계약기간이 길고 병력 회복이 용이해 장기전에 유리하며, 재산이라면 압도적인 자금 확보로 빠른 무기 및 아이템 선점이 가능, 악역일 땐 빠른 공적치 상승과 승진으로 대장군에 올라 전투를 진두지휘 하거나 단물 빨아 먹은 군주를 배신하여 같은 악역 명성의 무장끼리 하하호호 지내는 플레이가 펼쳐진다. 즉, 게임의 흐름이 삼국지 시리즈만큼이나 다양하다. 명성이 지속해서 줄어들므로 선택한 특정 명성만을 집중 관리해야 유리하도록 밸런스 조절을 해놨기 때문에 매 회차마다 다른 명성으로 플레이하며 새로운 재미에 빠지기도 좋다. 게임 플레이에서 얻는 특전 포인트로 아이템, 무기, 지원수를 지원 받아 고난이도 도전도 용이한 것 역시 플러스 요소. 진삼6 엠파는 신 무장 서서가 아니라 이 시스템 개편을 내세워야했다. 엠파이어스가 삼국지 시리즈의 구색 맞추기란 평가는 이제 끝났다.
한편 지금까지 엠파이어스의 주축을 맡던 각종 특수효과는 절초비계란 별도의 시스템으로 분리했다. 절초비계란 군략, 전투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책략이나 기술이다. 무장마다 여섯 명성에 따라 레벨 1부터 레벨 9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절초비계가 있는데(일부 절초비계는 특수 조건 만족으로 습득 및 사용 가능) 악역 명성의 절초비계들은 "나 빼고 다 죽자"식의 민폐의 극치임에도 그 성능이 출중하여 안 쓸 수 없다든가, 회복과 지원 효과를 주는 인애 명성의 절초비계들이 고난이도 전투에서 든든한 것처럼 하나 같이 발군의 효과를 보여줘 효용성이 극명했던 전작의 단점들을 극복했다. 무용의 절초비계가 개인의 전투, 규율의 절초비계가 군사의 전투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그 성격과 역할을 분리해, 여기서도 게이머의 선택과 전략을 시험한다. 여기에 절초비계를 사용하면 해당 명성치가 올라가 명성 육성의 수단까지 하므로 절초비계는 진삼6 엠파가 게이머에게 요구하는 전략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본진에서 거점의 병참선을 이어나가 전선의 유지를 강조한 엠파이어스의 전투는 진삼6 엠파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절초비계의 등장으로 전투의 양상은 다른 게임처럼 바뀌었다. 한 무장이 최소 네 가지에서 많게는 여섯 가지의 절초비계를 사용하므로 전황이 시시각각 변하기 십상이다. 재산 명성의 절초비계로 거점을 강화하여 장수 하나 없이 적장에게 공격당해도 시간을 벌면서 상대의 본진을 점령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군 믿고 다른 거점을 공략하다가 그사이 적장이 인애 명성의 절초비계를 사용하여 물량으로 아군 장수들을 쓸어버리면 그대로 패배 직전까지 간다. 이렇듯 절초비계가 전장을 바라보는 안목과 그 때마다 신속하게 대처해나가는 판단력을 요구하면서 게임의 전략성을 높였다. 무장 자체의 성장은 공적치를 쌓아 올리는 것뿐이라(무기 6차지가 처음부터 전부 개방) 공적치가 충분히 쌓이는 중후반부 전까지는 아이템의 선택과 무기 확보도 전략에 감안해야한다.
명성 레벨에 따라 사용 가능한 특수 커맨드나 조건을 만족시킬 때 간간히 나오는 이벤트 영상 말고는 게이머가 직접 이야기를 짜야하기 때문에 진삼6 엠파를 막 시작할 땐 이러한 전략 중시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전략이란 어디까지나 수단으로서의 재미라 게이머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플레이해야 그 전략이 비로소 빛을 본다. 진삼6 엠파는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사는 자체 콘텐츠를 보강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디트 무장과 DLC. 그동안 엠파이어스의 에디트 무장은 특정 체형 몇 가지 중 하나를 골라 적당히 파츠를 끼워 기존 무장의 모션을 채용했는데 진삼6 엠파에 와서 드디어 본래의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에디트 무장을 조형하면서 꽤 세세한 부분까지 바꿀 수 있고 지원하는 에디트 파츠는 수 백 종에 남녀 총 20가지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어 전략성 강화와 함께 엠파이어스가 추구하던 바를 겨우 이루어냈다. 기존 무장과 교체해서 플레이하거나 온라인 환경에서 다른 게이머의 에디트 무장이 새 게임에 난입하기까지 해 혼자 가지고 노는 인형 신세에서 벗어난 것도 주목할 점. 동시에 개발사에서 상당한 분량의 시나리오와 에디트 파츠를 DLC로 배포하여 소재거리가 잔뜩 늘어났다. 기본 시나리오에서 다 다루지 못 한 시대 배경과 함께 IF 시나리오와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상당수 무료로 배포했거나 배포할 예정이고 제값하는 유료 DLC 시나리오나 복장이 준비되어 있어 적어도 진 삼국무쌍 7가 발매할 때까지 다 즐길 수 있을지나 걱정일 수준이다.
지금 생각하면 시네마틱 일기당천으로 시리즈의 새 지평을 연 본편부터 새 무기, 새 시나리오, 새 무장으로 심도 깊은 플레이를 선사한 맹장전, PS VITA의 위용을 뽐낸 NEXT, 엠파이어스 포맷의 발전과 더불어 새 무장 서서와 13종류의 무기 계통을 추가한 엠파이어스에 이르기까지(넓게 보면 무쌍 오로치 2나 진 삼국무쌍 6 스페셜까지) 재탕 시리즈란 오명이 무색한 변화 일색이었다. 하나 같이 참 재미있는 게임들이었고 신세도 많이 졌다. 특히 하나의 게임을 기반으로 한 파생작품들이 하나 같이 준수한 퀄리티를 달성한 건 날고 기는 여타 시리즈 게임들 사이에서도 드문 일이라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선례를 생각하면 진삼6 엠파의 대단한 발전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을 터지만 그래도 막상 마주하니 게이머로서 기쁠 따름이다. 이 유종의 미, 외면 당하고 끝나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