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상전벽해’ 수준. 시대별 게임 그래픽 변천사
'상전벽해'.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무언가를 비유하고 싶을 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게임 시장처럼 이 말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게임의 그래픽은 과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을 이룩했다.
8비트, 16비트로 일컬어지는 2D 그래픽에서 3D 그래픽의 기본 요소인 폴리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초기 3D 그래픽 시대를 지나 이제는 얼핏 보면 실사로 착각할 수준의 그래픽을 지닌 게임들도 종종 출시되고 있다. 90년대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게임의 역사가 60년대부터 시작됐다고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80년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당시의 게임 그래픽은 점으로 그려진 캐릭터와 배경이 등장하는 2D로 그려진 것이 다수였다.
이 시기에 가장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이라면 단연 파이널판타지6와 슈퍼동키콩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6비트 시대의 말미에 등장한 이들 작품은 지금까지도 당대 최고의 그래픽을 지닌 게임으로 손꼽힌다. 파이널판타지6는 당시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기술력을 지니고 있던 스퀘어(스퀘어에닉스의 전신)의 내공이 집약된 작품으로 '도트 편집'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6비트 시대에서 32비트 시대로 전환되기 직전에 슈퍼패미컴으로 등장한 레어의 슈퍼 동키콩은 2D 그래픽 일변도의 게임 시장에 3D 그래픽의 맛을 보여준 게임이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 이 작품은 16비트 그래픽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연출과 색감을 갖춘 그래픽을 선보여 게이머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일각에서는 현 시점에서 보더라도 해상도만 떨어질 뿐이지 크게 거슬리지 않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32비트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세턴 등이 보급되며 게이머들은 본격적으로 3D 그래픽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 관점에서 보기에는 낮은 해상도 때문에 지저분하게 보이는 그래픽이지만, 2D 그래픽에 익숙해져 있던 게이머들에게 3D 모델링된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광원 표현은 '신세계'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이었다.
세가 세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1994년을 전후해 보급되어 게이머들에게 3D 그래픽의 매력을 나타내고 있을 즈음, PC 시장에서는 2D 그래픽을 내세운 게임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PC로 3D 게임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 약 2년이 지난 1996년부터였다. 3D 그래픽이 득세하기 이전의 PC 시장에서는 그래픽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영상을 게임에 적용시킨 소위 '실사 게임'들을 출시하며 게임의 그래픽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역대 가장 잔인한 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판타스 마고리아'와 항상 최고 수준의 PC사양을 요구했던 '윙커맨더' 시리즈가 이러한 시류를 따른 대표적인 게임으로 꼽힌다.
1996년에 3DFX사는 개인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3D 가속카드인 부두 그래픽스를 출시했다. 기존의 비디오카드가 갖춰져 있는 PC의 슬롯에 이를 장착하고 비디오카드와 부두 그래픽스를 연결하면 3D 가속기능을 통해 이를 지원하는 게임들을 보다 멋진 그래픽으로 즐길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2년 후에는 3D 카드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부두2가 출시됐다.
부두2의 출시는 PC 게임 시장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놨다. 지금이야 PC의 그래픽 성능이 비디오게임기의 그것을 몇 배나 상회하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디오게임 그래픽 > PC게임 그래픽'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시기였는데, 부두2는 PC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 수준의 3D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서 인기가 많았던 파이널판타지7가 PC로 이식됐으며, 부두2가 있으면 이를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뛰어난 그래픽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화제가 됐다. 또한 툼레이더, 피파99, 트리플플레이, 퀘이크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인기 작품들이 3D 가속 기능을 지원하며 PC게임 시장도 본격적인 3D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됐다.
3D 그래픽카드의 등장은 게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급진적인 그래픽 향상이 이뤄지는 시대의 문을 여는 촉매가 됐다. 무서울 정도로 게임 그래픽이 향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FPS와 스포츠 게임 장르에서 이 시기의 그래픽발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EA의 NBA 라이브 시리즈와 ID 소프트의 퀘이크 같은 작품은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전작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그래픽을 선보였다. 또한 이 시기에 비디오게임시장에서는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통해 지속적으로 게이머들에게 '비주얼 쇼크'를 줬고, 파이널판타지10에 이르러서는 절정의 비주얼을 선보이며 게이머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언리얼엔진과 크라이엔진의 등장은 게임시장 그래픽 발전에 있어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엔진이 보급되며 이를 이용하면 평균 이상의 그래픽을 갖춘 게임을 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Xbox360으로 2006년에 출시된 기어스오브워는 게이머들에게 언리얼엔진의 힘을 톡톡히 보여준 대표적인 게임이다. 질감표현과 특유의 색감, 빗물이 흐르는 효과 등은 기존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언리얼엔진의 시장 장악은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디오게임 수준의 그래픽을 갖춘 온라인게임들이 속속들이 출시된 것이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아바,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 블루홀스튜디오의 테라 등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그래픽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모든 작품들이 언리얼엔진을 활용한 작품들이다.
크라이엔진 역시 빼어난 그래픽 성능을 과시하며 게이머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크라이엔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크라이시스에서는 다이렉트X10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광원과 사물의 질감 표현, 그리고 실제 물을 보는 것 같은 강과 바다를 그려내면서 게이머들을 경악케 했다.
지난 1월 16일부터 정식서비스에 들어간 아키에이지는 크라이엔진을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온라인게임이다. 크라이엔진의 강점인 '물에 대한 묘사'는 아키에이지의 게임 특징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게임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를 거뒀다. 아키에이지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인 함대전에서 바다가 멋지게 그려지며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부분이 바로 그래픽이다. 게임 그래픽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라며,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와 너른 보급, 제작비용 상승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래픽 발전이 최근에는 다소 주춤하는 면이 있지만, 크라이엔진의 이해가 높아지고 언리얼엔진3의 후속 엔진이 출시 된다면 다시 한 번 게임 시장은 혁명에 가까운 그래픽 발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