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데드스페이스3
데드 스페이스3는 여러 모로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어두컴컴하고 폐쇄적인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적들을 피해 생존과 탈출을 꾀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에일리언 시리즈는, 공포 분위기로 점철됐던 1편과 달리 2편으로 넘어가면서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 묘사에 중점을 두는 한편 화끈한 전투 장면을 대폭 늘려서 한 편의 훌륭한 액션 영화로 자리 잡았다.
어느덧 3번째 작품이 되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선과 우주 정거장 등 폐쇄된 공간에서 정체불명의 적들과 생존을 건 싸움을 벌여나갔던 전작들이 에일리언 1에 해당한다면, 광활한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여러 동료들과 함께 적의 본거지를 치기 위한 힘든 싸움을 벌여나가는 이번 작품의 모습은 에일리언 2와 비슷하다. 스케일은 더 커지고 액션성도 강화되었으며, 드라마 성이 부각되고 공포 요소는 줄어들었다. 전작까지의 흐름을 부정하는 듯한 액션 게임으로서의 데드 스페이스3는, 이 작품이 원래 호러 게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는 디멘시아 현상, 즉 환각 증세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전작까지의 아이작은 네크로모프를 만들어내는 한편
주위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마커의 존재로 인해 환각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지만, 환각 증세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이번 작품에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불분명한 환상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두어 번 나올 뿐 그 이상의 디멘시아 현상은 싱글
플레이 중에 묘사되지 않는다.
물론 또 다른 주인공이자 코옵 모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인 존 카버가 내면의 갈등에서 비롯된 디멘시아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게임에서 이러한 자기파괴적 환각 묘사가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전작과 비슷한 느낌의 공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존 카버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 다시 말해 인터넷 환경이 필수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별다른 제약 없이 조용한 공포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제공했던 전작들에 비춰봤을 때 상당히 불만스럽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 디멘시아 현상은 비단 주인공 1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한 말을 늘어놓게 하거나, 혹은 광기에 찬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등 게임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훌륭한 설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한 장치가 배제된 데드 스페이스3에 남은 공포라고는 오로지 슬래셔와 스플래터, 그리고 다양한 데드신 뿐이다.
치정극을 떠오르게 하는 인간관계 묘사도 본 게임의 공포 분위기를 감소시킨다. 전작까지는 주인공과 관계된 인물이 극소수에 불과했고 인간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도 거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주인공 1인에 초점이 맞춰져 공포를 배경에 두고 일관되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아이작 클라크와 존 카버를 포함해 주요 등장인물만 5명에 달하며, 마치 막장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삼각관계, 어장관리, 억지스러운 치졸한 복수극 등이 어우러져 오로지 공포만을 집중해서 음미하기 힘들다.
공포장르에서 소리의 역할변화
이번 작품에서 달라진 소리 연출 방법도 공포 분위기를 줄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는 환경음과 BGM 등 다양한 소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이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긴장감을 유저에게 제공했다. 소리가 흘러나오는 간격도 일정하지 않았고, BGM의 경우에는
음원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띤 것이 일부 보스전 음악과 ‘반짝 반짝 작은 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단속적(斷續的)이었다. 전투에 돌입해도
평소 들리던 소리에 적이 내지르는 기괴한 비명이 섞이는 정도였고, 전투가 끝나고 사방에 적이 보이지 않아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리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3는 다르다.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BGM들은 처음과 끝이 완전한 음악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쿵쾅거리는 환경 음과 방향을 알 수 없는 괴물의 메아리는 줄어들었다. 또 전투의 시작과 끝에 맞춰 전투 전용 BGM이 켜졌다가 꺼져 유저들에게 ‘너는 이제 안전하다’는 무언의 메시지와 함께 전작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안도감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게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탐색 파트와 전투 파트가 확실하게 분리되며 유저들이 다음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밝아진 게임 밝기
공포 분위기를 없애는 요소 중 기타 사항으로 전작들과 달리 게임이 너무 밝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전작들에서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실내를 배경으로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초반 탐색 지역인 고대 함대를 제외하면 어두운 곳이 거의 없다. 눈보라
때문에 시야가 뿌옇기는 하지만 행성 지역의 밝기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이며, 건물 내부 조명도 깜빡이는 일 없이 일정 밝기의 빛으로
주위를 밝혀준다. 주위가 밝으면 같은 상황이라도 무서운 느낌이 덜하기 마련인데, 데드 스페이스3에서는 그러한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다채로워진 액션 모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공포 요소 중에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와 ‘궁지에 몰리면 피할 곳이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FPS/TPS에서 필수 요소로 등장하는 앉기와 구르기 등 회피 모션이
추가되어 적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는데 대한 부담감이 덜해졌다. 적의 공격을 맞고 버틸 수밖에 없는 것과 회피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그것이 데드 스페이스3와 전작들의 게임성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액션게임으로서의 완성도 UP
한편 액션성은 전작들에 비해 캐주얼하고 화려하게 강화된 모양새다. 먼저 전작들까지는 무기마다 다른 탄창을 사용하던 것이, 데드
스페이스3에서는 모든 무기가 하나의 공용 탄창을 사용하게 바뀌었다. 전작들에서는 최대 4개의 무기를 소지할 수 있었는데, 각각 다른 종류의
탄창을 사용했기 때문에 인벤토리 압박이 심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공구든 무기든 화염방사기든, 적을 쓰러뜨리는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같은 탄창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벤토리의 압박에서 자유롭다. 무기마다 탄 소비량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 탄환을 많이 쓰는 무기를 난사하다가는 자칫 다른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독특한 재장전 방식이 초반 장애가 될 수는 있지만, 플레이 중에 모은 자원으로 얼마든지 탄창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시간만 넉넉하다면 사실상 탄창은 무한인 셈이다. 덕분에 탄약 관리가 전작 이상으로 쉬워져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또한 펄스 라이플 같은 만능 무기와 그렇지 않은 무기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무기들은 조합을 통해 각각의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 없이 모두가 만능 무기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개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소 쓰기 힘든 무기라도, 각 무기 성능의 높고 낮음이 무기 자체의 능력치보다 업그레이드 부품에 의존하는 시스템 때문에 업그레이드만 잘해주면 얼마든지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한 가지 무기에 고집할 필요 없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같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공략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전투 자체의 모양새는 다른 FPS/TPS와 비슷해졌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적들이 공포 연출과 함께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는 해도 이동 속도 자체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침착하게 상대의 사지를 절단할 수 있느냐’가 전투에서 주로 요구되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3의 적들은 시리즈 1편 후반에 등장하는 슈퍼 슬래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초반부터 엄청난 속도로 유저에게 달려든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아예 근거리 순간이동을 하는 적까지 나올 정도이다. 때문에 ‘침착하게 적을 격퇴’하는 것이 요구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다른 FPS/TPS와 마찬가지로 순발력과 반사신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전작들의 전투 방식에 익숙한 유저라면 아쉬워할 부분이겠지만, 대다수 FPS/TPS 유저들에게는 박진감 넘치는 게임성을 보장해 준다.
액션의 볼륨은 확실히 전작을 능가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원거리 전투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전작까지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적들이 돌격에 이은 근접 공격을 주요 공격 패턴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을 비롯해 원거리에서 총기류와 폭탄을 사용하는 적이 다수 등장한다. 때문에 유저들은 돌격하는 적과 사격하는 적이 골고루 섞인, 기존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와 다른 FPS/TPS가 섞인 듯한 독특한 스타일의 전투를 즐길 수 있다.
보스전의 규모가 커진 것도 데드 스페이스3의 액션 볼륨 증가에 한몫 하고 있다. 전작들의 거대 보스전은 보스가 고정형이거나 이벤트 전투 형식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액션성 자체는 조금 부족한 편이었다. 반면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보스들은 크기 면에서 역대 보스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으며,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필드 전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격파할 수 있는 등 퍼즐적, 액션적인 요소가 강해졌다. 특히 최종보스의 임팩트는 역대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이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아이작의 모습은 헐리웃 블록버스터 대작 영화의 주인공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만 적의 AI가 비교적 단순하고, 이로 인해 전투가 다소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적들의 이동속도가 매우 빨라졌는데, 적 대부분의 공격 방식이 슈퍼 아머 상태로 묻지마 돌격을 하는 것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다리를 제거함으로써 적의 이동력을 빼앗거나, 팔을 잘라내어 공격수단을 없애는 등의 전략적 플레이가 중요했던 전작들과 달리, 데드 스페이스3에서는 적을 보면 가장 타격면적이 큰 몸통 부분을 강력한 무기들로 집중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 됨으로써 사지를 잘라 적을 잡는다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만의 색채가 다소 퇴색되었다.
무조건 돌격만 하는 적들의 특징을 이용해 그들의 접근 경로를 제한하기 쉽다는 점도 문제로 작용한다. 일부 개활지를 제외하면 데드 스페이스3의 전투는 사실상 외길에 가까운 지형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구르기와 장애물 등을 이용해 적들을 일렬로 세워놓기 쉽기 때문에 빠른 이동속도만 주의하면 전투에 긴박함이 사라지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적이 등장하는 중반부까지는 전투가 자칫 단순 작업의 반복으로 끝나버릴 위험이 크다.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
데드 스페이스3는 즐길 거리가 많은 게임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상점이 사라진 대신 자원을 채집하여 작업대에서 새로운 무기를 조합하거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무기 조합의 경우의 수는 유저의 노력과 부품의 수만큼 다양하며, 업그레이드 부품에 따라 남들과 차별되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 수 있다. 자원 채집 포인트를 찾아 스케빈저 봇을 풀어놓고, 이들이 모아오는 자원을 이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조립이나 만들기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다. 총 플레이 시간 중 30% 정도는 작업대에서 고민하며 장비를 이리저리
뜯어보는데 사용하지 않을까?
다양한 서브 퀘스트도 마련되어 있다. 약간의 탐색 가능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외길이나 마찬가지였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지금까지 텍스트나 오디오 로그로 처리했던 각종 이벤트에 적절한 전투와 퍼즐 풀이, 탐험과 보상이라는 요소를 부여함으로써 일방통행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에 지친 유저들에게 숨 돌릴 기회를 제공한다. 미처 플레이 하지 못하고 지나친 퀘스트도 특정 시점까지는 얼마든지 재도전할 수 있으며, 굳이 클리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메인 스토리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적은 것도 좋게 평가할 만 하다.
게임을 한 번 클리어 했다면 이번에는 코옵 모드를 즐길 차례이다. 데드 스페이스3는 모든 챕터를 코옵 모드로 플레이 할 수 있으며,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존 카버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코옵 모드에서는 싱글 플레이에서 주인공 혼자 작동시켰던 장치를 둘이서 동시에 조작하는 장면도 들어가 있으며, 전용 이벤트와 퀘스트 역시 존재한다. 특히 본 작품에서 제대로 된 디멘시아 현상은 이 모드에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코옵 모드야말로 이 게임의 진정한 스토리 모드라고 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 '액션' 게임
데드 스페이스3는 잘 만들어진 대작 액션 게임임이 분명하다. 압도적 스케일의 영상과 분위기에 맞는 음악들은 유저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며,
캐주얼하게 바뀐 전투 시스템은 기존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보다 광범위한 대상에 괜찮은 손맛을 제공한다. 무기 조합과 서브 퀘스트 등 몇
번이고 게임을 다시 플레이 해도 질리지 않은 요소들이 가득하고, 코옵 모드는 전체 스토리에 비추어 위화감 없이 게임에 잘 녹아 들어있다.
하지만 3부작 호러 게임의 완결편으로서의 데드 스페이스3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스토리는 완결되지 않았고, 분위기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게임 속 공포 연출은 헐리웃 영화에 익숙하다면 식상한 수준이고, 전투에서도 시리즈 고유의 특징들이 많이 사라져 있다. 머리와 가슴으로 즐기는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다.
데드 스페이스3가 전작들에 비해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에 공포와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인기 요인이 공포에서 비롯되었음을 제작진은 잊고 만 것일까? 공포물에는 약하지만 액션 게임은 즐기고 싶은 유저들에게는 충분히 호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호러 게임으로 즐겨온 유저들에게, 이번 작품은 일종의 배신감이 남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