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잠입액션으로 GO!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
메트로 : 라스트 라이트(이하 메트로LL)는 제 3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지하철을 거점으로 새로운 문명사회를 일군 인류의 갈등과 싸움을 그린 러시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메트로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FPS 게임이다. 내용 면에서는 전작인 메트로 2033을 계승하고 있으나, 전투 장면이 거의 없다시피 한 소설 내용을 FPS에 어울리게 바꾸는 과정에서 원작인 메트로 2034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특징. 때문에 이 작품은 메트로 2033의 후속작이긴 하지만, 외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긴장은 강화되고 편의성은 높아졌다
메트로LL가 전작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라면 향상된 편의성을 들 수 있다. 전작에서는 아이템 습득 시 아이템 수량만큼 일일이 E키를
눌러야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단 한 번의 조작으로 모든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기능이 하나의 키에 중복된 탓에 의도하지
않은 오동작을 일으키게 하는 주범이었던 불편한 키보드 배치도 개선되어, 유독 가스가 충만한 지역에서 정화통을 교환하고 싶은데 방독면을 벗는
등의 치명적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전작의 사운드 효과가 단순히 세기말적 분위기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메트로LL에서는 각 상황마다 다른 음향 효과를 선사해 특정 환경에서 게이머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쿵쾅거리는 빠른 BGM은 전면전을 예고하며, 고요함 속에서 사방으로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경고음은 적이 게이머를 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전작 플레이에서 핵심 요소였던 잠입은 이번 작품에서 훨씬 더 강화된 모습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면 대부분의 적이 주인공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맵 곳곳에 배치된 기습용으로 사용되는 일명 개구멍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약간의 위험은 있지만 모닥불이나 전구 등 광원으로 사용되는 것들을 제거할 수도 있으며, 전원 스위치를 내려 모든 불을 한꺼번에 끌 수도 있다.
시스템적으로도 잠입 요소를 강조한다. 전작과 달리 강력한 돌연변이 괴물들과 싸우는 보스전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항상 일정 이상의 탄약을 소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잠입 플레이다. 또 전작과 마찬가지로 메트로LL도 행동에 따른 멀티 엔딩을 채용하고 있는데, 계속된 전투로 황폐화된 게이머의 마음을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살며시 어루만져주는 굿 엔딩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잠입 요소가 한몫 단단히 잡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전작 이상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세기말 닌자 플레이를 만끽할 수 있다.
고독한 싸움. 멀티는 없다
그런데 메트로LL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요즘 FPS 게임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 모드가 탑재되지
않았다. 제작사의 열악한 개발 환경과 전작의 퍼블리셔였던 THQ의 도산 등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PC판의 발적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게임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속칭 발적화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겠다. 전작인 메트로 2033은 게이머의 시야가 닿지 않는 부분,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부분에도 고해상도 텍스쳐를 덕지덕지 발랐고, 게임 자체의 최적화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core i7
CPU에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동원해서도 30프레임이 간당간당한 끔찍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메트로LL의 그래픽은 전작의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한층 정교해졌으며, 실사적인 느낌도 더욱 강해졌다. 사물과 지형의 파괴 효과는 이 게임이 블록 버스터일 수 있게 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박력 있는 연출은 원작 소설이 보여주지 못한 강렬한 액션을 게이머의 뇌리에 박아 넣는데 일조해야 하는데 그 놈의 발적화가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간소화된 콘솔판이라면 몰라도 PC판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DLC 벤치마킹 모델은 누구?
당황스럽기는 DLC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이 게임, 일반 구매자들은 상위 난이도 중 하나인 레인저 모드를 플레이 할 수 없다. 특별한
스토리가 추가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등장인물이 활약하는 것도 아닌 단순한 난이도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예약구매자가 아닌 게이머들이 이
모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약 5달러 정도 하는 DLC를 구매해야 한다.
시즌 패스를 구입하면 별도 판매 중인 DLC를 할인된 가격에 일괄 구입할 수 있지만, 레인저 모드만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향상된 난이도, 절제된 시각 효과는 FPS 상급자들의 도전 욕구를 불태우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추가 요소가 없는 단순 상위 난이도에 불과한 레인저 모드에 과연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스럽다. 더욱 가관인 사실은 이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인 레인저 하드코어모드도 여기에 딸려 나온다는 점이다.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고자 하는 제작사의 태도는 매우 불쾌하다.
원작과의 선긋기와 게임으로써의 메트로 후속작.
원작에서 주인공은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반 미치광이가 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의 막을 내리며, 게임판의 정식 스토리도 소설의
결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메트로LL에서는 굿 엔딩의 형태를 빌어 주인공의 모든 모험이 마무리된 마지막 순간에 희망 섞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는 원작 소설의 분위기와 다른 게임만의 독자적인 전개이다.
메트로LL은 싱글 플레이만 놓고 보자면 잘 만든 게임임에는 분명하나, 많은 게이머들이 PC의 사양이든 진행 방식이든 게임을 클리어 하는데 있어서 단 한 번의 어려움도 겪지 않고서 플레이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스플린터 셀이나 메탈기어 솔리드와 같은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게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한 번 익숙해지면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폐쇄적인 지하철 공간과 개방적인 야외 공간 사이의 대조적 표현, 단순하고 본능적인 사격의 재미보다 한층 고차원적인 수준을 요구하는 잠입의 재미, 광원을 잘 이용해야 하는 퍼즐적 요소는 이 작품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략적인 게임의 재미를 위한 밸런스가 잘 맞은 수작
메트로LL은 원작의 암울한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이머들을 위한 비상구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을 피하기 위해 희미한 희망의 빛
줄기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팬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기말 닌자를 방불케 하는 주인공의 초인적인 활약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향상된 편의성, 강화된 액션성은 스토리에서 무거움을 덜어내고 게임을 캐주얼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재미있는
수준이다. 스토리와 잠입, 이것이야말로 이 게임의 핵심 키워드이다.
비록 영 좋지 못한 최적화와 잠입 플레이에 한없이 너그러운 AI, 멀티 플레이의 결여, 그리고 그래픽과 편의 효과 및 몇 가지 잡다한 모드 외에 전작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는 점이 발목을 붙잡기는 하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포스터를 기준으로 2013년 12월에 최신작인 메트로 2035가 발매될 예정이라고 하니 지금은 세기말 러시아 청년의 영웅담 한 편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설마 하니 시리즈 마지막 편인데 뭔가 새로워진, 인상적인 모습은 보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