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냄새가 난다. 원피스 언리미티드 월드 레드
한일 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소년 만화 원피스. 그 인기에 힘입어 원피스를 소재로 한 게임 역시 오랫동안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았고 PS2용 게임은 정식발매를 통해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원피스 게임이 2006년을 끝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니 그 이유는 2007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원피스 게임이 닌텐도의 하드웨어인 Wii와 DS용으로만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 닌텐도의 현지화 필수 정책에 의해 정식 발매의 문턱이 높아졌고 덕분에 정식 발매로 들어온 작품은 2008년에 등장한 원피스 기어 스피릿 딱 하나. 그동안 일본에서는 꾸준히 게임 발매가 이뤄졌으니 그 중심에는 원피스 언리미티드 시리즈가 있다. 2007년 Wii용 원피스 언리미티드 어드벤처를 시작으로 원피스 언리미티드 크루즈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 이 둘의 합본인 3DS용 원피스 언리미티드 크루즈 스페셜이 차례대로 등장했으며 2013년에는 시리즈 최신작 원피스 언리미디트 월드 레드(이하 레드)가 3DS용으로 나왔다. 그리고 레드에서 재미를 좀 봤는지 2014년에 이르러선 닌텐도에서 벗어나 PS3, Wii U,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PS VIT용 이렇게 세 기종이나 추가이식을 진행하게 된다.
흔히 3DS용 작품과 PS VITA용 게임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그래픽. 3DS와 PS VITA는 기기 성능 차이로 인해 쉽게 비교 당하곤 했는데 유독 그래픽 부분에서 3DS가 약했고 한편으론 3DS용 작품들이 대부분 갖춘 3D 효과를 다른 기종에선 재현하기 어렵기에 여기서 발생할 문제가 걱정스러운 게이머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걱정을 덜어도 좋다. 레드는 앞서 3DS용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3D 효과를 아예 포기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고 PS3와 Wii U으로 동시 이식한 만큼 걸맞은 퀄리티 상승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레드 본래의 이벤트 연출이 더해져 눈으로 즐기는 부분에서 합격점이다. 다만 3DS 시절 기기 한계로 인한 정지 컷인 연출이 여전하고 두 개의 스크린으로 진행하던 게임이 하나의 스크린으로 합쳐진 탓에 3DS 보다 넓은 화면임에도 체감상 좁게 느껴지는 건 아까운 부분이다.
게임 플레이를 살펴보면 오로지 액션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해적무쌍과 던전 RPG인 원피스: 로맨스 던의 절충안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액션 자체는 두 버튼의 조합과 필살기 버튼만으로 싸우는 해적무쌍과 흡사하나 캐릭터의 레벨에 따라 캐릭터 능력치가 달라져 육성을 요구하는 점, 필드를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조사, 수집하다 특정 지역에서 적과 마주치면 전투를 반복하며 보스전까지 도달하는 일련의 흐름은 RPG와 일맥상통한다. 여기에 원작을 순서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거점에 터를 잡고 이곳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사건의 원흉을 파헤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캐릭터 육성, 거점 발전, 스토리 진행 삼위일체의 플레이 동기 부여가 완성되어 게임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스토리 내용은 거의 대부분은 음성을 지원하며 “본편과 미묘하게 비껴나가면서 충돌은 피하되 설정으론 얼마든지 가능한 완결성 가진 우정, 노력, 승리의 해피 엔드”라 원피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스토리 진행을 위해 캐릭터 육성만으로 모자라 거점 발전, 서브 퀘스트 진행까지 꽤 빡빡하게 느껴질 법한데 실제 플레이에선 이런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다. 진도를 나가는데 있어 요구하는 조건이 꽤 낮아 스토리 진행과 일부 퀘스트 진행만으로 엔딩까지 달리기 쉽다(단, 전투에서 발생하는 회피, 반격 커맨드 입력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작에선 아이템 수집이나 나비 잡기, 낚시 등의 미니게임이 꽤 악명 높았던 모양인데 적어도 레드는 일절 그런 장애물이 없다. 각 잡고 플레이하여 10시간 안에 1회차 엔딩을 본 사례가 수두룩할 정도니 얼마나 난이도가 낮은지 짐작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스토리 엔딩을 봤다고 끝이 아니라 2회차에서 못 다한 퀘스트를 클리어 하거나 1대1, 난전, 배틀로얄, 보스러시가 준비되어있는 배틀 콜로세움을 할 수 있다. 3DS에선 대규모 업데이트로 제공한 배틀 콜로세움이 처음부터 들어있고 이 배틀 콜로세움이 스토리 모드와 연계되며 스토리 중 잠깐 사용 가능한 에이스 외엔 밀집모자 해적단뿐이던 조작 가능한 캐릭터가 로우, 핸콕, 샹크스, 흰수염, 후지토라, 도플라밍고, 에이스 등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조작 캐릭터에 불만이 많은 게이머는 여기서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이렇게 플레이 자체로만 보면 잘 만들어 재미있는 게임의 전형이지만 그럼에도 게이머의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꽤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분기점은 게이머가 원피스 게임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레드는 원피스에서 있을 법한 혹은 있으면 그림이 제대로 나올 상황 재현에 공을 들였다. 모래가 풍부한 사막에서 크로커다일과 결전, 시작의 장소에서의 에이스와 결투, 정상결전 리벤지, 패기를 배운 밀집모자 해적단과 에넬의 리턴 매치 등등 흥미로운 조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원작의 대사를 외치며 조작 캐릭터를 강화하는 키워드 시스템, 동료들의 고유 능력에 따라 필드 곳곳에서 역할분담을 보여주는 플레이 패턴 등 원피스란 세계 안에서 캐릭터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진하다. 반면 조작 캐릭터가 배틀 콜로세움을 포함해서도 20명 정도로 적고 각 캐릭터들의 기술들과 필살기가 적은 점, 이벤트 연출에 비해 전투 모션 자체는 속도와 박력이 모자란 점 등 원피스 캐릭터를 부리면서 마음껏 활보하는 쪽으로는 게이머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좀 부족하다. 게다가 달리기 기능이 따로 없어서 무작정 움직이면서 가속도가 붙을 때까지 기다려야하며 이것마저 전후가 거의 똑같아 적응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다.
그밖에 카메라의 시점 자체도 불편하면서 움직이는 속도가 느린데 이걸 조절할 옵션조차 없어 시야각이 좁은 문제나 일어 음성에 영어 자막 그리고 후반에 갈수록 중요해지는 회피 기동 인터페이스 쪽도 게이머에 따라선 호불호를 가를 요인이 될 수 있다. 카메라 시야 문제는 직접 플레이 해보면 3인 전투를 제대로 담지 못 하는 문제에 한 곳에 집중하기 곤란하고 일어 음성에 영어 자막은 대한민국 특유의 영어 독해력 덕분에 이해하는데 문제는 없겠으나 고유명사와 캐릭터의 대사가 대한민국과도 일본과도 차이가 커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회피 기동은 게이머가 직접 조작해서 피하는 것보다 특정 타이밍에 요구하는 버튼 입력에 성공해야 할 때가 비중도 중요성도 월등히 높아 플레이 패턴에 따라선 액션 게임이 아니라 리듬 게임에 가까워질 때도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게임에 방해는 되지 않는다 해도 게이머의 취향에 따라 수용 여부가 갈린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이머의 마음은 굵직한 장단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사소한 사양 가지고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캐릭터 게임의 경우 그 정도가 더할 때가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비중이 적다든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방향성으로 게임으로 나가는 건 물론이고 대사 몇 마디,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에 기분이 상해 게임을 놓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물론 필자도 그런 경험 자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를 두고 고민하는 게이머는 작품 자체의 준수한 재미와 퀄리티는 별개로 하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과 일치하는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