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동급생부터 미행까지 당신의 청춘을 불태운 게임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지닌 이들이라면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거나 남녀가 정(情)을 나누는 주제로 제작된 영상에 눈길을 빼앗긴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금단의 비디오 혹은 잡지 등을 통해 이런 혈기왕성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우가 많았으나 가정용 PC의 발달과 다양한 미디어 매체의 등장을 통해 점차 영상 혹은 게임으로 흐름이 변해 왔던 것이 사실.
더욱이 '인간의 욕망을 담은 거울'이라 불리는 게임의 경우 남녀간의 연애 혹은 그 이상의 단계를 방식도, 전개도 다르게 그려낸 게임들이 연예시뮬레이션 혹은 에로게 등으로 불리며 자신만의 장르를 확립해 나가기도 했다.
이 게임들은 청소년이 즐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엄청난 수위의 묘사와 연출로 가득한 것은 물론, 엄격한 심의에 막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넷 강국 한국의 네트워크 환경과 어둠의 경로로 게임을 입수해 열정을 불태운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에야 실소가 나올 법한 그래픽에 고전 게임 특유의 높은 난이도 등으로 '줘도 안 하는 게임'으로 취급 받기도 하지만, 50~60년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이 '꽁보리밥'을 추억하듯 이 게임들을 '피끓는 청춘'에 접한 이들에게는 게임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30~40대로 접어든 게이머들에게 추억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게임 '코브라미션'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92년 메카테크 소프트웨어에서 출시한 '코브라미션'은 마을을 돌아다니고, 미션을 진행하며, 보스를 물리치고 여성을 구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등장하는 등 언 듯 보면 '젤다의 전설' 혹은 '포켓몬 시리즈'와 같은 같은 방식의 RPG다.
하지만 그 이면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바로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한 뒤 데이트를 진행하면 곧바로 19세 게임으로 돌변한다는 것. 이 돌변하는 그림 덕분에 '코브라미션'은 당시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던 게이머들에게는 그 어떤 교육 프로그램보다 인기가 높았고, 메인보드 내장형 스피커로 무려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사운드의 신세계를 열어 주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MS-DOS의 개념이 확실치 않은 시기에 출시된 게임인지라 게임 구동에 대한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 하겠다는 열정으로 MS-DOS 명령어를 외워버리는 게이머도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게임도 하고 명령어도 배우는 1석 2조 효과)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내장형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소리 때문에 큰 봉변을 당한 게이머도 많았다는 점이다. '코브라미션'은 MS-DOS의 기능을 활용해 장면에 따른 효과음을 구현해 놨는데, 문제는 데이트 후 등장하는 '러브신'의 효과음이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컴퓨터의 전원을 뽑는 게이머도 있었으며, 컴퓨터를 뜯어 메인보드의 내장형 스피커를 분리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초창기 컴퓨터의 세계에서나 벌어질 법한 해프닝이었다.
국내 게이머들에게 '이것이 연애다!'라는 감정을 일깨워 준 게임 '동급생'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지금도 청춘을 90년대에 보낸 이들에게 '레전드'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명작으로 불리는 '동급생'은 각 캐릭터별로 다른 공략 루트를 부여하고, 남성들의 취향에 따른 다양한 스타일의 여성을 등장시켜 멀티 엔딩을 볼 수도 있는 등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선물세트'와 같은 게임이기도 했다.
더욱이 시간에 따라 공략할 수 있는 캐릭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당시 '동급생'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컴퓨터 옆에 '00시 00분 공원 미호' 등의 내용을 종이에 적어 놓을 정도였으며, 이미 엔딩을 본 친구가 알려주는 공략루트를 필기하는 등의 열성을 보이는 게이머들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또한, '동급생'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전설로 통하는 게임이기도 했는데, 바로 아마추어 번역의 시초가 됐다는 점이었다. 이전까지 등장한 이쪽 장르(?)의 게임들은 모두 영어나 일본어로 등장했으나 지금은 전설이 된 한글화 팀 '한누리'가 직접 한땀한땀 번역한 ''동급생'' 한글패치를 선보이면서 더욱 많은 게이머들이 이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이후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게임들이 아마추어 한글화 팀의 노력으로 빛을 받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동급생'이라는 하나의 게임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연애게임의 참 맛(?)을 알려준 '동급생' 이후 국내 게이머들의 관심은 다른 작품에 집중됐고, 이에 '노노무라병원사람들', '애자매'와 같은 '엘프'사의 주옥 같은 게임들도 덩달아 화제가 되기에 이른다. 물론 클릭만 하면 엔딩에 이르는 '애자매'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추리를 이끌어나가는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은 그 특유의 플레이 덕에 게이머들의 취향이 갈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특히,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의 경우 특별 패치 없이 MS-DOS로 구동하면 텍스트가 모두 깨지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엔딩을 보겠다는 일념에 덤벼드는 게이머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추리가 잘못되면 '게임오버'가 되는 추리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도 나타나지 않는 선택지를 일일이 다르게 선택하여 결국 엔딩을 본 몇몇 게이머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후 또 다른 전설의 한글화 팀 '사과나무'의 한글 패치로 인해 이 같은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 다만 이 '사과나무' 팀의 '공식' 한글화 패치는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의 엔딩 장면을 모두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대사 역시 건전하게 바꾸어 놓았는데, 사실 원래 소스를 모두 가지고 있었으나 공식적인 패치에서는 대중의 눈을 고려해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 '사과나무' 팀은 원래의 엔딩을 유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패치를 인터넷에 퍼트렸고, 게이머들은 이후 편안하게 원래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위에서 소개한 게임과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파일 하나만 지우면 곧바로 청소년 이용불가가 되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역시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준 게임 중 하나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프린세스메이커는 특유의 육성요소와 멀티 엔딩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dd.lbx' 이른바 'DD파일'로 또 다른 추억을 안겨주었다.
캐릭터의 성장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옷이 달라지는 프린세스메이커의 특성상 댜앙한 옷을 구매해 이를 갈아입히는 것은 게임의 또 다른 재미 요소 중 하나였다. 문제는 설치 파일 중 DD파일을 지우면 '프린세스'의 옷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 이 소식을 접한 게이머들은 DD파일을 지워보기 시작했고, '전체 연령가' 게임이 순식간에 '청소년 이용불가'로 변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물론 이에 따른 폐해도 많았다. 한번 지운 파일은 다시 복구할 수 없어 게임을 완전히 지웠다 다시 설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파일을 잘못 지워 순식간에 게임이 날아가는 대참사를 겪기도 했다. 이에 프린세스 메이커의 개발자 '아카이 타카미'가 밝히기도 했듯 이 DD파일은 게임을 제작하던 중 발생한 버그였으며, 원작자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비록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추억의 게임으로 자리잡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여성을 미행하는 독특한 컨셉의 게임 '미행'도 국내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다. 19세 전문 게임 개발사 '일루젼'에서 개발한 '미행'은 여성에게 들키지 않고 미행하여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엔딩을 보는 한마디로 '사람의 묘한 감정을 자극하는' 게임이었다.
더욱이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기던 자료 공유 사이트들과 맞물리면서 미행은 당시 게이머들에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 또한 높아져 자료 게시판에 성인 게임을 따로 배치하는 등 '미행'은 이들 사이트들이 자율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게임이기도 했다.
위에서 소개한 게임들은 게임을 접해보지 못한 이전 세대 어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순히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유해성으로 가득찬 게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를 살아간 게이머들에게 이들 게임은 컴퓨터의 명령어를 외우고, 친구들 간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혈기왕성한 젊음의 배출구 혹은 또 다른 세상을 탐험하는 판타지를 선사한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매개체로 다가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과연 이 게임들이 훗날 단순한 유해성 논란에서 벗어나 꼬집을 것은 꼬집고 존중받을 부분은 존중받는 하나의 장르로 평가 받을 수 있을까? 게이머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문구를 다시 한번 상기하며 이 글을 마친다.
“게임은 게임일 뿐 따라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