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짝퉁 논란에 무관심한 한국 게이머들
[지난해에 본지에서는 50부에 이르는 장기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뤄왔다. 이후에도 본지에서는 한국 게임사들의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게임산업 위기보고서'를 비정기 연재하기로 했다]
게임산업이 위기라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언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도 여러 가지가 지목되고는 하지만 크게 요약하면 두 가지가 원인으로 꼽힌다.
첫 손가락에는 게임산업에 대해 규제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는 정부의 정책이 꼽힐 것이며, 외산게임 특히 모바일게임 시장이 대두된 이후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게임의 한국 시장에 대한 강력한 공세가 그 다음으로 언급될 것이다. 여기에 게이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 하고 ‘대세’라 불리는 흐름에 편승하는 게임사들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모두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이며,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유독 언급되지 않는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책임을 분명히 갖고 있는 존재. 게임산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 바로 게이머들이다.
다짜고짜 게이머들이 국내 게임산업 위기의 원인이라고 말하면 게이머들은 ‘너희들이 다 망쳐놓고 이제는 우리 핑계를 대는 것이냐?’ 라고 대꾸할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요소들은 잘못한 게 없고 실상 게이머들이 국내 게임산업 위기 원인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산업 발전을 저해한 다른 요소들만큼이나 게이머들 역시 게임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게임업계에 끊이지 않고 지적되고 있는 표절문제는 게이머들이 상당 부분 자초한 면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표절문제가 불거진 게임 중에 게임의 동시접속자 수가 줄어들거나, 매출순위가 하락하는 결과를 겪은 게임이 있는지 말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이러한 수치가 하락하는 경우는 있지만, 표절 시비가 불거졌을 때 업체에 타격을 줄만한 반응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표절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지적을 하지만,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게임을 즐긴다는 이야기다. 표절을 지적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결국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업체들이 표절시비가 불거졌을 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다. 냉정한 현실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까지 국내 게임산업에서 불거진 표절시비의 추이를 살펴보면 한국 게이머들은 ‘짝퉁에 관대하다’는 결론을 내릴만하다. 실제로 표절시비를 겪었던 게임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선데이토즈의 애니팡, 애니팡2, 넷마블게임즈의 다함께차차차 등은 표절시비를 겪었던 게임이지만 모두 국내 게임시장 정상을 맛본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이 실제로 표절을 했다, 아니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기사의 주제가 아니니 차치하자. 중요한 것은 게임의 표절논란이 불거지더라도 게임업체가 게이머들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의 행동을 게이머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한국 게이머들 절대다수는 ‘짝퉁논란에 무관심하다’고 할만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게이머들이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런 현상에서 출발한다. 게이머들이 표절논란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일 수록 게임사들은 별다른 기획 없이 기존에 성공한 게임을 아무렇지 않게 배낄 수 있다.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려운 길을 택할 게임사는 그리 많지 않다.
가뜩이나 게임의 표절관련 법안이 뚜렷하게 없는 데다가, 있는 법안마저도 실효성의 의문스러운 상황. 이렇다보니 이러한 '카피캣'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게이머들의 여론 말고는 없다고 해도 무관한데 정작 절대 다수의 게이머들은 나만 재미있으면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게임사들은 게이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표절시비는 뿌리 뽑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한국게임의 전반적인 기획력 부족을 야기했다. 특출난 것을 기획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형태로 시장이 커졌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한국게임이 중국게임에 비해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자평하던 부분인 기획력의 정체를 불러왔고, 결국 최근 중국게임사들이 기획력에서도 한국게임사를 뛰어넘었다고 자신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물론 한국 게임산업의 성정저하를 야기한 것이 오롯이 게이머들의 탓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중국게임의 빠른 발전과 국내 게임사들의 방심. 국가에서 주도하는 규제정책이 더 큰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악재가 산재해 있다고 해서 게이머들의 탓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팬의 지지가 없으면 스타도 없다고 하듯이 게이머의 지지가 없으면 성공한 게임도 성립할 수가 없다. 게이머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체를 넘어 콘텐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동시접속자 수, 접속 유지율 등의 지표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게임사들은 게이머들의 반응에 촉각을 기울인다. 게이머들은 한국 게임산업을 이끌어 갈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한 때 한국 게이머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깐깐한 시선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러한 시선은 상당히 무뎌진 듯하다. 깐깐함 을 잃은 게이머들을 게임사들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게이머들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에게 게임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발휘할 때, 더욱 발전된 게임을 게이머들 스스로가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