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매력에 홀렸는가, 실사 그래픽 게임의 흥망성쇠
눈에 보이는 광경을 담기 위해서 발명된 사진, 사람이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등장한 영상기록에는 사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매력이 담겼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을 더 키우기 위해 여러 도전을 감행했다. 그 와중에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체코 영화 '키노오토맷'이 1966년에 공개됐다. 훗날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의 원류가 되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물론 '키노오토맷'의 등장이 곧장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의 출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만 나왔을 뿐 이를 게임으로 구현할만한 기술이 당시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게임 개발자들이 주목하는 계기가 되기는 충분했다.
이 예로 1974년에 출시된 아케이드용 슈팅게임 '와일드 건맨'의 사진을 향해 총을 쏘는 방식, 1983 출시 돼 배경 화면의 영상을 보고 비행기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은 아케이드용 슈팅게임 '아스트론 벨트' 등은 이러한 계기로 개발된 대표적인 초창기 실사 그래픽 게임들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당시 기준으로 대용량 저장 매체인 CD-ROM이 보급돼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트 그래픽보다 저장 용량이 많이 필요한 실사 그래픽을 게임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실사 그래픽과 더불어 실제 배우들의 음성까지 게임에 수록되는 양상도 역시 이 때부터 보편화됐다.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적인 묘사였다. 당시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들은 여타 게임보다 세밀한 표현을 자랑했고, 슈팅게임, 어드벤처게임 장르에서 그 장점이 잘 나타났다. 그 결과 1993년 실사 영상을 향해 총을 쏘는 세가CD용 슈팅게임 '그라운드 제로: 텍사스'부터 1996년 PC용 어드벤처게임 '하베스터'처럼 인물 그래픽 전부를 사진으로 묘사하는 경우까지 실사 그래픽을 활용하기 위한 여러 실험이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게임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등장인물을 사진으로 묘사한 슈퍼패미컴용 어드벤처게임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플레이 화면이 모두 사진과 영상으로 진행되는 플레이스테이션용 어드벤처게임 '유라시아 익스프레스 살인사건'를 비롯해 다수의 실사 기반 게임들이 일본 개발사를 통해 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사의 매력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진 않았다. 기존의 2D 그래픽보다 실감 나는 묘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자극적인 연출로 인해 게이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양날의 검으로 변한 것이다. 1992년 아케이드용 대전격투게임 '모탈컴뱃'과 세가CD용 어드벤처게임 '나이트 트랩'은 이러한 논란을 불거지게 만든 대표적인 게임으로 꼽힌다.
'모탈컴뱃'은 실사 기반의 캐릭터 그래픽을 활용한 동시에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페이탈리티' 연출을 도입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나이트 트랩'의 경우 게임 내 등장하는 속옷 차림의 소녀들이 폭행당하는 영상이 여과 없이 나타나 문제가 됐다. 결국 미국 상원 의회의 발언을 비롯해 게임 심의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됐고, 북미지역 게임 자율심의기구인 'ESRB'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또한, 'ESRB' 설립 이후에도 PC용 어드벤처게임 '보이어' 등 실사 그래픽으로 자극적인 연출을 사용한 게임들이 이어져 2015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개발사와 심의기관의 알력다툼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다수의 영상이 들어간 것으로도 유명한 시뮬레이션게임 '윙커맨더 5'를 끝으로, 2000년대 이후엔 실사 그래픽 게임의 쇠퇴기가 찾아온다. 3D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적은 개발비로도 충분히 사실적인 묘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묘사란 장점을 뺏긴 실사 그래픽에게 남은 것은 게임에 맞춰 영상과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 개발 난이도, 배우 섭외 과정에서 늘어나는 개발비, 저장 용량을 많이 차지해 상대적으로 짧아지는 플레이 타임 등의 단점뿐이었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3, 엑스박스360 출시 후 HD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이 늘어나면서 실사 그래픽을 사용한 게임은 Wii용 어드벤처게임 '428: 봉쇄된 시부야에서'를 비롯해 극소수만 남기에 이른다.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은 어찌 보면 '구시대의 유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게임의 몰입도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실사 그래픽 게임을 접했던 게임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쇼베 크리에이티브가 개발하고 네오아레나에서 서비스 중인 어드벤처 모바일게임 '도시를 품다 for Kakao'(이하 '도시를 품다')는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게임이다. '도시를 품다'에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전부 등신대 사진으로 등장하며, 각 장면의 사이엔 약 1분 내외의 영상이 나타난다. 챕터에 따라 타이밍을 맞춰 터치하는 미니게임이나 주변을 조사하는 탐문 파트도 등장하는 등 게이머는 '도시를 품다'에서 과거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어드벤처 게임들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실사 그래픽만으로 그래픽을 묘사한 모바일게임은 '도시를 품다'가 국내 최초이며, 이것은 기존 모바일게임과 차별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실사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은 그렇지 않은 게임에 비해 개발비, 노력,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도시를 품다'의 흥행 성적에 따라 실사 그래픽을 쓴 모바일 게임이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