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티넘버나인, 안일한 준비와 지나친 기대가 결합한 안타까운 현실
분명 엄청난 게임이었어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개발자 중 한명인 이나후네 케이지가 캡콤에서 독립해서 새롭게 만드는,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게임인 록맨의 정신적인 후속작이라는데 어느 누가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캡콤이 사실상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록맨의 부활을 간절히 원하던 게이머들은 이나후네 케이지가 지난 2013년 8월에 신작 마이티 넘버 나인을 발표하고 킥스타터로 개발비 모금을 시작하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게이머들은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라는 이름을 믿고 자신들의 지갑을 열었으며, 첫 도달 목표였던 90만 달러는 불과 3일만에, 최종적으로는 무려 400만 달러(약 45억)에 근접한 금액이 모였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 구입 비용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과한 금액인 10만원, 20만원이 넘는 금액까지 후원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으니 마이티넘버나인에 대한 기대치와 이나후네 케이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기자의 지인 중에도 10만원이 넘는 금액을 후원한 사람이 제법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중간에 공개된 영상들은 킥스타스터를 시작할 때 보여줬던 컨셉 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성우 추가, 콘텐츠 추가 개발 명목으로 후원 금액을 추가로 모집하면서 출시일도 계속 미뤄졌다. 그러기를 3년. 이러다가 게임이 안 나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커질 때쯤 드디어 마이티 넘버 나인이 출시됐다. 그것도 PS4, PS3, PC, PS VITA 등 멀티 플랫폼이고 저렴한 가격에 한글화까지 된 상태로. 단지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기대만큼의 게임이 아니었다는 것 뿐이다.
마이티 넘버 나인의 초기 컨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거 록맨을 세련되게 바꾼 듯한 느낌의 주인공 캐릭터(단지 팔에 로켓포가 달렸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와 게이머의 순발력을 시험하는 2D 횡스크롤 맵, 그리고 적을 공격해 약화시킨 후 대쉬를 통해 적의 능력을 흡수해서 사용한다는 컨셉의 게임 플레이, 개성 있게 디자인된 8명의 보스 로봇은 록맨의 부활을 간절히 원하는 게이머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록맨을 계승하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봐도 어이가 없는 그래픽이 모든 것을 망쳤다. 아무리 복고풍 횡스크롤 게임이라고 하더라고 40억이 넘는 금액이 투자된 게임인데, 과거 PS2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벤트 컷신에서는 캐릭터들이 입도 뻥긋 하지 않고, 맵은 PS VITA용으로 만든 그래픽을 억지로 늘려 놓은 듯한 느낌이다. 폭발씬은 너무 조잡해서 2016년에 나온 게임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페페로니 피자를 연상케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PS4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에서는 프레임 드랍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라스트오브어스와 언차티드4를 돌릴 수 있는 그 PS4에서도 말이다.
그래픽 문제가 워낙 심각해서 많이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레벨 디자인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과거 록맨의 레벨 디자인은 어렵기로 유명했지만 그래도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이었다면, 마이티 넘버 나인의 레벨 디자인은 도전의식이 아니라 짜증이 밀려온다.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매력 포인트는 계속 죽으면서 실수를 줄여가고, 결국 완벽히 계산된 실수 없는 플레이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이다. 과거 록맨은 초반에는 스테이지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낮은 난이도의 장애물로 연습을 시키고, 후반부에 그것과 관련된 좀 더 높은 난이도의 장애물이 등장해서 이를 클리어했을 때 자신의 향상된 실력에 뿌듯해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마이티넘버나인은 이런 선행 학습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갑작스런 화면 이동과 예측하기 힘든 장애물의 결합을 통해 첫 시도에서는 무조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죽으면서 배우는 것이 이 장르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알고 죽는 것과 모르고 죽는 것은 천지차이다. 전자는 자신의 부족한 순발력을 탓하면서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후자는 왜 맵을 이 따위로 만들었냐며 패드를 집어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과거 록맨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리쉬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기자 역시 유튜브에서 고수들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같은 게임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런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게임들은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게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튜토리얼 등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해 두는데, 마이티 넘버 나인은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게이머가 스스로 알아내야만 하도록 만들어 뒀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생각하는 복고가 무엇인지, 록맨의 어떤 점을 계승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봤을 때는 그냥 과거 게임의 어쩔 수 없는 불친절함을 매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
이나후네 케이지라는 이름, 록맨의 정신적 후계자라는 선전, 킥스타터에서는 순위를 다투는 4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개발 후원금. 이런 점을 걷어내고 나면 이 게임은 그냥 PS VITA 같은 휴대용 게임기에 어울리는 복고풍의 흔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다. 그냥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라고 등장했다면 지금보다 관심을 덜 받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 게임은 모금액이 첫 목표였던 90만 달러였을 때 멈췄어야 했다. 게이머들의 엄청난 관심과 빠르게 늘어나는 후원액을 보면서 욕심이 생겼겠지만, 준비한 아이디어의 깊이는 늘어나는 욕심의 깊이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요즘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나 웨스트랜드2 같은 성공작들이 나오면서 킥스타터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마이티 넘버 나인 같은 사례가 나온다면 킥스타터 시장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개발사들이 게임을 출시할 때 단계별 허들을 적용하는 것처럼 킥스타터도 후원자들이 개발 진행도를 중간에 확인하면서 후원을 철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참고로 윙커맨더, 프리랜서 개발자로 유명한 크리스 로버츠가 준비중인 스타 시티즌은 후원금으로 1억 달러(약 1100억)가 넘는 금액을 모금하면서 킥스타터 최고 기록을 갱신 중이다. 부디 이 게임은 마이티 넘버 나인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