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을 위한 게임인데.. 왜 이리 답답할까? '박앵귀: 바람의 장'
게임명: 박앵귀: 바람의 장
사용기기: 플레이스테이션 비타(PS 비타)
필자명: 구석지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앵귀' 시리즈는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다. 2008년 9월 첫 시리즈를 PS2로 출시한 이후 총 8개의 시리즈 및 스핀오프, 이식작 등이 출시됐다.
여기에 본편의 팬 디스크 개념의 '수상록'이 총 4개의 플랫폼으로 출시됐고 본편의 프리퀄인 여명록이 총 5개의 플랫폼으로 등장해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드라마 CD, 소설, 음악 CD, 기타 서적, 코믹스, 그리고 심지어 연극 및 뮤지컬 등으로도 확산됐다. 일본 내에서 박앵귀 시리즈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일각에서는 여성향 게임 시리즈의 대표적인 '우려먹기' 사례로 지적하며 혹평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리즈의 팬들은 꾸준히 출시되고 있는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눈치다. 어쨌든 마니아 층이 상당한 이 게임이 오랜 시간이 흘러 국내 현지화돼 정식 출시됐다.
여성향 게임 자체가 국내 정식 출시, 그것도 현지화돼 나오는 경우가 워낙 없다 보니 박앵귀: 바람의 장의 출시 자체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일본 내 인기와 달리 소재가 가진 독특함 때문에 국내에서 일본과 흡사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게임은 전형적인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에도 시절 신선조를 활용, 가상의 역사 속에서 활약하는 검객들과 그를 옆에서 돕는 주인공, 유키무라 치즈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난방의(서양 의학기술)을 배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인물로 묘사된다.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교토로 온 주인공은 우연히 신선조의 일원을 보게 되고 기묘한 인연으로 인해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게임은 뒤틀린 시대 속에서 이상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검객과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치즈루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상 역사를 활용한 게임들은 대 부분 새로운 이야기 전개나 원작과 다른 결말을 제시하지만 이 작품은 철저하게 역사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치즈루는 이들을 바라보고 지켜보며 그들과 함께 역사의 결말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그래서 일본 역사 특히 에도 시절 신선조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지루함' 그 자체가 된다. 역사 이야기가 게임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 용어도 대거 등장하며 왜 신선조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등을 꽤나 상세하게 풀어준다.
어떻게 보면 역사 게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이케다야 사건이나 아부라코지 사건 등 신선조 관련 사건 등은 정말 상세하게 나온다. 물론 나름의 장점은 있지만 이 역사를 잘 모르면 이 같은 전개가 그리 답답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카즈키요네가 담당한 일러스트는 당연히 좋다. 여성향 일러스트와 남성향 일러스트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남성 게이머라면 다소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주요 에피소드의 이벤트 신은 남자 입장에서도 단연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이와 성우들의 연계도 최고다. 경력이 긴 베터랑 성우들이 대거 참여한 이 작품의 수준은 정말 최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눈을 감고 듣기만 해도 (못 알아 듣는 일본어라도) 감정선까지 느껴질 정도다. 시리즈가 왜 인기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게임 진행은 익숙하고 흔한 방식이다. 대화를 읽고 선택지가 나오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결말로 향해 간다는 것. 선택문에 따라 호감도가 오르는 캐릭터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검객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선 다양한 시도가 필수다.
총 12명의 검객이 등장하며 각각 3개의 엔딩이 존재, 총 36개의 각각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시리즈가 오래 시기 이어지며 캐릭터나 엔딩, 그리고 전개 과정의 즐거움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이벤트 신도 충실하고 보이스는 즐겁고 다양한 시도로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
편의성도 매우 뛰어나다. 단순히 대사를 쉽게 읽고 넘기는 방식 외에도 빠른 엔딩을 위해 선택지까지 스킵하는 기능이나 실수를 최소화 하기 위한 간이 세이브, 로드 기능은 매우 편리하다. 이 기능 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엔딩까지 큰 시간 쓰지 않고 달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한 번 엔딩까지 간 후에는 필요한 장부터 다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행군록' 기능과 음악, 영상, 그림 등을 따로 나눠 즐길 수 있는 '감상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언어 및 사건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소사전 등이 준비돼 있다.
게임은 빠져들면 능숙하게 사건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공략하게 해준다. 쉽게 말하면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편의성과 잘 다듬어진 캐릭터, 멋진 일러스트와 성우 연기, 그리고 충실한 역사 요소 등으로 인해 입문하는 입장의 게이머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이다.
단점을 찾자면 장르 특유의 답답한 전개가 아닌가 싶다. 해당 장르를 즐기는 법에 익숙한 게이머가 아니면 매력적을 찾기가 어렵다. 엔딩이 많지만 스킵 같은 기능이 없었다면 결코 쉬운 부분은 아니며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 이상의 이해가 없을 경우 지루함이 매우 커진다.
그리고 선택지를 고르는 주인공(게이머) 입장의 치즈루는 자신의 생각을 자주 말하는 '오센'과 달리 어떻게 보면 방관 하는, 아니면 역사를 읽어주는 여자 같은 느낌은 조금 아쉽다. 남성 게이머 입장이라면 치즈루와 오센의 모습에 위안을 얻을 수 있지만 왠지 답답한 주인공의 행보는 게임의 재미를 다소 떨어뜨리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