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포츠 게임은 연금이 아니다
전세계 WWE 팬들의 유일한 선택지인 WWE 2K 시리즈가 올해는 나오지 않는다.
최근 2K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WWE 2K 시리즈 후속작을 발매하지 않으며, 대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PPV 시리즈인 WWE 배틀그라운드에서 착안한 신작 WWE 2K 배틀그라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WWE 2K 배틀그라운드는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더락, 존시나 등 WWE 유명 선수들이 만화 스타일의 캐릭터로 등장하며, 상대를 잡아 악어에게 던지거나, 불 붙은 펀치를 날리는 등 캐주얼한 스타일의 게임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팬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색다른 시도는 언제나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이번 신작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시리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본가가 점점 쇠퇴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변화구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WWE 시리즈를 지켜온 유크스와 빠지고, 비주얼 콘셉츠가 단독으로 개발한 WWE 2K20이 엄청난 버그와 어설픈 콘텐츠로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은 상황이다보니, 정식 넘버링 후속작을 포기하고, 외전을 선택한 2K의 결정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매년 퇴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래도 유일한 WWE 게임이라는 것 때문에 꾸준히 구매해준 팬들의 뒤통수를 때렸으니 말이다. 1년을 쉬더라도 다음 작품이 제대로 나오기만 한다면 다행이지만, WWE 2K20의 상태를 보면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WWE 2K 시리즈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게임 전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확실한 팬층 덕분에 매년 로스터만 바꿔도 출시해도 어느 정도 판매량이 나오다보니, 시리즈가 오래될수록 점점 더 게임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쟁작이 있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WWE는 2K 시리즈 밖에 없어서 더 빨리 터진 것 뿐이다.
농구 게임 열풍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EA의 NBA 라이브 시리즈를 무찌르고, 농구 게임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NBA 2K 시리즈만 봐도 그렇다. 한 때 더 이상의 농구 게임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들의 극찬이 이어졌지만, 요즘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실제 농구와 흡사한 게임 플레이의 매력은 여전하나, 신작이 나와도 전작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며, 날이 갈수록 마이커리어, 마이팀 모드 등 추가 결제 부담만 커지고 있다. NBA 라이브 시리즈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게 되다보니 배짱 장사한다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NBA 라이브 시리즈가 예전 모습을 되찾아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지만,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진 상황이라,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NBA 라이브 19까지는 발매됐지만, NBA 라이브 20은 개발이 취소됐고, 아직까지 후속작도 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축구는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EA의 피파 시리즈가 우세이긴 하나, 코나미의 위닝 시리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경쟁하면서 게임성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니, 팬들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초기에 시장을 지배한 것은 먼저 나온 피파 시리즈였지만, 좀 더 사실적인 플레이를 들고 나온 위닝 시리즈가 시장을 뒤집었으며, 절치부심하고 엔진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피파 시리즈가 11부터 위닝 시리즈를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다만, 라이선스를 앞세운 피파 시리즈의 우위가 지속되면서, 확률형 카드 뽑기를 통한 과금 유도가 갈수록 심해지다보니,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는 하다.
야구는 여러 회사들이 서로 경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지만, 현재는 MLB 더쇼의 독주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인기 종목인 만큼 트리플 베이스볼, MVP 베이스볼, 하이히트베이스볼, MLB 2K, MLB 더쇼 등 여러 시리즈가 등장했지만, EA와 2K의 라이선스 분쟁으로 인해 EA가 강제로 철수 당하고(EA를 제외한 모든 개발사에게 라이선스를 열어줬다), 2K 마저도 수익률 악화로 MLB 시리즈를 포기하면서 MLB 더쇼만 남았다. MLB 사무국에서 직접 제작한 R.B.I. 베이스볼 시리즈가 있기는 하나, 그냥 XBOX에서도 야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해야 할 정도의 수준이다.
더쇼 시리즈가 여전히 굳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야구팬들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더쇼 개발사가 소니 산하 개발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 보유자들만 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더쇼 시리즈 역시 경쟁없이 홀로 독주하고 있다보니, 이전 작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생기고 있다.
EA와 2K의 처절한 라이선스 분쟁이 끝나면서 이제는 EA도 야구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EA가 MLB 더쇼가 이미 장악해버린 야구 게임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던지는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더쇼 대신 R.B.I. 베이스볼 시리즈만 보고 있는 XBOX 이용자들은 EA의 도전이 간절하겠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차세대 게임기가 올해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와 달리 규칙과 세계관을 바꿀 수 없는 스포츠 게임의 특성상 그래픽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성능이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차세대 게임기에서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과거 PS3, XBOX360에서 PS4, XBOX ONE으로 넘어갈 때는 720P 해상도에서 1080P 해상도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으니, 4K 해상도로 진화하는 차세대 게임기에서는 또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최근 몇 년간 로스터만 바뀌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스포츠 게임들이, 차세대 게임기에서는 다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