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이니까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 현실은 더하네
2016년 청룡영화제를 휩쓸며 엄청난 화제가 된 영화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의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엄청난 인기를 얻은 작품인 만큼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지만, 현실 보다 더한 시나리오를 쓸 자신이 없어 후속작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이병헌, 조승우, 이경영 등 명배우들의 열연만큼이나 정치와 재벌, 부패한 언론의 결탁을 그린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빛났던 작품이지만,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실제 현실은 그보다 더 참혹했다.
영화는 그나마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지만, 비현실적인 세계를 다룬 게임조차도 최근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게이머들조차도 “아무리 게임이지만, 이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전염병 사태로 전세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오염된 피 사건을 보면 최근 벌어진 모 교회 집회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그대로 재현된 듯 하다.
오염된 피는 특정 던전에서 보스가 거는 저주로, 던전을 클리어하면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지만, 사냥꾼이 소환한 야수는 저주에서 풀리지 않는 버그가 발생하면서, 저주가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그리고 던전에서 대도시로 빠르게 확산된 사건이다.
당시 오염된 피 사태가 확산되자, 일부는 감염된 캐릭터들이 죽지 않게 계속 힐을 해주고, 지역을 차단시켜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고, 일부 감염 캐릭터들은 자기만 당할 수 없다고, 일부러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키려는 행동을 보였다.
또한, 자연 회복이 되는 NPC들은 무증상 감염자가 되어 감염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며, 일반 회복제를 감염 치료제라고 속이고 판매하는 몰지각한 이들까지 등장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오염된 피 사건은 실제 사람이 죽지 않은 게임속 일이니까, 지루함을 느낀 이들의 일탈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갔다지만, 코로나19 감염됐다고, 다른 이를 물어뜯고, 치료진에게 폭행까지 가하는 사람이 실제로 등장한 것을 보면, 일시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재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최근 유명한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허지웅이 라디오 방송 오프닝에서 이번 사태를 비판한 글도 화제가 되고 있다.
“언젠가 쇼핑몰에 갇혀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게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등장인물이 밖으로 나간 자기 개를 구해야 한다며 함께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신경쓰지 않고 대문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쇼핑몰은 좀비로 가득차 버리고 맙니다. 참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 우리는 수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경찰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코로나에 걸리라며 침을 뱉고 밥을 나누어 먹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은 방역당국에 협조하지 말라는 문자를 돌리고 전염병은 가짜라고 말하고 혹은 누가 전염병을 고의로 교회에 뿌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게임은 캡콤이 개발한 좀비 게임 데드라이징으로, 출시 당시에도 개발진들이 마약 먹고 만든 게임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로 황당한 게임성으로 화제가 된 게임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좀비를 코로나19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집회에 참석하고, 치료진들을 피해 도망치면서까지 일부러 공공 장소를 활보하는 이들의 정신 상태는 게임 속 캐릭터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