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신굽신' 게이머들, 배짱 튕기는 게임업체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냉장고가 광고와는 다른 성능을 보인다면? 휴가를 맞아 찾은 여행지의 리조트의 시설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 하고 서비스 역시 불친절하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해당 업체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심한 경우는 환불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소비자들이 저런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 행동을 정도가 지나친 행동이라 칭하는 경우 역시 없을 것이다.

똑같은 돈을 지불한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거나, 당초 약속과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과거에 비해 소득이 올라가고, 소비자 윤리 의식이 까다로워진 요즘 세상에 소비자를 저렇게 대하는 업체는 여론의 혹독한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심지어 해외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을 향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소식도 들려 올만큼, 최근의 소비자들은 과거에 비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비디오게임 시장은 이러한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할 소비자, 즉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권리보다는 오히려 업체의 입장을 앞장 서서 대변해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할 정도이다.

한국의 비디오게임 시장은 매우 특수하다는 이야기는 게이머들 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이는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한국의 비디오게임 시장의 크기는 매우 작으며, 불법복제와 중고거래의 성행으로 발전 모멘텀마저 작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일까? 국내의 비디오게이머들은 자신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스스로가 감수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소비자가 스스로 헤아려 이를 감수해주려는 모습은 해외의 게임시장까지 갈 것도 없이, 국내의 다른 분야에서도 보기 힘든 기이한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돕는 것은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분명한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친절, 배려가 계속될 경우 이러한 점을 당연시 여기고 이를 악용하는 업체들이 생겨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국내 비디오게임 업계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났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EA코리아는 배틀필드 3 정식 버전의 판매를 위해 예약판매까지 실시했으면서, 게임의 출시에 앞서 실시되는 베타 테스트에서는 한국을 배제하고 테스트를 진행해 게이머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출시 이전부터 큰 기대를 받은 PS3, Xbox360용 축구게임 피파12의 예약판매를 실시하면서 약속했던 것과는 다른 예약 특전을 사전 공지 없이 발송하고 뒤늦은 사과 공지 하나만을 게시해 게이머들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도 게이머들이 “한글화를 해 주니까”, “게임이 재미있으니까” 등의 이유를 대며 업체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업체 역시 이러한 게이머들의 호의를 당연시 여긴 탓인지 이러한 일을 벌이고도 이렇다 할 사과나 보상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의 행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게이머들을 소비자가 아닌 봉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야 소비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으며, 게임 판매량에도 지장이 없으니 굳이 힘써서 이들의 편의를 봐줘야 할 이유는 없다. 때문에 게이머들이 업체의 입장을 스스로 대변 할수록, 자신들이 정당히 누려야 할 권리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게이머 스스로가 자신들의 입지를 깎아내리는 형국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업계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게이머들의 심정은 국내 비디오게임 업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하지만 게임업체가 이러한 게이머들의 심정을 악용하는 한, 국내 비디오게임 시장의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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