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먹이사슬을 정복하다, 프로토타입 2

실제 도시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처럼 현실적이고 광활하며 유기적인 구역을 하나로 묶은 배경, 수퍼 히어로들이 부럽지 않은 강력한 초능력으로 펼치는 폭발적인 액션, 때로는 극한의 제한 상황 속에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다른 눈을 피해 목표를 달성하는 스릴 넘치는 잠입 및 첩보 활동, 수많은 지령과 단서를 수집하고 세계관을 파악해나가면서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는 탐미적 유흥, 주위의 사물들을 배경이 아닌 도구로 마음껏 사용하는 자유도. 어느 것 하나 게임 안에서 제대로 구현하기만 한다면 흥행에 성공할 콘텐츠들이다. 이미 저 컨셉에 맞춰 대성공한 게임들이 증거로서 버티고 있고.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저 흥행 요소들을 전부 구현하려는 대담한, 어떤 의미로는 발칙하기까지 한 도전을 한 게임이 있었다. 그것이 2009년 액티비전이 제작한 프로토타입이었다.

프로토타입2
프로토타입2

바이러스에 감염 당해 몸이 변이를 일으켜 초인적인 힘을 얻은 프로토타입의 주인공. 게이머는 이 주인공을 조작해 바이러스의 능력으로 몸을 변화시키거나 다른 생명체를 흡수하여 그 생명체의 능력과 기억을 얻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경험치로 주인공이 성장해 새로운 바이러스 능력으로 무장하는 재미와 이렇게 성장한 캐릭터를 이용해 통짜로 구현한 맨하탄 속에서 활보하는 쾌감이 바로 프로토타입의 자랑거리. 나아가 앞서 설명한 여러 흥행 컨셉들을 적절하게 구현하는데 성공하여 많은 게이머들의 찬사를 받았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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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토타입이 후속작 프로토타입2로 돌아왔다. 전작 프로토타입의 주인공이 프로토타입2 주인공 가족의 원수로 등장하는 파격적인 시작부터 오픈 월드를 기반으로 한 더 넓어진 배경, 더 다양해진 능력들, 전작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설정들과 스토리를 준비해서. 대작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은 프로토타입이었기에 전작을 계승할 프로토타입2 역시 발매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발매 후, 프로토타입2는 얼마나 게이머들의 기대를 만족했을까?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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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전자는 이제 제 겁니다

프로토타입2가 가장 자랑할 요소는 역시 압도적인 액션 묘사다. 전작 프로토타입의 주인공 알렉스 머서처럼 프로토타입2의 주인공 제임스 헬러 역시 바이러스에 의해 몸이 변이 당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전작을 뛰어넘는 연출들이 게이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언뜻 보기엔 바이러스에 의해 기형적으로 변하는 주인공의 몸이 징그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 신체가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선보이면서 적들을 묵사발 내는 순간 조금 이상한 외형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능력으로 다른 생명체의 능력들을 흡수하며 자유자재로 변하는 제임스 헬러의 신체들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활약상은 그만큼 독보적이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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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제임스 힐러가 직접 사용하는 액션은 다섯 종류(클로, 촉수, 해머피스트, 블레이드, 휩피스트)에 한 기술마다 콤보 공격과 특수 공격만 있으므로 사실상 열 가지 뿐이라 액션 게임치고는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직접 플레이하면서 기술들을 사용하다보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연출, 추풍낙엽 쓰러지는 적들의 모습에 시선이 쏠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액션게임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가슴속 깊이 후련한 액션이지 액션의 가짓수가 아니니까. 여기에 소환수를 부르거나 방어하는 동시에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등의 기술 응용이 더해지면 무궁무진한 조합으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액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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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임스 힐러 본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는 재미 역시 수준급이다. 위협적인 APC나 헬기, 탱크 등을 탈취하거나 무기만 뜯어내기, 주위의 시설물들을 통째로 뽑아 투척 무기로 쓰는 등 도구를 사용하는 전투 역시 게이머를 만족시기에 충분하다. 비록 바이러스 능력을 이용한 액션만큼 독보적인 요소는 없지만, 적의 화기를 이용하거나 시설로 전투를 벌이는 것 다양한 전투 액션을 추구하는 프로토타입2에 잘 어울린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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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파괴적인 액션이 아닌 은밀한 잠입 액션에선 절제된 행동만으로 적의 눈을 속이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게이머에게 불리한 상황 속에서 필요 최소의 행동만으로 적들을 무력화 시키는 재미란 도시 한복판에서 마구 날뛸 때는 알기 힘든 달성감이 담긴 덕분이다. 굳이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도시 전체가 바이러스 탐지기와 정찰 인원들을 풀어서 제임스 힐러를 수색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긴장감을 조성하여 게이머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의 눈을 피할 것인지, 대놓고 활보하여 도발할 것인지 선택권이 게이머에게 주어지고 어느 쪽이든 재미있고 공평한 난이도를 부여했단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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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이고 매우 재미있는 영화라도 매일 보면 지루한 법이다. 제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도 언젠가 적응해버려서 마지막엔 느끼지 못 할 만큼 무감각해지니 말이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의 특성상 주요 컨셉을 유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컨셉 유지가 반복 작업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많은 게임들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따라서 이 포장과 요령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게이머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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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프로토타입2는 일절 요령도 포장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당당하게 자신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또 보여줄 뿐. 당연히 게이머는 그런 프로토타입2의 게임 내용을 보고 또 본다. 파괴라면 파괴, 잠입이라면 잠입, 스토리 진행이라면 진행 모두 겉모습만 다르지 게이머가 하는 일이 바뀌지 않는다. 그것도 액션 게임의 진행 방식을 고수하면서. 오픈 월드의 장점인 자유도 자체는 충분한데 그 자유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동소이하니 오픈 월드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프로토타입2는 몇 번을 반복해도 재미있는 게임이니 문제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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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정직한 돌 직구를 던진 이상 프로토타입2의 가치는 게이머들이 직접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고민 없이 마구 날뛰는 액션을 좋아하고 몇 번이고 잠입액션에 집중할 수 있는 게이머라면 프로토타입2는 게임 내내 흥분의 도가니로 가득 찬 최고의 명작이겠고, 게임 안에서 다양한 체험을 바라거나 여러 가지 묘사와 각양각색의 게임 요소를 찾는 게이머라면 프로토타입2는 그저 단순하기만 한 액션 게임에 불과하다. 한결같은 일관성과 염치없는 뻔뻔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프로토타입2을 보고 있자면 호불호와 별개로 보기 드문 저 자신감과 기개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프로토타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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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파괴! 이 다음은?

게이머의 호불호를 상관하지 않고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걷는 프로토타입2. 바이러스가 만연한 혼돈의 사회 속에서 초인적 능력으로 활보하는 인상 깊은 활약에 토를 달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이게 처음이자 끝이라서 상업성이 중요한 게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게이머들을 끌어 모으려는 시도 대신 제 갈길 가면서 알아서 게이머들이 빠져들도록 저 투박한 태도가 밉지 않은 건 프로토타입2가 이래도 괜찮은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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