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한국 게임산업, 길고 긴 규제의 역사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3부 : 불합리한 정부 규제와 영향 ]
6화. 한국 게임산업, 길고 긴 규제의 역사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규제(規制). ‘규칙이나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음’이라는 뜻의 단어다. 여러모로 친숙한 이 단어는 특히 게임업계 종사자들과 게이머들에게 무척이나 떼어내고 싶지만 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됐다. 각종 규제로 얼룩진 국내 게임산업의 현실이다.

근 몇 년 사이에 ‘셧다운제’와 몇몇 국회의원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게임규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것이 ‘국내 게임업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태동기부터 규제라는 단어는 마치 그림자처럼 게임산업의 발 밑을 따라다녔으며, 아직까지도 한국 게임산업과 규제의 악연은 이어지고 있다.

국내 게임산업의 규제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에 오락실이 자리잡기 시작한 무렵부터 이에 대한 법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니 ‘국내 게임산업이 시작된 날 = 규제가 시작된 날’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1973년에 지금의 오락실에 해당하는 ‘전자유기장업종’이 보건사회부령으로 입법화 된 이후에 이듬해인 1974년에 이에 대한 신규 허가가 불허된 적도 있었으며, 이후 유기장업법이 공중위생법으로 통폐합 개정된 후로 각종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된 전적도 있다.

하지만 이 당시의 법안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는 오락실, 영업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영업장들에 대한 규제를 위한 것들이었다. 산업 자체에 대한 규제가 아닌 업장의 규정준수에 국한된 규제를 했던 것이 1990년대 이전의 게임규제이기 때문에 지금 업계와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게임규제와는 그 양상이 조금은 다르다.

본격적인 게임규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91년 2월 1일에 학교보건법시행령 개정으로 오락실이 학교보건법 제6조의 정화구역대상 업종이 됐다. 이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오락실은 학교 주변 200미터 안에 자리할 수 없게 됐다. 특이한 점은 게임 관련 시행령을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관광부)가 주관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당시 보건사회부)가 담당했다는 점이다. 게임을 문화 콘텐츠로 여기지 않던 당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셧다운제 이미지
셧다운제 이미지

이후 몇 년간 이렇다 할 게임관련 규제안은 논의되지 않았으나, 대전격투게임인 스트리트파이터2가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게임의 폭력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여기에 더해 1993년에 광과민성 발작으로 어린이가 쓰러졌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세간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게임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보건복지부 산하 조직인 한국컴퓨터산업중앙회에서 게임 심의를 시작했다. 이러한 게임 심의는 1998년에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를 거쳐 2006년부터는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심의제도가 생긴 것과는 무관하게 이후 몇 년간 국내 게임산업에 규제와 관련된 목소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폭력적인 게임이 학교폭력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나 게임 때문에 청소년들의 학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주장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 당시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규제보다는 진흥에 가까웠다. 지금은 없어진 정보통신부는 게임산업에 거액을 투입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으며, 정보통신부장관배 아마추어 게임제작 경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당시에도 규제안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최초의 ‘셧다운제’는 2005년에 발의됐다. 온라인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나이를 고려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심야시간에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제공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시행되지 않았다.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전문위원 검토보고에서 부적절 평가를 받고, 법안이 폐기됐기 때문이다. 이후 ‘정보통신서비스 중독의 예방과 해소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이는 전조에 불과했다. 2008년 5월 30일부터 열린 18대 국회에서는 게임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됐고, 이 중 두 개의 법안이 가결됐다.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 중인 일명 ‘셧다운제’에 해당하는 법안이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며, 문화부가 주장하는 게임시간선택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일부개정법률안’에 포함되어 있다.

신의진 의원 홈페이지
신의진 의원 홈페이지

2013년은 국내 게임산업의 규제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기다. ‘손인춘법’, ‘신의진법’이 발의된 해가 바로 2013년이다.

1월에는 ‘손인춘법’이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이 법안의 정식 법안명은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으로 이 법안은 정부가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을 위하여 3년마다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인터넷게임 중독유발지수의 측정을 거쳐 이를 만족하지 못한 게임의 경우 제작 및 배급을 금지하는 동시에 인터넷게임 아이템의 거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해당 거래를 무효로 하도록 강제한다.

여기에 기존의 셧다운제도를 확대해 청소년 인터넷게임 제공제한 시간을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로 확대함과 동시에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실질적인 제재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형벌 규정 대신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4월 30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일명 ‘신의진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은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며 업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법안은 중독 예방, 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 완화에 관한 사항을 심의,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국가중독관리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해 중독의 원인 규명과 예방, 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 완화 정책 등의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근조
근조

대표발의자의 이름을 딴 ‘손인춘법’과 ‘신의진법’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더욱 강렬한 법안도 발의됐다. 2013년 6월에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콘텐츠산업의 진흥을 위해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산업의 매출액 5%를 징수하겠다는 것이 해당 법안의 골자다. ‘과연 이 법안이 시행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표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의 법안이지만, 만약 해당 법안이 시행된다면 국내 게임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워낙에 다양한 규제를 겪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에 대해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해외 언론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CNN은 한국의 게임규제가 청소년 비행을 부추기고 또 다른 범죄가 확산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해외 유력 게임웹진인 가마수트라 역시 ‘청소년들은 공부나 운동을 하는 것처럼 게임을 선택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이를 막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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