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기종 경쟁의 종지부를 찍은 '파이널 판타지 7'
지금으로 약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볼까요? 당시 게임 시장에는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은 콘솔 기기 2종이 일본 시장에 출시됐습니다. 1994년 11월 22일 출시된 세가의 새턴과 12월 3일 출시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 현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이야 플레이스테이션이 1억 대 이상 팔리고, 새턴이 1천만 대도 못 팔았다는 결과를 보고 기종 경쟁에서 완벽하게 새턴이 밀렸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론칭 초기만 해도 두 기종의 싸움이 참 치열하게 펼쳐졌습니다. 덩달아 각 기기를 보유한 이용자 간의 다툼도 심했죠.
새턴은 닌텐도에 밀려 만년 2인자 자리에 불과했던 세가가 차세대 게임기 전쟁에서 승리해 1위로 올라설 수 있을지, 플레이스테이션은 유명 가전회사 소니가 비디오 게임 시장에 참가해 어떤 성적을 거둘지가 이용자들의 관심거리였죠.
초반에는 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보다 근소하게 앞서 100만 대 판매를 돌파했었죠. 그리고 당시 콘솔 게임기는 오락실(아케이드 게임장)의 게임을 얼마나 잘 이식해서 선보이느냐도 중요했는데 세가는 '버추어 파이터' '데이토나 USA' 등 굵직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던 것도 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선보여진 작품들이 좋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버추어파이터', '데이토나 USA'등 새턴으로 이식된 작품들이 엉망에 가까운 이식도를 보여준 반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식되어 선보여진 남코의 '릿지레이서'는 아케이드 버전을 제법 잘 이식해 깔끔한 그래픽으로 선보였습니다. 이용자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하죠.
그리고 새턴은 북미 시장에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자 1995년 E3에서 새턴이 399달러로 발매된다고 발표하고 곧바로 판매에 돌입했는데요. 소니가 새턴에 이어 발표 시간을 갖고 플레이스테이션을 299달러로 판매하겠다고 응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소니의 발표 과정에서 당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SCEA)의 사장 스티브 레이스가 등장해 “299” 딱 한 마디만 이야기하고 내려가는 장면이 이용자들의 인상에 크게 남아있죠. 소니의 이러한 파격적인 가격 정책은 북미 진출 시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새턴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쉽게 펼치기가 힘들었습니다.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들어가는 부품을 직접 만들었던 것과 달리 새턴은 외부에서 부품을 구매해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기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별다른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북미 시장의 빠른 발매는 기기와 서드파티 게임 부족 등 여러 문제를 낳았죠.
또 90년대 후반 게임 시장은 2D게임에서 3D 게임으로 전환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3D보다 2D에 강점을 가진 새턴이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턴은 2D게임에서는 확실히 강점을 가지지만 개발이 워낙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새턴의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3D 게임 개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 개발이 더 용이했고, 결국 3D 게임에서는 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리게 됐죠.
새턴의 뒤를 바짝 쫓은 플레이스테이션은 1996년 '철권 2', '바이오하자드', '크래시 밴디쿳', '아크 더 래드 2' 등 성공작을 연이어 배출했습니다. 특히, 같은 해 일본 RPG 시장의 강자였던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7'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앞선 게임들의 성공으로 이미 패권은 플레이스테이션 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파이널 판타지 7'의 합류 소식은 기종 경쟁에 종지부를 찍은 느낌이었죠. 플레이스테이션 보다 늦은 1996년 등장한 닌텐도의 차세대 기종 닌텐도 64도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90년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일본 내 인기는 정말 뛰어났습니다. 일본의 국민 게임이라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RPG로 이용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었죠. 처음에는 '드래곤 퀘스트'의 아류작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확고하게 다졌습니다.
특히,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으로 발매된 4, 5, 6편은 수백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슈퍼패미컴용 마지막 '파이널 판타지'이자 팬들이 최고의 '파이널 판타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1994년 작품 '파이널 판타지 6'는 255만 장 이상 판매됐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죠.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6편에 이어 발매될 '파이널 판타지 7'도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카구치 히로노부 프로듀서 아래 기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슈퍼패미컴용 2D RPG로 준비 중이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6'을 출시한 1994년 바로 제작이 시작됐죠.
하지만 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발진이 다른 프로젝트인 '크로노 트리거' 팀으로 옮겼고, 1995년 프로젝트가 재개된 '파이널 판타지 7'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7'의 시나리오를 맡은 키타세 요시노리 디렉터가 3D 그래픽을 주장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시리즈 최초로 3D 게임으로 탄생하게 됐습니다.
특히, 사카구치 히로노부 프로듀서는 한술 더 떠 할리우드 영화 같은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영상과 인 게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것입니다. '파이널 판타지 7' 오프닝에 등장하는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면서 주인공 클라우드가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라 봅니다. CG 영상과 게임 화면을 절묘하게 섞어서 표현한 장면이죠.
이러한 연출은 기존의 비디오 게임기 성능으로는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스퀘어는 폴리곤으로 구성된 간단한 테크 데모를 제작해 당시 닌텐도가 준비 중인 차세대 게임기 닌텐도 64의 개발 키트로 구동해 봤으나 만족할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닌텐도 64는 롬카트리지를 사용하는 단점도 있었죠. 롬카트리지는 제작비가 비싸기도 했고, 용량이 작아 영화 같은 연출을 보여줄 동영상을 담기가 아무래도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스퀘어의 선택은 생산비용이 저렴하고 용량도 큰 CD를 매체로 활용하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됐죠.
당시 일본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다만 서드파티 개발사들은 닌텐도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관계 등에 대해 불만이 쌓여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나름 대형 게임사이자 히트작을 배출한 스퀘어가 닌텐도 기기를 두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떠나는 모습이 연출된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많은 서드파티 개발사들이 닌텐도를 떠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변화에 더딘 모습을 보여준 닌텐도의 롬카트리지 고집도 영향이 있었을 테고요. 서드파티의 이탈은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등을 거쳐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닌텐도가 1996년 새롭게 선보인 차세대기 기종 닌텐도 64가 일본 시장에서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 참패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나마 닌텐도 64는 북미 시장에서 성과를 거뒀고 누적 3293만 대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첫 도쿄게임쇼가 개최되는데요. 도쿄게임쇼는 일본의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CESA)가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사실 CESA라는 조직은 당시 일본 게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 닌텐도를 견제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쿄게임쇼 첫 행사 자체도 닌텐도의 독과점을 어느 정도 비판하는 성격도 있었다고 합니다. 닌텐도가 도쿄게임쇼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파이널 판타지 7' 발매를 결정한 스퀘어는 닌텐도와 사이도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더 '파이널 판타지 7'의 성공이 절실했죠.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 7'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스퀘어는 게임 개발을 위해 다른 회사의 개발자들을 영입하고 100여 명이 가볍게 넘어가는 초대형 팀을 구성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쥬라기공원' 같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CG 아티스트를 영입했습니다. 또 당시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그래픽 워크 스테이션 제조사로 유명한 실리콘 그래픽스(SGI)의 제품을 대거 구매해 배치했습니다. 당시 스퀘어가 구매한 기기는 사양에 따라 3만 달러에서 10만 달러에도 달했던 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4500만 달러라는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한 '파이널 판타지 7'은 초대형 기대작으로 등극했습니다. 스퀘어가 선보인 대전 액션 게임 '토발 No.1' 그저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 7'의 체험판이 동봉되어 있다는 이유로 65만 장이나 판매됐을 정도죠. '토발 No.1'이 덤이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1997년 '파이널 판타지 7'은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일본의 게이머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침내 등장한 게임은 CD 3장 분량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했으며, 3D 폴리곤으로 구성된 캐릭터와 전투 화면이 이용자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리미트 브레이크 같은 기술이나 소환수 연출이 상당히 화려했죠.
여기에 영화 못지않은 CG 기술과 자본이 투입된 영상은 말 그대로 영화 못지않았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7'은 2D RPG를 넘어 3D RPG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음을 알리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비주얼은 기존의 게임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하면 비주얼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것도 이 때문이라 봅니다.
여기에 게임의 히로인인 '에어리스'가 게임 도중에 사망하며 게이머들을 충격에 빠뜨린 매력적인 스토리와 세계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다양한 캐릭터, CD로 등장하며 이에 맞춰 대폭 향상된 배경음악과 뛰어난 음질 등 게임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이용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연히 흥행에서도 엄청난 기록을 세웁니다. 일본에서만 326만 장이 넘게 팔렸고, 북미 등 서구권 시장에 등장한 인터내셔널 버전까지 포함하면 980만 장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 세계가 '파이널 판타지 7'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내셔널 버전은 연출과 미흡했던 부분을 강화하고 보너스 디스크를 포함해 CD가 4장에 달했죠. 98년에는 인터내셔널 버전을 기준으로 PC 버전도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출시했습니다.
게임이 출시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파이널 판타지 7'은 iOS나 스팀 등으로 이식되어 여전히 인기리에 판매 중입니다. 21년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1,330만 장에 달합니다. 역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중 누적 판매량 1위의 기록을 쓰고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무엇인지 증명하는 모습입니다.
한편, '파이널 판타지 7'은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 만큼 지난 2015년 E3 현장에서 전격 리메이크가 발표됐습니다. 20년 4월 리메이크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플레이스테이션 4로 출시되어 흥행했고,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5와 PC 등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24년 2월에 리메이크 두 번째 작품인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가 플레이스테이션 5로 발매됐습니다. 비평가들은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가 역대급 '파이널 판타지'라는 호평을 내립니다. 시리즈의 팬들은 방대한 콘텐츠와 즐길거리로 무장한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에 푹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리메이크 3부작 중 대망의 마지막 편만 남아있는 상황인데요. 스퀘어에닉스가 이용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