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년이여, 새해를 버텨라
게임 중년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하고, 어김없이 최대의 명절인 구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온 가족 친지들이 모여 즐겁게 정을 나누는 시간일진데, 혼기가 찬 처녀 총각 게이머에게는 이만큼 괴로운 시간도 없을 듯. 특히 집이 큰집인 경우엔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 격. 집안 어르신과 사촌 꼬마들의 집중 포화는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인생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사촌 꼬마들은 입에 침을 반쯤 흘리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컴퓨터를 바라본다. 한 쪽에서는 쌓아둔 게임기가 꼬마들에 의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먹다 만 라면 한줄기가 키보드 사이에 끼어있는 걸 확인할 때면 머리카락이 쭈뼛서면서 '이녀석을~' 하며 부르르 떨게 된다.
여기에 또 세배를 드리다 보면 사촌 형들과 이모가 '결혼은 언제하려고?' 라고 묻기 마련. 직장이 없는 경우 '취직은?' 이라고 눈치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사촌들을 보면 무슨 죄라도 지은 것만 같고, 그렇게 물어보는 이들이 한없이 야속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고 해도, 2-30년을 버텨온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대처법이 있는 법. 다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처하겠지만 여기에서도 대표적인 방법 몇 가지를 소개 해보도록 하겠다.
▲특명 1. 자신의 보물을 보호하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구정 하루 전쯤에 충분한 대비로 자신의 보물들을 지키자.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게이머라면 조그만 박스를 구해서 본체만이라도 차곡 차곡 쌓아둔 후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이나 침대 밑 등에 보관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이 귀찮다면 최소 랩으로 기기를 통째로 싸버린다든지, 옷장에라도 넣어두어라.
이렇게 게임기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미리 암호를 걸어놓고 접근을 원천봉쇄하자.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님을 졸라서 컴퓨터를 하게 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암호가 여의치 않을 경우 최소한 노출되면 곤란한 동영상 류는 숨겨놓는 센스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꽁수를 하나 소개하자면, 바로 컴퓨터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다. 시작 프로그램에 굉장히 무거운 프로그램들을 잔뜩 깔아놓고, 부팅부터 제대로 안되게 느리게 만들면 아이들이 몇 번 해보다가 고장났다며 흥미를 잃을 것이다.
새해의 전쟁이 끝난 후, 차분히 컴퓨터를 복구시키면서 느끼는 쾌감,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특명 2. 워크 홀릭을 핑계로 자리를 피하라
직장인 게이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회사에 일이 있다며 아예 친지 모임에 가지 않는 것. 필자가 아는 사람의 경우 집에는 '해외출장'을 간다고 하고서 아예 회사에 침낭을 가져와 3일 동안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회사에서 뭘 하며 보내냐고? 걱정도 팔자. 매일 전쟁 같은 업무가 반복되던 회사가 텅하니 비어있으니, 그 또한 느낌이 새롭다. 묘한 장난끼가 발동하는 것이 소리도 질러보고, 물구나무도 서볼 상상을 해본다. 심지어 사장님 실에 들어가서 대형 TV에 게임기를 연결해 즐기는 상상도, 상관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거만한 포즈로 만화책을 읽는 것도 상상뿐만 아니라 해볼 수 있다.
일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 밀렸던 업무를 차근 차근 해나가는 것도 방법. 업무를 진행하다 심심해지면 PC 스피커를 크게 틀고 좋아하는 게임에 접속하자. 정신없이 레벨을 올리다보면 어느새 3일은 후딱! 지나게 된다.
▲특명 3. 가자! PC방으로~ 꿩먹고 알먹고!
부모님과 아이들의 시선을 동시에 피하는 절호의 방법이 있다. 뭐냐고? 바로 아이들을 구슬려서 PC방으로 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굉장한 효과가 있다. 왜냐면 어르신들에게는 애들을 돌봐준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며, 본인에게는 자신의 게임기나 컴퓨터를 합법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관리인데, 일단 PC방 한쪽 구석에 주욱 아이들을 몰아넣고 가장 바깥에 자신이 위치하자.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뻔하다. '카트라이더'라든지, '메이플 스토리' 등등의 게임을 틀어주고, 과자 한 봉지를 안겨주면 2-3시간은 너끈하게 보낼 수 있다.(나이보다 높은 등급의 게임을 튼다면 그 기회에 꿀밤이라도 한 대 먹여줄 수 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자신도 하고 싶은 게임을 할 수 있으니 더한 즐거움이 어디있으랴. 다만.. 아이들이 많다면 카멜레온 눈을 뜨고 아이들이 잘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며, 아이들 PC방 비까지 전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약간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예 아이들 자체를 보기가 싫다고? 그렇다면 혼자 PC방에 가서 마음껏 즐겨도 좋다. 하지만 새해 첫 날부터 PC방을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할 것 없는 녀석' 쯤으로 보이기 좋으므로.. 가능하면 아이들과 함께 가도록 하자.
▲특명 4. 아픈 척은 휴식의 어머니
또 하나 모두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병이 나는 것이다. 온몸이 튼튼하고 병이 없는데 어떻게 아픈 척을 하냐고? 간단하다. 새해가 시작되기 2일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말고 모니터 앞에 붙어서 게임만 해라. 그러면 눈이 쾡해지고, 어딘가 비실비실해지게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면 아예 런닝셔츠 차림으로 밖을 활보해도 좋다.
결국 적당히 몸이 축난 상황에서 비실비실 기어나오면 사촌 동생도, 친척들도 당신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방에 누워서 끙끙 앓기만 하면 시간이 휙휙 지나가게 된다. 심지어 감기 옮는다며 당신의 방에 조차 들어오지 않는 친척 어르신들과 꼬마 아이들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미소를 지어 보아라.
게다가, 이불을 뒤집어 쓴 체 PSP로 영화도 볼 수 있고, 아니면 RPG를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니 일석 이조가 아닐 수 없다.
▲결론 : 게임 중년이여~ 도망은 이제 그만, 당당해져라
지난 크리스마스 때 게임동아에서는 '솔로의 크리스마스 대처법'에 관한 테마의 글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새해를 버티는 대처법'에 대해 언급을 해 보았다.
그때도 나름대로 결론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결국 이런 처지가 되는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결혼이든, 취직이든 할 수 있는대로 해치우도록 하자. 위에 언급한 대로 도망만 다니는 것은 보기에도 안 좋을 뿐만 아니라 말 원천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게임을 좀 하다가, 혹은 일이 많아서 결혼하지 못했다고? 능력은 있는데 운이 나빠서 취직을 못했을 뿐이라고?
다.. 좋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는 매년 구정과 추석 때마다 고생을 해야한다.
추석과 명절 때 당당한 당신, 자랑스러운 게임 중년이 되기 위해 오늘도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