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궁속의 2006년 DMB폰 시장

드디어 지상파 DMB폰의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 그러나 과연 이게 환영할만한 일일까?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7일 이동통신사들에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과 휴대전화를 겸하는 지상파DMB폰을 유통하지 않을 경우 처벌 대상이라고 언급, 지상파 DMB폰 유통에 소극적 입장을 견지해온 이통사들을 공격했다. 진 장관은 특히 이통사 대리점들이 단말기 고유번호(ESN:Electronic Serial Number)가 없다는 이유로 지상파 DMB폰을 개통해주지 않을 가능성과 관련해 가입자인증모듈(SIM:Subscriber Indetification Module) 카드 도입 방안까지 거론, 서비스사업자 위주인 국내 휴대폰 유통체계 재편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런 진장관의 언급은 이통사들이 지상파 DMB를 담합해서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강한 경고로 보인다. 지상파와 위성 DMB 중 어느 쪽이 우수한지, 어느 쪽이 불편할지를 이동 통신사가 아니라 소비자가 심판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담합 등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규제를 시사한 것이니 표면적으로는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공정위가 아니라 정통부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크다. CP 종사자 입장에서 본다면 어떻게 봐도 진장관의 지상파 DMB 편 들어주기 식 발언으로 밖에는 해석이 안되기 때문이다.

* 위성 DMB와 지상파DMB

위성 DMB는 지구 궤도상의 위성에서 한반도 전역에 전파를 쏘아 보내는 방식으로, 전국 어디서나 시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건물, 지하철 등에서는 전파 투과율이 떨어져 위성 DMB 사업자인 tu미디어에서 '갭필러'(송신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 현재 가입비 2만원에 월 1만 3천원의 이용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MBC, KBS 등 공중파 TV는 현재로선 제공되지 않는다.

지상파 DMB는 지상파 방송사 송출소를 통해 전파를 쏘아 보내는 방식으로, '갭필러'를 설치한 지역에서만 시청이 가능하다. 공익성을 목적으로 해서 기본적으로 무료이며, MBC, KBS 등 지상파 TV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다.


자아 그럼 대체 왜 이렇게 지상파, 위성을 가지고 정부와 이통사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지상파 DMB와 위성 DMB의 서비스 성격과 수익구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하드웨어를 싸게 만들어 많이 파는 것 만으로도 이통사는 충분한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현재의 단말기는 이통사가 준비한 여러가지 콘텐츠(인프라)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서, 인터넷, 게임, 동영상, 텍스트 등을 보고 거기서 발생하는 패킷 요금과 정보이용료로 얻는 수익이 하드웨어 판매 수익을 앞지른지 오래다.

지상파 DMB는 말하자면 휴대전화로 기존 TV방송을 시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송출 방식도 기존 TV와 똑같다. 프로그램도 무료로 제공되며 단지 소비자는 지상파 DMB가 수신 가능한 단말기를 구입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콘텐츠가 무료라는 강점을 가진 지상파 DMB폰이 널리 보급되면 그에 따른 이익은 기존 방송사들이 모두 가져가게 되고 통신사나 CP는 아무런 수익을 얻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원래 그 시간에 휴대전화로 CP 등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던 소비자들이 지상파 DMB를 보는데 시간을 투자하게 됨으로써 모바일 콘텐츠 자체의 존립에도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반면 위성 DMB는 단말기 구입은 물론, 가입비와 월 정액으로 수신료를 내야한다. 프로그램 제공은 이통사와 CP에서 맡는다. 즉 위성 DMB로 얻어지는 수익은 이통사와 CP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비록 위성 DMB가 인프라 구축에 지상파보다 수십 배의 비용이 들지만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일단 구축에 성공하면 이통사와 CP들에게 기존 모바일 콘텐츠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고, 지상파 DMB의 보급을 위해 거미줄처럼 전국을 기지국으로 연결하는데 돈을 투자할 필요성도 없어진다(위성도 기지국은 필요하지만 지상파 정도의 엄청난 양의 중계설비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들이 담합을 하다니, 나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이통사들은 속앓이가 심하다. 지상파 DMB가 기지국 건설이 필요하다는 건 앞서 이야기했지만, 서울에서조차 '지하철에서 지상파 DMB를 볼수있는' 시기는 2006년 여름 무렵이다.

전국 단위로 확대된다면 기지국 건설 및 개통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기에 원래 같으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방송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도 모자랄 판국이지만, 지상파 DMB로 인한 모바일 시장의 파이 축소에 대한 정부 대책이 전무하고, 심지어는 지상파 DMB 사업자들은 음영지역 중계망 구축비용조차 장비 제조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또한 지상파 DMB 폰의 기본적인 유통 수수료를 보장해달라는 이통사들의 요구 마저 거부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해서 현재 상황이란 지상파 DMB로 이통사가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는데다, 자체 시장 축소 위험까지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고, 이통사에서 지상파 DMB 구축을 위한 보조금까지 부담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웃기는 것은 여기에 방송사가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통사는 수익 창출이 어려운 사업을 외면할 권리가 있다. 결국 기업이란 수익을 위해 활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익을 떠나서 기업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현재 이통사들은 고객이 당장 지상파 DMB 폰을 구입한다고 해서 단 시일내에 현재의 위성 DMB 만큼의 광대역 서비스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유통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억지로 유통 시켜봐야 결국 비난을 뒤집어 쓰는 건 정부가 아니라 이통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지상파 DMB 폰을 당장 유통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지상파 DMB 폰 구매자는 지상파 DMB 인프라가 지금과 달리 보다 광대역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시점까지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도, 건물에서도, 전국 어디에서나 지상파 DMB 시청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되면 그 구매자가 구입한 지상파 DMB 수신폰은 구형 제품이 된다. 즉, 현실적으로 지상파 DMB 수신이 원할해지는 시점까지의 부담은 이통사와 함께, 이미 유통된 지상파 DMB 폰을 구입한 구매자가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지상파 DMB를 사지 않고 서비스 안정화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국내 휴대전화의 판매방식 탓에 신형 휴대전화의 구매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례로 자신의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프로세서가 MSM5200인지, MSM5400인지 MSM6000인지 알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휴대전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소비자는 대리점 판매상의 말만 듣고 사게 된다.

즉, 휴대전화를 바꾸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를 의도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바꾸게 되었다는 다분히 수동적인 상황에서(기존 기기 노후화, 분실, 파손 등)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휴대전화 가운데 고르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현재 상황에서 소비자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아도 지상파 DMB 폰을 구입해 불완전한 서비스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두의 발언에서 진장관은 공정거래를 빌미로 위성DMB와 지상파DMB 중 지상파DMB에 손을 들어주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덤으로 그것으로 인해 부담해야 하는 인프라 구축 비용은 지상파 DMB로 인해 수익을 얻는 측(방송사와 휴대전화 제조사)이 아닌 소비자와 중계소에 모두 떠넘기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보통신부의 입장이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러한 진 장관의 발언이 그동안 통신정책을 뒤집는 '행동'으로 나타나든, 일종의 협박성 카드 해프닝으로 끝나든… 그로 인해 2006년 올 한 해에 DMB 시장이 찬란히 빛날 것이라는 예상은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좀 더 합리적인 방안이 추진되어야 할 때다.

작성자 : 김효식(kdash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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