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넘어 영화, 게임까지 진출한 토르 천둥의 신
거친 사나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북유럽 게르만 민족들의 신화는 다른 문화권의 신화에 비해 매우 야성적이라고 명성이 자자하다. 각종 신화들처럼 이 북유럽 신화에서도 매우 다양한 신이 등장하는데 그중 특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의 이야기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천둥의 신 토르. 예나 지금이나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인기 좋고 유명한 신이다. 이 북유럽의 톱스타께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만화 출판사 마블(MARVEL)코믹스와 손을 잡으시니 지구를 지키시는 슈퍼 히어로가 되셨고, 날로 인기가 상승하여 이제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셨다. 그리고 이 영화 개봉에 맞춰 나온 게임이 토르: 천둥의 신(이하 토르)다.

오프닝이 없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걸 직감

영화의 설정을 따와 별개의 스토리로 진행한다
게임 참 편하게 만들었다
토르는 마블 코믹스에서 슈퍼 히어로로 등장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겪은 결과 원조 북유럽 신화와 동떨어진 고유의 캐릭터가 됐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가 됐다는 얘기다. 결국 영화판 토르는 모든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정을 다시 뒤엎었다. 이 게임 또한 영화의
설정과 마찬가지로(영화의 사업 중 일부니까)토르를 모르는 사람들을 감안해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
했던 것 같다. 스토리도, 캐릭터도, 게임 시스템도.

시프와 헤임달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우주에서 노는 신들 사이에서 애쓰는 트롤 남캐
원작에 해당하는 영화가 가벼운 내용으로 예고편 소리를 듣는다지만, 게임 토르는 더하다.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를 공격한 서리 거인들을 때려잡던 토르가 더 큰 사고를 터트려서 봉인했던 맨곡을 깨우는 바람에 뒷수습하는 스토리가 전부. 이 내용은 총 15장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보스와의 싸움 횟수 자체는 자주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겉모습만 다른 중간보스 뿐이고 실질적인 적 캐릭터는 최종 보스를 포함하여 딱 4명. 여기에 주인공 토르 외에 하는 일 없는 시프와 막판 네비게이터 노릇만 하는 헤임달까지 포함한 아군 측 등장인물이 5명. 10명도 안 되는 등장인물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게임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등장인물을 제한하고 복잡한 배경 설정을 안 넣은 건 좋으나 이래서야 최소한의 스토리 진행조차 원활하게 진행하기 힘들다. 결국 게임의 진행은 잔머리 굴리는 로키의 지시와 토르의 행동이 전부이고 그저 막아서는 모든 걸 힘으로 제압하는 스토리 진행 때문에 지루한 외길 코스만 남았다.

1회 클리어로 다 못 채우는 강화 능력들.
2회차 플레이를 하라는 건데 그럴 의욕이.....

추가로 얻는 콤보는 모두 모으기 공격이라
쓰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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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버튼 액션 종류는 서리 거인 군, 수르투르군,
트롤 딱 세 개. 일반 적 구성 종류도 던지는 적,
원거리 공격 적, 버튼 액션 생기는 적 딱 세 개

원거리 카운터는 공격마다 반격 타이밍이 달라
맞으면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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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뿌리인 액션을 살펴보면 기본은 갖췄다. 생존을 위한 체력 미터와 마법에 쓰는 오딘 포스 미터를 시작으로 근접 공격과 파워 어택으로 조합하는 콤보, 잡기에서 파생공격, 카운터를 포함한 방어와 묠니르 투척, 특정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발생하는 전투, 돌발 상황에서 나타나는 버튼 액션, 필드 곳곳에 있는 아이템으로 능력 상승, 일종의 화폐인 용맹 점수를 모아 세 종류의 마법, 게이지, 콤보, 묠니르 투척을 강화하는 시스템 등 이전에 다른 액션 게임을 해봤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요소들이다. 그만큼 검증 받은 구성이기도 해서 형식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실속이 없다. 특정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인 전투의 흐름, 구조, 밸런스가 하나같이 구색만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엇 때문에 하는 전투인지, 무엇을 위한 전투인지, 왜 하는 전투인지 어느 것 하나 알 수가 없다.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등장하는 적들의 조합도 이런 문제점을 부추긴다. 중간 보스급 적을 상대할 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져서 오로지 타격-잡기 이펙트 형성-몸에 붙어서 장갑 파괴-이하 반복이 전부. 이마저도 가끔씩 몰상식한 눈속임이 추가되어 전투는 전투대로 깨지고 해결책을 찾아도 달성감보단 짜증만 생긴다. 즉, 전투에서 쓰라고 전투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목적 없는 전투 시스템을 만들고는 마지못해 전투 파트를 추가한 느낌이 게임 내내 이어진다. 기껏 좋은 시스템을 가져와서 제대로 손보지 않은 탓에 애꿎은 게임 퀄리티만 떨어졌다.

토르의 상징인 묠니르로 하는 던지기 공격.
너무 빠르게 던지려면 모션이 꼬여 못 던진다던가
작은 적을 조준하기가 힘든 문제 등 은근히 쓰기 힘들다

파워 서지를 자유롭게 쓰는 구조였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토르 고유의 개성은 사정이 다를까? 토르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개성적인 모습은 토르가 항상 들고 다니는 망치 묠니르를 다양하게 활용한 액션들이다. 이 만능 망치 묠니르는 싸울 때만 쓰는 게 아니라 회복, 세이브, 특정 장치 작동, 이벤트 진행을 위해 게임 내내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묠니르를 쓰는 대부분의 행동은 특정 버튼을 한 번 누르거나 계속 눌러주는 게 전부다. 오직 좌우 아날로그 스틱을 조정해 특정 지점에 위치시켜 용맹 코어에서 용맹 점수를 얻을 때만 개별적인 조작법을 사용한다. 묠니르를 부각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으면서 정작 묠니르를 조종하는 게이머에게 어필할 방법이 부족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장소에서만 사용 가능한 파워 서지 시스템은 일발역전의 필살기 성격이 강하지만, 오로지 이벤트 진행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만 등장한다. 게이머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토르의 활약상을 이벤트 전용으로 옭아맨 이유를 모르겠다.

신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천둥의 신 토르

지금 어디서 폭탄 떨어진 건가요?
게임 잘 즐겼습니다. 이제 토르를 보여주세요
게임 토르의 여러 문제들이 각각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바로 주인공 토르가 토르답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비록 토르가 기존의 토르들과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다곤 하나 절대 변하지 않는 설정이 바로 천둥의 신이며 아스가르드 제일의 전사이고
최강의 무기 묠니르를 휘두르는 절대신의 후계자다. 그러나 게임 안에서는 토르를 토르라 부르지 못 할 정도로 묘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하늘은 날지만, 강은 못 건넙니다

경천동지의 번개를 부리지만, 문을 부수는 것은
폭탄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원작 재현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10분 전만 해도 묠니르의 힘으로 이곳저곳 장소를 안 가리고 날아다니던 토르가 갑자기 괴수 한 마리를 전기고문 시키며 보트를 끌게 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게임의 전체 스토리와 각종 이벤트에선 실컷 천둥의 신 토르의 위용을 뽐내는데 정작 게이머가 직접 조종하는 토르는 지역과 지역을 넘나들 때 보여주는 비행을 제외하면 평범한 모험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막말로 비행 빼고 이 게임의 토르가 하는 일이 캡틴 아메리카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 필연적으로 이벤트와 실제 플레이의 괴리감이 생겨 개연성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차라리 영화 본편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 신의 힘을 잃은 토르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게임이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토르의 모습은 없었을지언정 최소한의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토르는 방향성을 잃으면서 게이머가 원하는 모습도, 최소한의 개연성도 보여주지 못 했다.

초반에 몇 번 보면 질리다가도 게임 막판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파워 서지

보스전 버튼 액션은 확실히 볼만 하다. 이제 버튼
입력 시간과 미스 허용 범위만 늘려주면 된다
그나마 파워 서지 이벤트와 보스(설명서에 등장하는 적측 등장인물 4명)전의 막판 버튼 액션에서 겨우 토르다운 모습을 되찾는다. 파워 서지 이벤트의 연출은 전부 번개가 잔뜩 떨어지는 단순한 연출이긴 해도 천둥의 신이란 타이틀을 겨우 살려주는 고마운 시스템(이거 가지고 고마워해야 하는 게 이 게임의 현실이다). 보스전에서의 버튼 액션들 또한 다른 적에게 쓰는 버튼 액션보다 훨씬 통쾌한 싸움을 보여준다. 지루한 싸움만 이어지는 토르의 전투 중에서 가장 게임하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전투가 보스전만 같았으면 아니, 보스전의 반만큼이라도 패턴이 다양하고 박력이 넘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게임 토르도 피해자다
원작의 인기에 편승한 캐릭터 게임들이 등장했다가 빠른 속도로 외면 받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특히 영화 개봉에 맞추어서 등장한
게임들의 완성도는 더욱 처참해서 영화 보고 게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본 게이머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건 게임이 영화를 홍보, 영화가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오로지 발매 일정만 따라가느라 게임의 완성도를 포기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영화와 연계하면서도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게임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게임으로서 기본 이하의 퀄리티를 보여준 토르에게 면책권은 없으나 이런 완성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뜬금없이 공격 순서를 지켜야 하는 중간보스가 나오면 매우 골치 아프다.
왜냐하면 직접 알아내기 전까지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기 때문

패키지 뒷면에서 광고하는 토르&로키 영화배우의
더빙. 이 둘 말고는 목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영화 덕을 본 부분이 있다면 주인공 토르와 조역 로키의 음성. 성우를 영화의 그 배우들에게 맡겨 영화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위안이 되겠다. 게임 자체적으로 리니어 PCM 5.1ch, Dolby Digital 5.1ch을 지원해 사운드 효과는 나름 들어줄 만 하다. 그렇지만, 음악 게임이 아닌 이상 게임을 즐기는 재미에 영향을 주는 범위는 제한적. 사운드 하나 만으로 이 게임을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다.

제작 인원이 많다고 재미있는 게임 나오는 것은
아니네요

토르의 이름에 걸맞는 게임이 등장하길 기다린다
만약 게임 토르의 후속편이 나오거나 마블 코믹스 소속의 다른 영화가 게임으로 나온다면 그 땐 외부 사정에 휘둘리지 않은 채 각 잡고 제작한 게임을 해보고 싶다. 수십 년간 인기를 누려온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은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에 등장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아까운 캐릭터들이 게임 잘못 만나서 평가절하 당하는 건 제작자, 게이머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