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분위기의 정통 어드벤처, 호텔 더스크의 비밀

어어부 ububa01@simba.com

어드벤처라는 장르가 있었는지조차 희미할 정도로 접대가 척박한 이 땅에 반가운 한글소프트가 하나 나왔습니다. 정통어드벤처 호텔더스크의 비밀인데요, 이 호텔더스크의 비밀이라는 다소 낯선 게임에 푹 빠진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게임에 반해서 이 글까지 찾게 되신 분이라면, 아마 제가 이 게임에 완벽한 스코어를 주었으리라 기대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이 게임에 너그러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게임이든 사후평가에서 문제점은 발견되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플레이어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호텔더스크는 경우에 따라 플레이어가 게임을 중단하고 싶을 만큼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썩 괜찮은 작품인 것도 사실입니다. 게임 업계에 만연한 정신의 오염과 그 사생아들에 비하면 호텔더스크는 반짝이는 보석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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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2일 북미판 발매. 3일 후 일본판(위시룸 천사의 기억)이 발매되었고, 드디어 2009월 2월 한글판이 발매됐습니다. 2년여의 여백 사이에는 수많은 리뷰와 평가가 뒤따르고 있는 건 당연하겠죠. 그 수많은 텍스트 사이를 헤집다 보면 발견되는 공통된 의견이 있습니다. 탈색된 독특한 비주얼, 섬세하게 세공된 캐릭터, 풍부하고 잔잔한 BGM. 저 역시 여기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역시 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선 여기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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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호텔더스크의 비주얼을 접했을 때 저는 곧장 아하의 뮤직비디오 take on me를 떠올렸습니다. 아직도 제 하드디스크 구석에 있으면서 가끔 Queen의 Driven by you 함께 미디어플레이어에 걸리곤 하는데요. 아하라는 밴드가 서먹하더라도 Can't take my eyes off you 는 아실 겁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아하의 리드싱어인 Morten harket입니다. IGN 닌텐도팀에 크레익 해리스도 호텔더스크의 비주얼 스타일은 80년대 아하의 뮤직비디오 혹은 빌 플림턴 스타일에서 가져 왔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분위기 있는 비주얼을 뽑아 낸 아트디렉터 카나사기 다이스케는 자기네 작품이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각적 표현을 가지기 바랐다고 합니다. 게임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Cing의 제작진은 등장인물의 표정과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인터랙티브 대화를 원했고,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핸드메이드 스케치 기법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성공이었죠. 호텔더스크가 정통어드벤처를 계승하면서 가져온 불편한 관습이 전체적인 평점을 깎아 먹긴 했지만, NDSL를 세워 책을 보는 듯한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은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원래 호텔더스크는 처음에 가로화면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이 개발이 더 편했다고 하네요. 여하튼 세로화면으로 플레이 스타일을 조정하면서 캐릭터의 상반신을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고, 감정표현은 풍부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하이드와 주변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는 구도를 쉽게 만들 수 있었죠. 덕분에 저희는 가브리엘 소녀 성가대 앞에서 바지를 내리던 전직소매치기 루이스와 인간적인 냄새의 메이드 로사를 이해하고 친밀하게 다가가는데 필요한 거리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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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냄새가 나도록 정밀하게 세공된 인물 뒤에는 스즈키 리카가 있습니다. 어드벤처계의 후디스가 되지는 않더라도 간단하게 스즈키 리카 정도는 아셔야 하겠죠. Cing의 부사장으로 게임디자인과 시나리오를 맡고 있지만 과거 리버힐 소프트에서 J.B.해롤드 시리즈로 어드벤처 마니아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입니다.(리버힐소프트는 진즉 파산했고 여기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세운 회사가 국내에서 레이튼교수와 이상한 마을로 유명한 레벨파이브, 그리고 Cing입니다)저 역시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일본인이면서 외국인 캐릭터와 배경의 가닥을 잡는 데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캐릭터를 창조하고 배경을 설정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면서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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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더스크의 비밀은 카일 하이드가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외로이 서 있는 작은 호텔에 들어서면서 시작합니다. 때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1979년 12월 28일. 사람들은 새해를 맞을 준비로 들떠 있지만 하이드는 여전히 과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3년 전 허드슨 강에서 사라진 브래들리를 찾기 위해서죠. 그리고 하이드는 브래들리가 반년 전 자신의 이름으로 이 호텔더스크에 머물렀던 흔적을 발견합니다. 호텔더스크의 게임플레이는 전통적인 포인트앤클릭 방식입니다. 진행은 굼뜨고 행동반경 또한 이 작은 호텔 내로 한정됩니다. 게임플레이의 대부분은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하거나 호텔 안을 배회하며 주위를 콕콕 건드려보는 겁니다. 그 사이 몇 개의 시시한 퍼즐이 준비되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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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노벨로도 불리는 호텔더스크의 게임플레이는 따지고 보면 플레이어가 대화의 공백을 채워 넣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듯 문장을 따라 읽다가 중요한 순간에 카일 하이드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라는 질문에 답하게 됩니다. 만일 심심찮게 게임오버가 된 다면 그건 아마 카일 하이드의 입장에서 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적지 않은 대화를 다시 거쳐야 하겠죠. 그래서 글자를 쳐다보는 일은 교과서만으로 족한 부류에게 호텔더스크는 재앙입니다. 끝없는 캐묻기식 대화와 글자의 나열 속을 허우적대다 잠 들 수 있을 거 에요. 그 반대라면, 호텔더스크는 축복입니다. 캐릭터의 개성을 한껏 살려낸 한글화 수준도 따뜻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르듯 매끄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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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g의 전작인 트레이스 메모리를 해보신 분이라면 호텔더스크의 퍼즐풀이를 쉽게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DS의 모든 기능을 활용했다는 칭찬을 받고도 정작 전체적인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게임이죠. 호텔더스크에 와서도 마이크에 바람을 불어 넣고 와인 라벨을 벗겨 내거나 DS를 포개는 등 잡다한 기능을 적극 재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좋았지만 정작 퍼즐 자체는 너무 시시합니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껏 분위기 잡아 놓은 호텔에서 반중력건이 나올 수는 없잖아요. 퍼즐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필요한 곳.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지점에 출현합니다. 밀라의 퍼즐조각이나 서머의 만년필, 헬렌의 와인병 같은 것들이죠. 확실히 호텔더스크의 퍼즐은 많이 시시합니다. 마지막 지하실 퍼즐 빼고는 솔직히 퍼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희 집 주방이나 제 책상 위에도 있는 아이템을 이용한 퍼즐 덕에 이 호텔더스크가 더 진지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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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두에서 비주얼을 칭찬했지만 정작 호텔더스크의 큰 위기 역시 그 비주얼 속에 있다는 걸 말씀드릴 차례군요. 위에서 언급한 칭찬이 캐릭터에 국한되었다면 이 꾸중은 그 캐릭터를 둘러싼 풍경에 대한 것입니다. 호텔더스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장르답게 플레이어가 다음 진행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뭔가 끌리는 게 있다면 일단 조사해봐야 합니다. 여기엔 변기통이나 두루마리휴지, 세탁기세제 같은 사소한 것까지 포함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얻습니다. "변기통이 있다" "두루마리휴지가 걸려 있다" "세제가 있다" 등. 영리한 사람은 곧장 호텔더스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체가 아무 의미 없이 놓여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에는 의미 없이 반짝이는 인터랙션이 많습니다. 호텔의 모든 두루마리휴지를 조사해도 두루마리휴지가 단지 거기에 걸려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반복된 인터랙션의 과잉에 지친 플레이어는 정작 중요한 퍼즐 풀이 때 주위에 관심이 사라진 상태일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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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의 만년필에 얽힌 퍼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만년필의 필체를 조회하기 위해 주방 한 쪽 구석에 엎드려 있는 밀가루 포대를 클릭하는 일이 과연 인터랙션에 귀찮아진 플레이어에게 일어날 수 있을지. 심지어 잘도 재잘대던 하이드가 이때는 만년필에 뭔가를 뿌려보면 어떨까하는 작은 힌트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호텔더스크의 비밀이 책장을 넘기듯 매끄럽게 진행돼야 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끝내 저는 게임의 호흡을 중단하고 공략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공략을 참고하는 걸 수치스러워 하는 분이라면 어휴.. 어찌할 바를 몰라 호텔의 구석구석을 클릭하고, 무작정 아이템을 제시하는 모습이 선합니다. 해리스의 말대로 저 역시 호텔더스크의 비밀이 정통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장르 부흥에 좋은 본보기이며 가장 의미 있는 진보라 생각합니다, 만 이런 점에서 썩 훌륭한 디자인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왜 호텔더스크에 완벽한 스코어를 주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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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더스크의 비밀에는 배꼽 잡는 유머도 가슴을 퍽 때리는 여운도 흥미진진한 퍼즐도 없습니다. 대신 기나긴 텍스트와의 한판이, 인터랙션의 과잉이 있으며 호텔뺑뺑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이 게임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살가운 냄새의 캐릭터와 그들의 상처받은 내면이 치유되는 걸 바라보는 흐뭇함이 있어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역시 위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호텔더스크의 비밀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남편과 아들의 빈자리를 억척스런 이미지로 위장하고 있는 로사를 뽑았습니다만 여러분은 누구에게 반하셨습니까? 덧붙여 올해 그러니까 2009년 봄 발매예정이었던 차기작 'Again: Eye of Providence'는 아무래도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TGS에서 공개된 프리뷰 외에 추가 소식이 들려오지 않네요. 트레이스 메모리 이후 이 작품도 꼭 한글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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