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1988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이머들의 저작권 인식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1988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이머들의 저작권 인식
1988년 당시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돌이켜보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기업들은 그 당시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을 펼치며, 대중들은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그 당시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게임과 관련된 1988년 무렵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오락실의 요금이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됐으며, 오락실에는 정말로 '무서운 형아'들이 많았다. 1990년을 앞두고 개인용 PC가 아주 조금씩 보급되려던 시기이며, '오락실 게임', '게임기 게임'이 아닌 'PC 게임'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시장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이다.
인터넷은 커녕 PC통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이 시기에 PC로 어떻게 게임을 했을까? SKC나 동서게임채널에서 PC게임을 유통하기는 했지만, 정작 가장 많은 이들에게 PC게임을 보급하던 채널은 이들이 아닌 '불법복제'였다.
세운상가, 용산 전자상가 혹은 PC 게임을 취급하는 동네 전파사에서는 게임의 목록을 나열해놓고, 이들 게임을 불법으로 복제해주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이들은 '디스켓 장당 500원' 식의 시세에 맞춰 게임을 복사해주며 수익을 창출함과 동시에 PC게임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불법이었음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전파사를 찾기도 어려운 요즘 PC 게임을 취급하는 동네 전파사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세운상가는 쇄락했으며, 용산 전자상가는 오랜 기간 덧씌워진 '용팔이' 이미지의 무게감 때문이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이렇게 시장이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게이머들의 저작권 인식이 그것이다. 여전히 게임은 공짜로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요즘이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게이머들의 저작권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최근 모바일게임으로 출시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은 이러한 국내 게이머들의 저작권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임이다. 게임의 출시와 함께 스마트폰에서 게임을 구동할 수 있게 하는 APK 파일이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모바일게임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APK 파일을 다운로드 받기 원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PC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됐을 당시에도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를 입었던 이 게임은 모바일 환경에서도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를 또 받은 안타까운 기록도 갖게 됐다.
저작권 인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이머들의 수는 그 당시와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게임시장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많은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이번 건을 통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의 불법복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사실 불법복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문제다. 오히려 국내 게임산업군이 PC 온라인게임 시장 위주로 성장했고, PC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불법복제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않아 사태 개선이 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하고 모바일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다시 한 번 불법복제로 인한 국내 게임산업의 피해가 대두되고 있다.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작 모바일게임이 출시 되면 그와 동시에 해당 게임의 APK 파일이 시장에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임은 공짜로 즐기는 것’ 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물론 게이머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를 타파할 제도적인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을 침해한 이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며, 관련 협회나 기관에서는 이에 대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행정적인 노력보다는 '불법 다운로드는 나쁜 것이에요' 수준의 캠페인만 진행하고 있다. 이마저도 영화 업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이지, 게임 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수준의 캠페인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난 십수년 동안 증명이 된 상황임에도 저작권 보호를 위한 노력의 형태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사실상 저작권 보호를 위한 게이머들의 자정능력은 전무하다며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방안을 포함하는 법안을 준비할 수 있는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불법복제 문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역사도 굉장히 뿌리 깊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책은 전무하다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지속적인 논의도 찾아볼 수 없다. 불법복제,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동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