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나만을 위한 퀘스트?” AI가 만드는 무한 콘텐츠 시대
AI가 게임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저작권 논란, 창작자 일자리 잠식 우려, AI 생성물의 품질 문제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지만, AI가 실제 게임 개발 현장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구글 클라우드와 해리스폴이 한국, 미국, 북유럽 5개국 게임 개발자 6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가 이미 업무 흐름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95%는 AI가 반복 작업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플레이테스팅과 밸런싱, 로컬라이제이션과 번역, 코드 생성과 스크립트 지원 영역에서 활용도가 높았다.
국내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국내 게임사 8곳 종사자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AI를 업무에 자주 활용 중인 응답자가 65.6%로 나타났고, 80.3%가 효율 향상을 체감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AI가 반복 작업과 대량 생산 영역의 부담을 줄이면서, 게임사들의 관심은 개발 효율을 넘어 이용자의 경험적 측면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기존 게임 개발 방식에서는 대사와 퀘스트를 쓰고, NPC 행동을 설계하고, 이용자의 수많은 선택지를 모두 테스트하는 데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특히 이용자마다 다른 취향과 플레이 방식에 맞춰 별도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AI는 이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NPC 대화, 퀘스트 진행, 전투 피드백, 외형 커스터마이징 같은 콘텐츠를 이용자의 행동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이용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전투에서 실패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NPC와 대화했는지에 따라 게임이 서로 다른 반응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비소프트는 생성형 AI 기반 게임플레이 실험인 ‘팀메이트’를 공개하며, AI 동료가 이용자의 전략과 음성 명령에 반응하고 임무를 안내하는 구조를 선보였다. 이는 GDC 2024에서 선보인 ‘네오 NPC’ 실험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젝트로, 작가가 설정한 이야기의 경계 안에서 AI 캐릭터가 상황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엔비디아 역시 게임용 AI 캐릭터 기술인 ACE를 통해 NPC 상호작용 실험을 확장하고 있다. ACE는 음성 인식, 언어 모델, 캐릭터 행동, 표정 생성 기술 등을 결합해 NPC가 이용자의 말을 이해하고 게임 속 역할에 맞는 반응을 하도록 지원하는 기술 플랫폼이다.
국내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넥슨은 인텔리전스랩스를 중심으로 NPC에 페르소나를 부여하고, 이용자의 플레이 데이터에 따라 사냥, 퀘스트, 부족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AI NPC 방향을 연구해왔다.
크래프톤도 AI를 이용자 맞춤형 경험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엔비디아와 협력해 선보인 ‘버추얼 프렌드’는 이용자의 명령과 게임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행동하는 AI 동료 개념이다. 정해진 대사와 행동을 반복하는 NPC를 넘어, 이용자의 플레이를 보조하는 개인화된 동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AI 기반 개인화 기술이 실제 콘텐츠 단위로 투입되고 있는 신작도 있다. 스마일게이트 RPG가 개발 중인 ‘로스트아크 모바일’이 그 주인공이다. 아직 CBT 버전인 만큼 정식 출시 시점에는 세부 기능이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 공개된 내용만 놓고 보면 AI를 단순 보조 기능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의 한 축으로 활용하려는 방향이 확인된다.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AI 채팅과 AI 퀘스트다. 이용자는 헤리리크와 자유롭게 대화하며 모험 중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NPC와의 대화 선택에 따라 진행 방식과 결과가 달라지는 퀘스트도 만나볼 수 있다. 같은 퀘스트라도 이용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흐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용자가 직접 캐릭터 외형을 꾸밀 수 있는 AI 의상 커스터마이징도 눈에 띈다. 코스튬 부위별로 원하는 사진을 활용하거나, 짧은 문장과 단어를 입력해 AI가 생성한 패턴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 색상 조합까지 더하면 개발사가 미리 제작한 의상만 고르는 방식보다 넓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진다. 이용자가 소비자인 동시에 창작자가 되는 구조다.

각종 보조 시스템에도 AI가 활용된다. ‘헤리리크의 사망 가이던스’의 경우 레이드 도중 이용자가 사망하면 게임의 마스코트 헤리리크가 AI를 활용해 당시 상황과 보스 패턴을 분석한다. 어떤 공격에 취약했는지, 어느 타이밍에 실수가 발생했는지 파악하고 다음 도전에서 참고할 수 있는 공략 가이드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직접 영상을 돌려보거나 외부 공략을 찾아야 했다면, 로스트아크 모바일은 이 과정을 게임 안에서 개인별 피드백으로 제공하려 한다.

‘용병 시스템’도 개인화된 전투 경험을 보여주는 기능이다. 파티 플레이가 부담스럽거나 혼자서도 다양한 콘텐츠에 도전하고 싶은 이용자는 원정대 내 다른 캐릭터나 다른 이용자의 캐릭터를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다. 용병은 AI 기반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이용자는 버튼이나 음성 명령으로 직접 지휘할 수도 있다. 온라인 MMORPG에서 자주 발생하는 파티 대기, 역할 부담, 숙련도 격차를 줄이려는 접근이다.
이렇듯 AI 활용이 확대될수록 게임 콘텐츠는 이용자 개개인의 선택과 실력, 취향에 맞춰 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도가 더 정교해진다면, 게임은 이용자 한 명 한 명에게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무한 콘텐츠의 장으로 발전하리라 본다.